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p375
우리는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고 떠들기만 했지, 정작 그 금속활자로 만들어낸 책이 어떤 역사적 역할을 했던가 하는 문제는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었다.
고려가, 조선이 어떤 책을 찍었던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의도에서 책의 콘텐츠를 쓰고, 책을 만들고, 책을 보급하고, 책을 소유했던가? 이런 당연한 질문은 정식으로 제기된 적이 없었다. 예컨대 강제로 읽히는 책이 있다고 하자. 국가가 만들어서 보급시키는 학교의 책, 교과서는 강제로 읽히는 과정을 통해 독자인 학생의 대뇌에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심어놓는다. 교과서는 심상한 책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의도하는 인간을 제작하는 수단인 것이다.
나는 책의 역사에서 인간을 해방 혹은 억압한 책들의 투쟁을 본다.
조선은 양반사대부의 나라였다. ‘독서하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讀書曰士, 從政爲大夫, 有德爲君子, 독서왈사, 종정위대부, 유덕위군자)란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사대부는 기본적으로 독서인이다. 혁명으로 고려를 뒤엎고 사대부의 나라 조선을 세웠으니 다음은 사대부, 곧 독서인을 만들어낼 차례였다. 정도전의 제안을 채택한 태종을 거쳐 세종조에 이르러 활짝 개화하는 출판문화는 독서인층, 곧 지배층을 확대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세종조에 서적문화가 절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세종 자신이 조선 전체를 통해 최고의 다독가였고, 모든 분야의 학문에 정통한 학자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한글의 창제’. 의도적으로 문자를 만든 것, 그것도 아주 탁월한 민중문자를 만든 공은 어떤 것보다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책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한글만으로 세종을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조선 전기 문화를 혼자서 창조하다시피 한 세종이었고, 또 그의 머리에서 한글이란 위대한 민중문자가 만들어졌건만, 그는 결코 한글을 금속활자로 만들고 책을 찍어내어 민중에게 읽히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처음부터 한글로만 쓰인 책을 찍기 위해 한글 금속활자를 만든 적은 없었으니, 세종과 그 시대의 지식인들의 대뇌에는 백성과 책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금속활자와 세종조의 인쇄기술은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양반-남성의 영원한 제국을 위한 것이었다.
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남의 머릿속에 넣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 수단이 바로 책이다.
정도전과 태종, 세종, 조광조, 이황, 이이는 조선 전기 서적 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책의 생산과 보급, 그리고 독서문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이 지향한 책의 문화는 궁극적으로 양반-남성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비록 거룩한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조선조 서적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독창적 사유를 담은 저작물이 작자 생전에 출판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출판업자가 존재하자 않았던 것이다.
책깨나 읽는다는, 학문을 한다는 지식인들의 주요 독서물은 고전이 된 중국의 서적이나 당대에 수입된 중국의 서적이었다.
정조. 규장각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순정한 문학과 사상을 보급하여 유리창에서 수입되는 불순한 사유를 봉쇄하려고 하였다. 문체반정은 책과의 전쟁이었다.
역사를 누가 만드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책벌레들이 만든다고 답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언어화되어 있고, 그 언어를 담아 유포하는 것이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완성을 꿈꾸었던 정도전의 금속활자 혁명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무력에 의해 혁명은 일단 성공하지만, 그 성공이 곧 혁명의 완성은 아니다. 혁명이 내세운 이데올로기가 사회 구성원의 대뇌에 완전히 장착되고, 그 이데올로기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다수 출현했을 때 비로소 혁명은 완성된다.(혁명의 완성은 사고의 전환?)
대저 선비가 아무리 학문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서적을 얻지 못한다면 또한 어떻게 하겠는가.
대량의 인쇄물이 아니라면?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종류의 인쇄물을 얻는 것이 금속활자의 목적이다! 고려조의 금속활자는 바로 이런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목판을 새기려면 엄청난 인력과 오랜 공작과정이 필요하지만, 금속활자는 소량의 책을 금방금방 찍어내는 데 매우 적합했다. 곧 다종 소량의 책을 신속하게 찍어내는 것이 금속활자의 존재 이유였던 것이다.
