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교본으로 삼을 만한 책. 책고리:『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수필. 피천득(범어사). p180
금아 선생의 수필 세계는 나날의 세계다. 그것은 나날의 삶에서 우리가 겪는 작은 일들, 그 중에도 아름다운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선생 자신의 말씀대로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그래서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착한 일을 하고…
#비원(秘苑)
미(美)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뿐이랴.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분수가 있는 광장, 비둘기둘, 무슨 애버뉴라는 고운 이름이 붙은 길, 꽃에 파묻힌 집들, 그것들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순간 다 나의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 나의 소유물이다.
#순례
글을 읽는다. 문학은 낯익은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여 나를 풍유하게 하여준다.
구름과 별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눈, 비, 바람, 가지가지의 자연 현상을 허술하게 놓쳐버리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여준다. 도연명을 읽은 뒤에 국화를 더 좋아하게 되고 워즈워스의 시를 왼 뒤에 수선화를 더 아끼게 되었다.
#수필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芳香)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반사적 광영
#이야기
사람은 말을 하고 산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생각까지도 말을 빌려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꿈속에서도 말을 하는 것이다. 물건 매매도, 교육도, 그 좋아들 하는 정치도 다 말로 한다. 학교는 말을 가르치는 곳이요, 국회는 시저 때부터 지금까지 말을 하는 곳이다. 수많은 다방도 다 말을 하기 위한 곳이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 하는 말은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둔한 사람이다”하는 소리다.
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 방식에 있다…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같은 성인도 말을 잘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이 전파 계승된 것이다. 덕행에 있어 그들만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나, 그들과 같이 말을 할 줄 몰라서 역사에 자취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 결국 위인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
결혼생활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다. 고답할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
부부는 서로 매력을 잃어서는 아니된다. 지성인이 매력을 유지하는 길은 정서를 퇴색시키지 않고 늘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며 인격의 도야를 늦추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하다.
#구원의 여상
#장수
#해설_피천득의 수필세계
그가 단정적으로 내세운 수필의 성격은 청자 연적, 난, 학,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 등 사물에의 비유 이외에,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수필은 독백이다”고 한 것이 있다. 마음의 산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함을 말했다. 그 필요의 한계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경지를 실어내는 단계에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독백이라는 단정에서 그는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으로 수필을 규정짓기에 이른다. 수필의 색깔과 재료에 관해서도 온아우미(溫雅優美)와 방향(芳香)을 강조하기를 잊지 않았지만, 또 그 나름의 정리를 시도하였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우리가 하찮게 지나쳐버리기 쉬운 그러면서도 진실된 아름다움과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그야말로 작은 일들을 피천득 씨는 용케도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수필」) 우리 앞에 써 내어놓았다.
겨울이 되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해방 전 감옥에는 많은 애국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러나 철장도 콘크리트 벽도 어떠한 고문도 자유의 화신인 그들을 타락시키지는 못했다.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수필, 피천득 | 문체는 곧 사람이다”에 대한 1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