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사람
##2부 코제트
그가 추락한 후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는 위대한 인물들이 몰락한 후에 일어나는 저 이기적인 분열이, 인간의 공동체에서 날마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저 번창한 것들의 숙명적인 해체가 발생하는데 이런 일은 역사상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에 일어났으니까. 대장들이 스스로 왕관을 쓴다. 직공장들이 하루아침에 제조업자가 되었다. 시기심 많은 경쟁이 나타났다. 마들렌 씨의 널다란 공장은 닫혔고, 건물들은 폐허가 되었고, 직공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그가 쓰러지자, 저마다 제 잇속만 챙겼다.
문명사회는 도처에서 스물네 시간마다 쓸데없는 대포를 15만 방이나 쏜다. 한 방에 6프랑이라 한다면, 하루에 90만 프랑이, 한 해에 3억 프랑이 연기로 사라지는 셈이다. 그것도 한 가지 항목만으로 그렇다. 그동안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가고 있다.
스페인에 있던 것과 티베트에 있는 것 같은 수도원 제도는 문명에 대하여 일종의 결핵이다. 그것은 대번에 생명을 끊어 버린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인류를 멸종시킨다. 그것은 유폐요, 거세다. 그것은 유럽에서 천벌이었다. 거시에 더하여 그렇게도 자주 양심에 가해진 폭행, 강요된 소명, 수도원에 의지하는 봉건성, 과잉 가족을 수도 생활에 쏟아 넣는 부형, 방금 말한 잔인한 행위들, 열반옥, 함구, 가두어진 두뇌들, 영원한 서약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수많은 불행한 재능들, 법의의 착용, 살아 있는 영혼들의 매장. 국민적 타락에 따르는 개인적 고통.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인간이 발명한 두 가지 수의인 법의와 너울 앞에서는 누구라도 전율을 느낄 것이다.
싸우자. 그러나 분간하자. 진리의 특성, 그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금욕주의의 수도원 생활을 반대한다.
인간의 정신에서 아무것도 빼내지 말자. 제거하는 것은 나쁘다. 개혁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대함, 그것은 인류의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고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권리 가까이, 적어도 곁에 ‘영혼’의 권리가 있다.
나는 현세의 종교들에는 반대하나 종교 자체에는 찬성하다. 나는 현세의 기도들의 비참함과 기도 자체의 숭엄성을 믿고 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너그러움 중에서도 가장 숭고한 것, 즉 남을 위한 속죄다.’
##3부 마리우스
한 인간에게 무용한 것을 주고 그에게서 필요한 것을 빼앗아라. 그러면 그대는 건달을 갖으리라.
그다지 매력도 없고, 영원히 행인으로부터 ‘쓸쓸하다’는 형용사를 받고 있는 이러한 곳에서, 몽상가는 겉보기로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산책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옛날에 오랫동안 파리 교외의 산책자였는데, 그것은 그에게 깊은 추억의 원천이다. 풀이 짧은 잔디밭, 그 돌투성이의 오솔길, 그 석회, 그 이회토, 그 석고, 그 황무지와 휴한지의 우툴두툴한 단조로움, 그 골짜기에서 갑자기 눈에 띄는 채소 재배지의 맏물 야체, 그 야생적인 것과 저속한 것의 혼합,..이 모든 것이 이 사람의 마을을 끌고 있었다….이 세상에 거의 아무도 아래와 같은 신기한 곳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어린아이의 방황에서 시작된다.
다른 모든 대도시에서 방랑하는 어린아이는 타락한 인간인 반면, 거의 어디서나, 제멋대로 내버려 둔 어린아이는 사회악에 필연적으로 빠져 들어가는 대로 말하자면 내맡겨지고 내던져져 있는 반면,…
갤리선은 노예나 죄수에 의해서밖에 움직여지지 않았다…거리에서 어린아이를 만나면, 그 애가 열다섯 살이고 집도 절도 없기만 하면 그를 갤리선에 보냈다. 이것이 위대한 성대요, 위대한 시대였던 것이다.
요컨대, 한마디로 모두 요약한다면, 건달은 불행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노는 인간이다.
빛(지식)에 의해서.
빛은 건전하게 한다. 빛은 환하게 한다.