태종이 금속활자로 찍어내 바로 그 책이 유교적 정치이념으로 의식화된 사대부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 이념이란 국가는 왕의 의지가 아닌 사대부의 의지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왕이란 이름의 수탈자였을 뿐이다? 정치는 거룩한 이상향으로 가자고 우리를 설득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해 단 한번도 그 세상에 도달한 적은 없다. 지금도 정치의 거짓말은 여전하다. 슬픈 일이다.
#모든 인간을 도덕화하라_조광조의 소학으로 여는 세상
반정세력은 깨끗한 이미지가 필요. 이들이 바로 ‘사림士林’이었다. 사림들이 외친 개혁의 내용? 간단히 말해, 모든 인간의 도덕화! 이것이 사림 개혁의 골짜였다.
구체적인 방법은? 도덕 교과서를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
조선의 지배계급을 위한 장치, 소학
인간에게 윤리와 도덕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지만, 그 오직 한 가지 이데올로기에서 나오는 윤리와 도덕만이 진리로 강요될 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
소학은 조선의 지배계급을 만들어내는 장치였던 것이다. 어떤가? 오늘날 신문이며 방송이며 책이며 학교에서 떠드는 도덕과 윤리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생각들 해보시라.
#주해는 궁극적으로 오해다
주자의 주해가 지배하는 사서오경 원래 화자의 견해가 아니라 주해자의 견해일 뿐이다. 주자의 사서에 대한 주해에서 드러나는 것은, 공자와 맹자가 말하려 했던 의미가 아니라 주자의 생각일 뿐이다.
율곡이 『격몽요결』에서 고정시킨 텍스트들은 조선조 말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율곡이란 천재에 의한 텍스트의 고정과 절대화는 당연히 다른 텍스트들을 배제했다. 율곡의 텍스트 고정은 실로 조선 사림의 사유를 편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율곡은 자신의 시대를 성실하게 산 사람이었고 탁월한 학자였지만, 나는 이런 점에서 율곡에게 동의할 수 없고 그를 좋아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 이수광의 지봉유설
중세인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 독서광들은 책을 읽으면 메모의 충동을 느낀다. 부지런한 독서가가 나오기도 하는 것. 지봉유설은 특별한 책이라고 할 수 없다. 지봉의 독서와 메모의 결과일 뿐이다. 다만 그 독서와 메모는 너무나 광범위하다!
진리를 만드는 것은 논리적 정합성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일 뿐이다.
권력의 도구가 된 주자학.
성호사설. 노비가 조선의 모순된 체제를 재생하는 구실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여러 곳에서 노비제도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대저 재물이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백성의 노동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도 역시 흥성한다. 따라서 군자가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을 이끌어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해 주는 것일 뿐이다. -생재,『성호사설』, 제8권 인사문
『성호사설』은 당시로서는 파천황적인 저작이었다. 생각해 보라. 이 책이 쓰일 무렵 조선의 학계에서 학문이란 오로지 성리학뿐이었다.
#연암의 문학은 어디에서 왔을까
연암의 위대함은 그의 독창성에서 왔다고 말한다…하지만 나는 불경스럽게도 그 독창성이 의심스럽다.
언어를 빌려오는 것을 표절이라 한다면, 사유의 틀을 통째로 빌려오는 것은 뭐라 말해야 할 것인가. 연암은 독창을 말했지만, 그 독창을 설파하는 사유 자체는 남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하늘 아래 어디에 새로운 것이 있다던가.
정조와 문체반정. 정조가 신하들의 문체를 검열한 사건. 그 속내는 성리학에 어긋나는 이단적 사유를 색출하는 것이었다. 사상통제요, 구체적으로는 책에 대한 탄압이었던 것이다.
과거야말로 조선의 지식인들을 옭아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 과거 답안지에 소품이나 소설 문체를 구사하거나 이단적 사유를 섞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