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헌책이다. 최종규(그물코). p405
‘숨어 있는’ 보물?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새책방과 달리 ‘딱 한 권’일 때가 잦다
#나는 헌책방에 자주 간다
헌책방에 가면 무엇이 그리도 좋냐? 농사짓는 분들이 농약을 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왜 농약을 뿌리냐고 따질 수 없듯 헌책방이 좋은 까닭도 함께 가고 나서 묻지 않는다면 겉으로 맴도는 이야기밖에 못합니다.
‘버려진 책’이 헌책방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다시 읽힐 만한 책’이 헌책방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것은 몸소 발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헌책방에서만 책을 사 보면 새 정보에 어둡지 않냐? 정보 아닌 묵은 깜냥은 더욱더 깊이 묵고 곰삭이므로 훌륭한 고전은 몇 열 해가 지나도 있는 헌책방이기에, 우리 삶과 생각을 늘 북돋우는 좋은 ‘고전’을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은 돌고 도는 물건이라 사람이 죽으면 임자 없는 책은 헌책방으로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뛰어들어서 하는 겁니다…작은 일이라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기에 헌책방 이야기도 아무도 안 한다면 내가 나서서 하고, 이미 하는 사람이 있지만 목소리가 안 들리거나 더 널리 나누지 못한다면 그러한 일을 내가 나서서 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렇게 씨앗을 뿌리다 보니 어떻게 해야 뿌린 씨앗이 잘 자라도록 기를 수 있는가도 시나브로 알아볼 수 있겠더군요. 말로만, 생각으로만 씨앗은 이렇게 뿌리고 가꾸고 길러야 잘 거둘 수 있다는 이론은 그저 이론일 뿐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밥 한끼니로 거둘 수 있는 나락을 주지 못해요.
뿌린 대로 거두고, 티끌 모아 태산인 만큼 하나씩 차근차근 하고 티끌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모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늘 놓쳐서는 안 되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깊은 슬기를 되새기고요.
뭐니뭐이 해도 헌책방 찾는 재미는 ‘새책방에서 사라진 채’, 그러니까 ‘판이 끊어진 책’을 찾는 재미에 있지 싶어요. 좀처럼 보기 드문 책이지만 부지런히 다리품과 손품을 팔아서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만나는 재미가 사람마음을 쏙 잡아뺍니다.
헌책방이 없으면 도서관이 있을 수 없어요? 도서관에서 갖추는 자료가 꼭 ‘새책’이지만은 않거든요. 꼭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찾는 책이지만 팔리지 못하고 사라지는 책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예요
우리는 보통 너저분하고 싸구려 책들이 헌책방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예요. 너저분하거나 싸구려 책들은 새책방에 많습니다. 눈요깃감으로 만들고 돈벌이 거리로 만든 시류와 흐름을 타는 책들이 새책방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헌책방은 달라요. 헌책방 헌책은 맞돈(현금)을 주고 사서 책방 안에 갖워 놓는 책들입니다. 반품이 없이 파는 헌책방 헌책이기에 엉뚱하거나 안 읽힐 책은 한 권도 안 갖춥니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기에 갖추는 게 헌책방 헌책이에요.
#헌책이란?
‘누군가가 이미 보거나 읽은 책’
도서관 책도 따지고 보면 ‘헌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서관에 가서 “야, 헌책 많네’하지 않아요. 도서관에서도 그냥 ‘책’입니다.
사고팝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사는 잣대는 다른 책손들에게 얼마나 팔릴 만한가입니다
『The TREE of Britain and Northern Europe』 나무를 보일때는 온모습을 그리는 한편 잎사귀와 열매와 꽃까지 함께 그려서 보여주어야 나무를 알아볼 수 있고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사람들
#한홍구_소중한 자료가 있는 곳이라며 어디라도 찾아가는 헌책방 즐김이 한홍구 교수
처음에 글로 만난 한홍구 교수는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서 글만 쓰는 사람이 참 많은데, 한홍구 교수는 헌책방을 부지런히 다니며 소중한 사료와 자료를 찾는 교수들 가운데 하나이지 싶어요…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역사학은 사료와 자료를 얼마나 골고루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학문 성과가 달라져요. 그래서 두 분을 비롯한 많은 역사학과 교수들과 학자들이 헌책방, 도서관, 새책방을 가리지 않고 책 하나 찾고자, 종이쪽지 하나 찾고자 눈에 불을 켜고 다니지 싶어요.
#백창우_노래하는 백창우 씨의 사무실은 도서관 같이 책이 가득합니다
‘내가 잘못 들어왔나?’ ‘여기가 노래하는 사람 사무실이야, 도서관이야?’