모든 사회적인 고귀한 빛의 발산은 과학, 문학, 예술, 교육에서 나온다. 인간들을 만들어라. 인간들을 만들어라. 그들이 그대를 따습게 해 주도록 그들에게 빛을 줘라. 조만간에 의무 교육이라는 찬란한 문제가 절대적 진리의 불가항력적인 권위를 가지고 제기될 것인데, 그때에는 프랑스 정신의 감시 아래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즉 프랑스의 어린아이들이냐, 아니면 파리의 건달들이냐.
마리우스가 훑어본 그 역사는 그를 놀라게 했다.
첫 인상은 경탄이었다.
그러자 그는 이때까지 자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자기의 조국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것도 저것도 알지 못했고, 일종의 고의적인 암흑으로 자기 눈을 덮었다. 그는 이제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한쪽에서는 찬탄하고, 또 한쪽에서는 열애했다.
‘ABC의 벗들’이란 무엇이었는가? 겉으로는 어린아이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으나 사실은 인간들의 재건이 목적이었다.
“올바른 사람이 됩시다, 친구들이여! 이러한 황제의 제국이라는 것, 한 나라에 얼마나 빛나는 운명인가, 그 나라가 프랑스고 그 나라가 그의 천분을 이 인물의 천분에 보태는 때는!…”
불행의 효험
왜냐하면 작은 투쟁들 속에서 많은 위대한 행위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영웅들은 때로는 고명한 영울들보다 더 위대한 무명의 영웅들이다.
##4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수완가들은 우리 시대에 자기들 자신을 정치가라 지칭했다…수완밖에 없는 데는 필연적으로 옹졸이 있다. ‘수완가들’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결국 ‘시시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들’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때로는 ‘배신자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습관은 버리기는 쉽지만, 되찾기는 어렵다.
청년에게서 진실한 사랑의 첫 징후는 소심이고, 처녀에게서는 과감성이다.
징벌 받은 자들을 동정하자…인생을 자세히 보라. 인생은 도처에 형벌을 느끼도록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가장 보통의 경우에 폭동은 물질적인 사실에서 나오는데, 반란은 언제나 정신적인 현상이다…반란은 정신에 인접하고 폭동은 밥통에 인접한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고, 미래는 다르다. 보통 선거는 경탄할 만한 것이어서 폭동을 그 근원에서 해산시키고, 반란에 투표함으로써 폭동에서 무기를 빼앗는다. 시가전도 국경전도 다 같이 전쟁의 소멸, 이런 것이 필연적인 진보다. 오늘이야 어쨌든, 평화는 ‘내일의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바꿀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이야기를 하되 고발하지는 않으니까.
##5부 장 발장
파리 하수도의 굴착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혁명이오. 화재가 도시 전체를 밝혀 주듯이, 혁명은 전 인류를 밝혀 주오. 그런데우리는 어떤 혁명을 할 것인가?..’진실’의 혁명이오. 정치적 견지에서 보면, 원칙은 하나뿐,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갖는 주권이오. 나에 대한 나의 주권이 ‘자유‘라고 불리는 것이오.이 주권의 둘 또는 여러 개가 어울리는 곳에서 ‘국가’가 시작되오. 그러나 이 어울림 속에서 아무런 권리의 포기도 없소. 각 주권은 공동의 권리를 형성하기 위해 그 주권 자체 중 약간을 양보하는 것이오. 그 양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소. 개인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그 양보의 동일성을 ‘평등‘이라고 부르오. 공동의 권리란 각자의 권리 위에 빛나는 만인의 보호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오. 각자에 대한 만인의 보호를 ‘박애‘라고 부르오. 집합되는 그 모든 주권들의 교차점은 ‘사회’라고 부르오. 그 교차점은 합류점이므로, 그 점은 매듭이오. 거기서 사회적 유대하고 불리는 것이 유래하오.
자유가 정점이라면, 평등은 기초
모든 양심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오. ‘평등’은 하나의 수단을 갖고 있소. 즉 무상 의무교육이오. 초보적 권리, 그것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오. 초등학교를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중등학교를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 그것이 법칙이오. 동일한 학교에서 동등한 사회가 나와요. 그렇소, 교육이오! 빛이오! 빛! 모든 것은 빛에서 오고, 모든 것은 빛으로 돌아가오. 여러분, 19세기는 위대하지만, 20세기는 행복할 것이오. 그때에는, 낡은 역사 같은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오늘처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지휘자가 전투 준비의 명령을 내리자마자, 모든 무질서한 움직임들은 그치고, 더 이상 상호간의 알력은 없어지고, 더 이상 파당도 없어지도, 더 이상 분파도 없어지고, 더 이상 외떨어져 있는 무리도 없어진다.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한 점에 집중하고 공격자의 기다림으로 변한다. 바리케이드는 위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혼동 상태지만, 위험이 닥치자 규율이 선다. 위험은 질서를 낳는다.
