
이탁오 평전. 옌리에산·주지엔구오. 돌배개. 575쪽
나는 어릴 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정작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공자를 존경하지만, 공자의 어디가 존경할 만한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난쟁이가 사람들 틈에서 연극을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한다는 소리에 덩달아 따라 하는 장단일 뿐이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가 짖은 까닭을 묻는다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웃을 수밖에…


그래도 이지는 행운아였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일단 보기만 하면 마음이 기울어 그를 앙모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지의 ‘지기’ 표준이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에 고통이 있었다.
앞서 가는 누군가를 따르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길을 걸었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이 바로 인륜이요, 만물의 이치라네…”
차라리 이단이 되리라!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 길을 가는 데 힘써야 한다”
유교 문화를 주체로 한 중국 문화는 즐곧 사회 질서를 강조하여, 개체는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나사 하나에 불과하여 놓인 자리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개체의 권리•개체의 자유•개체의 행복이 높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역무도한 것이었다.
“좋은 이웃 찾아 거처를 옮겼다” 이지의 새 이웃은 맑은 호수와 달이요, 푸른 집과 매요, 산골 마을의 촌로요, 절간과 법등이었다.
독서의 즐거움? 세계는 얼마나 좁으며, 네모난 책은 얼마나 넓은가!
그런데 이지가 말한 학문의 즐거움에서의 즐거움은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보아 성현의 시비가 덮어 버린 장막을 힘껏 열어젖히고, 천 년을 내려온 포폄의 고정된 기준을 뒤집어엎어, 옛사람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고 후세를 위해 길을 여는 것이다.
가짜 도학
“…그들이 너무 말을 잘했기 때문에 사실에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
이지의 ‘독서의 즐거움’은 ‘학문의 즐거움’이다.
“내가 책을 즐기는 것은 아마도 천행이 있어서이다. 하늘이 다행히도 내 눈을 내려주어 고희에도 자잘한 글씨를 볼 수 있고, 하늘이 다행히도 내 손을 내려주어 고희에도 자잘한 글씨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천행이라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하늘이 다행이도 나의 성性을 내려주어 평생토록 속인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년부터 노년까지 친척과 빈객이 왕래하는 번거로움 없이 한뜻으로 독서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늘이 다행이도 나의 정情을 내려주어 평생토록 식구들을 가까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년을 마치며 다행히도 세파에 휩쓸리고 핍박받는 고통에서 벗어나 또한 한뜻으로 독서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천행이라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하늘이 다행히도 나에게 심안을 내려주었다. 책을 열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대강의 전말을 본다. 책을 읽고 세상을 논하는 것은 예부터 많이 있었으되, 혹은 껍데기까지 보고 혹은 피부까지 보고 혹은 혈액까지 보고 혹은 근골까지 본다. 그러나 뼈에 이르는 것이 절정이다. 설령 자기는 오장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해도, 사실은 아직 뼈도 찔러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 천행을 얻었다고 하는 한 가지이다.”
“하늘이 다행히도 나에게 대담함을 내려주었다. 옛날 사람들이 기뻐하고 흠모하며 쳔자로 여겼던 경우 중에서 나는 많은 경우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경우가 실제와 동떨어져 어디에도 맞지 않고 쓰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천하게 보고, 버리고, 침 뱉고 욕했던 자들이 나는 모두 확실히 나라를 맡기고 지방을 맡기고 자신을 맡길 만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비 판단이 옛날 사람이 이처럼 크게 어긋나니, 대담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이것이 또한 내가 스스로 천행을 얻었다는 두번째 이유이다.”
“이 두 천행이 있어서 늙어서도 배우기를 즐거워한다. 그래서 「독서의 즐거움」을 지어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다.”

배움은 의문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의문은 도를 배우는 사람의 보배다. 의문이 크면 깨달음 역시 크다”
375 사람들은 하나 같이 위대한 성인이나 이단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그저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익숙하게 들어왔을 뿐이다. 부모와 스승 역시…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그저 선대 유학자의 가르침을 통해 익숙하게 들어왔을 뿐이다.
고독 속 독서와 저술 활동.
자연지성.
동심설.
감추지 않는 「장서」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할 수많은 괴이한 일이 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고, 그의 입이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고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와 느낌이 생기면, 남의 술잔을 빼앗아 자기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에 뿌리고 마음속의 불평함을 호소하여 사나운 운수를 만난 사람을 천년만년 감동시킨다. 그의 글은 옥을 뿜고 구슬을 내뱉는 듯하고, 별이 은하에서 빛을 발하면서 맴돌아 하늘에 찬란한 무늬를 만드는 듯하다. 마침내 스스로도 대단하게 여겨 발광하여 크게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니, 멈추려야 멈출 수가 없다. 차라리 이를 보거나 듣는 사람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고 어금니를 깨물면서 글을 쓴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게 할지언정, 차마 끝내 명산에 감추거나 물이나 불 속에 던져 사장시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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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고 외친 니체보다 한참을 앞서 태어나 ‘공맹은 가짜다’라고 외친 이단아, 이지(이탁오)!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의 것으로 새로 세우려던 혁명적 사상가, 모두가 공맹의 허울뿐인 도덕규범을 따라 마땅하다고 할 때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 길을 가는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시대를 앞선 ‘초인’ 위버멘쉬이였던 이탁오!
책은 멀리서 찾아온 벗입니다. 그를 마치 멀리서 찾아온 벗처럼 만나볼 수 있었던 책 한 권! 그의 말처럼 ‘스승이 아닌자 벗이 될 수 없고, 벗이 아닌 자 스승이 될 수 없다.’ 책은 벗이요, 스승입니다.
발췌를 잘해주셨습니다. 펼쳐지는 대로 읽고 있는데 이지의 심중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중국서라 그런지 단어, 지명, 표현도 익숙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