그때 백창우 씨 사무실에서 구경한 책 가운데 오래도록 잊히지 않던 책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가브레엘 벵상이 그린 『그 어느 날 한 마리 개는』(홍성사,1994) 이고, 둘은 『민중의 길』 (박용수,분도출판사 1989)입니다. 말 한마디 없이 스케치한 그림으로만 그림책을 채운 『그 어느 날 한 마리 개는』은 그림을 보는 눈을 새롭게 일깨웠고, 사진책 『민중의 길』은 우리말 운동만하는 줄 알았던 박용수 씨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어쨋거나, 백창우 씨가 지금 살가운 노래를 속깊은 노랫말로 애틋하게 담아낼 수 있는 바탕에는 수많은 사람들 삶과 책이 한몫 단단히 했다고 봅니다. 백창우 씨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책은 시모음이었는데, 그이 노래가 시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 것도 세상 많은 시를 두루 살피면서 갈고 닦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좋은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보는 백창우 씨이지 싶고요. 백창우 씨는 58년 개띠인데, 농담처럼 스스로를 ‘개 같다’는 말을 자주 해요.
신촌에 있는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서너 번 마주친 백창우 씨? 밤늦게 일하다 바라는 자료가 사무실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어서 책 찾으러 나왔다며 이원수 선생 동시모음을 찾더군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날마다 듣는 노래에는 선택할 만한 여지가 없습니다. 밥상에 한 가지 반찬밖에 없으니 고르고 자시고 할 것이 없습니다. 먹든지 말든지지요. 아이들이 다 문화 결핍증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머리(지식)야 커서도 채울 수 있지만 좋은 정서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 『노래야 너도 잠을 깨렴』(보리,2003)
#윤구병_글쟁이, 교수, 책쟁이…지금은 농사꾼인 윤구병 씨, 그이도 헌책방을 좋아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아요. 밥하고 반찬하는 데 시간이 이렇게 걸리고 품이 든다하여 밥과 반찬을 안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1970년대 끝물,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다니가가 『통속한의학원론』(조헌영,을유문화사,4282,1949)이란 책을 만났다지요…조헌영 선생은 해방을 맞이한 뒤로 의료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아 많은 백성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갈 때 ’민간요법’으로 자기 몸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한의학을 혼자 공부해서 알기 쉽도록 책으로 여러 권 펴냅니다. 이 책을 1987년에 윤구병 선생이 쉬운 요샛말로 고치고 줄거리를 간추려서 손바닥책으로 다시 펴냅니다. 다시 펴낸 책이름은 『한방 이야기』(학원사,1987)입니다.
1980년대 첫머리에는 철학박사 논문을 쓰다가 그만두고, ‘어린이마을’(웅진)이라는 서른여섯 권짜리책을 만듭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철없는(?) 짓이고, 밝은 앞날을 망가뜨린 짓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흔하디흔한(?)’ 철학박사보다는 이 땅에서 살아갈 수많은 어린이들 앞날을 밝힐 좋은 책을 만들었으니 세상 사는 보람은 이보가 더 클 수 없겠다 싶어요.
‘차츰차츰 만들어가는 문화’란 말이 제 뒷통수를 때립니다. ‘한 사람이 천 걸음을 걷기보다는 천 사람이 한 걸음을 걷는 편이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 농사꾼 윤씨가 말한 2급수 물이 되어 2급수 책을 만드는 구실로 자기 스스로를 맞추고, 자신은 오로지 2급수로 살겠다는 뜻은, 자기 몸과 마음을 바쳐서, 다른 이들이 그 바탕 위에서 1급수 삶을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보아요.
#사라지는 책방을 기리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는 우리들은 책읽기를 제대로 익히거나 배우지 못합니다. 교과서만 달달 외도록 닦달을 받습니다. 교과서가 아닌 책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다룬다며 못 읽게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시험에 안 나오는 이야기를 안 읽어 버릇하도록 길들어갑니다…그러다 보니 상을 받거나 언론에 자주 나와 널리 알려진 사람들 작품 아니고는 잘 읽히지도 않아요.
황석영, 조정래,….이런 사람들의 책은 즐겨 읽습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작품, ‘어른만이 아니라 어린이도 즐길 수 있는 문학’을 하는 이오덕, 권정생, 윤태규, 서정오, 이호철(교사), 박상규, 이원수, 권태응, 남태우, 현덕, 일길택, 이주홍, 박상률, 김중민, 박기범 같은 사람들 작품은 어떤가요?
헌책방이 사라지는 일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헌책방에 묻힌 좋은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고, 알아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알아볼 쓸모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이 더욱 안타까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