현재의 방법을 선을 행하기를 바라면서 악을 행하고 있다. 의도는 좋으나, 결과는 한심하다. 도시를 정화한다고 믿지만, 국민을 허약하게 만든다. 하수도는 오해다. 빼앗는 것을 되돌려 주는 이중 기능을 가진 배수가 도처의, 단지 씻어 내리기만 하고 메마르게 하는 하수도를 대체했을 때, 그때에는 이것이 새로운 사회경제의 여건과 결합되어, 토지의 수확은 열 배가 될 것이고, 빈곤 문제는 현저하게 완화될 것이다. 거기에 기식 생활의 폐지를 덧붙이면, 빈곤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공공의 부가 냇물로 흘러가고, 손실이 일어난다. 손실은 적절한 말이다. 유럽은 그렇게 피폐로 무너지고 있다.
아무리 교묘하게 꾀를 써도 민중을제가 원하는 것보다 더 빨리 걸어가게 하지는 못한다. 민중을 강요하려고 하는 자는 불행할진저! 민중은 저에게 시키는 대로 두지 않는다. 그런 때엔 민중은 반란을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그것들은 죽은 듯이 보이지만, 그것들은 살아 있다. 거기에선 생명이 정지된 것 같지만, 그것은 거기에서 지속되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것이, 하나의 혁명이, 하나의 대이변이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지금 막 일어났고, 반성해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자베르는 지독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부터 자베르는 단순하기를 그쳤었다. 그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몰이해, 부분별 속에서도 그렇게 명쾌했던 그 두뇌는 투명함을 잃어버렸었고, 그 수정 같은 맑음 속에 한 조각의 구름이 있었다. 자베르는 그의 의식 속에서 의무가 둘로 갈라지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그의 앞에 둘 다 마찬가지로 곧은 두 개의 길을 보고 있었으나, 둘이 보였기 때문에, 생전 하나의 직선밖에 결코 몰랐었던 그는 공포심에 떨었다. 그리고 이것은 가슴을 에는 고뇌였는데, 그 두 개의 길이 상반된 것이었다. 두 개의 직선 중 하나는 또 하나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그 둘 중 어느 것이 진실한 것이었을까.
그의 처지는 형언하기 어려웠다.
그의 고민거리 중 하나, 그것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모든 모순된 감정들의 격렬함 자체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었다. 사색은 그에게 이례적인 것이고, 유달리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자선을 베푸는 범죄자, 동정심 많고, 온화하고, 돕기를 좋아하고, 관대하고, 악을 선으로 갚고, 증오를 용서로 갚고, 복수보다 연민의 정을 선호하고, 저를 때린 자를 구조하고, 덕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인간보다 천사에 더 가까운 징역수! 자베르는 이런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 발장을 잡고 있는 동안, 그를 놓아줄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그는 단 한순간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열려서 그를 놓아주었던 것은 거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일이었다. 온갖 수수께끼 같은 신기한 일들이 그의 눈앞에 방긋이 열리고 있었다.
“당신은 파렴치한이다! 당신은 거짓말쟁이고, 중상자고, 악당이다! 당신은 그분을 고발하러 왔는데, 그분의 무죄를 증명했어. 당신은 그분을 망신시키고자 했는데, 그분을 찬미하는 데밖에 성공하지 못했어. 그리고 도둑놈은 당신이야! 그리고 살인자는 당신이야! 나는 당신을 봤어. 테나르디에 종드레트를, 오피탈 가로수 길의 그 누옥에서…”
『레 미제라블』은 대중소설의 탈을 쓴 현대인의 서사시다.
그것은 한 영혼의 시인 동시에 한 세기의 전설이다. 시인의 사상 관념은 거침없이 용솟음친다…시적 산문이 아니라 오히려 시인의 산문이다. 인물의 성격과 심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이 압도적이다. 거대한 환경 묘사의 놀라운 솜씨로 말하자면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