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으로 귀농했습니다. 이후·이은정. p236
인생의 방향을 행복쪽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사는 곳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맨얼굴_이은정
언제부터인가 제 꿈은 농부입니다. 10평 주말 농장을 시작으로 조금씩 늘려가며 농사를 짓고 1년은 괴산에 집을 빌려 주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시골은 평화였고 도전이었고 배움과 성찰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행복이 있는 꿈입니다.
…그러다가 귀농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아직 진행 중인 삶의 맨얼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쓰겠다고 인터뷰하며 독자보다 먼저 참 많이 배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얻는 것은 무엇인지입니다.
#이들을 조금 일찍 만났더라면_이후
‘과연 이게 내가 원한 삶일까?’
어느 날, 마루에 앉아 한숨을 쉬었습니다. 마당이 있는 아기자기한 시골집에 살고 있고, 집 앞에는 옥수수를 마음껏 길러 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고, 세 살배기 아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했지만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달랐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들 속에, 너무나 다양한 삶의 형태가 들어 있었습니다. 농사만 짓는 사람, 집을 짓는 사람, 도시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는 사람, 집 때문에 지독하게 고생한 사람…동기부터 과정까지 모두 다르지만,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사는 것이 좋아 나머지는 기꺼이 포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들 보기엔 불편하고 허름해 보일지언정 포기한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말하는 사람들, 늘 오가며 만나던 이웃들인데, 새삼 꺼내놓은 속 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큰 위로를 받았지요. 이런 이웃들이 제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가진 따뜻한 힘을, 이제 여러분들이 만날 차례입니다.
#하모니카 부는 농부 김병근, 조명재 부부_장연면 송덕리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속담대로 사는 즐거움이 있다
농업은 변수가 정말 많아요. 흔히 하는 말로 ‘촌에 내려가 농사나 지을까’ 그러는데 실제로 해보면 굉장히 어려운 일로 손꼽을 수 있는 게 농사라고 생각해요.
농사의 힘, 영농일지
10년, 20년 지나도 달력이나 노트에 꼼꼼히 적는 사람들도 많아요. 왜냐하면 기후가 계속 변하니까 정확하게 날짜를 맞추기가 어렵거든요. 저는 생활일기 겸 메모 겸 영농에서의 포인트 같은 것을 전부 적어요.
벼농사가 쉽다고 하지만 예민한 데가 있어서 기록이 큰 도움이 됩니다.
밭의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고요. 밭에 자주 가면 풀이라도 한 포기 뽑고 물이 고여 있으면 호미로 물길도 내주고 오지 그냥 오진 않는단 말이에요. 잘 보살피는데 안 될 수가 없죠.
해마다 변수가 있으니 초보자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첫 술에 배부르지 말아라’, 그리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예요.
시골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은 공동체 문화이기 때문에 도시와는 아주 달라요. 좀 불편하고 싫더라도 귀농을 결정했으면 마을 주민들과 화합하는 게 중요해요. 자신이 먼저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해요. 어렵고 어색해서 거리를 두면 시골 분들은 훨씬 보수적이라 절대 먼저 접근하지 않아요. 나이가 많든 적든, 보면 먼저 인사하고 가서 도와줄 부분이 있으면 돕는 것이 영농을 배우는 방법이에요. 그건 봉사가 아니라 농사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기본 배움이라고 해야겠죠.
농사짓는다고 하면 선호도가 낮을 수 있겠지만 제가 직접 고추 따고 해보면 이것만큼 소중한 일이 있을까 싶어요. 사람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길러내는 일이니까요.
누구나 그렇듯 초반에는 좀 힘들었어요. 하지만 힘든 것 자체를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였지요. 이상은 높이 두되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매순간 불만이고 부정적이 되니까요. 중요한 것은 멀리서 찾으려고 하면 안 돼요.
물론 도시에서의 일이 쉽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농사는 일을 해서 실소득으로 현금을 만들기에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예요. 그러니까 일확천금을 구한다거나 큰 것을 바란다면 귀농을 말리고 싶네요.
물론 제가 말하는 성공은 엄청난 게 아니라 자립한다는 의미죠.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육신은 힘들지 모르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 농사예요. 나름대로 잡념이 없어요. 고요한 상태에서 일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친화적으로 순수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결국 자기와의 싸움이고 바꿔서 말하면 자기를 닦는 것이이죠. 그게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효교육 하고 장 담그는 김영태, 엄희진 부부_청천면 삼송리
기꺼이 버리고 시원한 단조로움을 얻다
자급자족 체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냉장고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삶.
텃밭 1,000평 정도에 다섯 식구 먹을 농산물을 서른 가지 정도 짓습니다.
시골에서 살려면 무엇보다 가난을 즐겨야 해요.
나이 들어서 가난을 즐기기 못하면 탐욕으로 생활이 점철된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해요…가난을 즐기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일단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끝나야 해요. 같이 모여서 술 마시고 돈 쓰는 그런 행위가 끝나야 해요…의식주 역시 가장 근본적인 필요 외에는 하지 않아야죠.(지구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나 욕심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가난을 즐기지 못하는 건 육체예요. 그러니까 가난을 즐긴다는 건 육체의 욕구를 따를 것이냐, 영혼의 욕구를 따를 것이냐인데 자연주의적 삶으로서의 귀농을 선탹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가난을 즐기게 되겠죠.(자발적 가난)
귀농해서 잃은 것이 있다면, 그건 잃은 게 아니라 버린 것에 가까워요.
도시에서의 삶을 부정하고 자연주의적 삶을 선택함으로써 저의 생활습관, 취미, 인맥, 돈벌이가 되는 관계들이나 터전 등을 기꺼이 버리고 가난과 싸움과 소박함을 얻었죠…이렇게 단조로움을 얻었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안타까움보다는 애초에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뒤돌아보지 않는 시원함이 있어요.
정말 많이 버려야 했어요…남편과 많이 싸웠어요…자꾸 돈으로 하려고 한다고. 돈으로 사는 물건 대신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까지가 무척 힘들었고 그런 관계를 다 버리고 살아야 하니까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고 보면 저는 인생 자체가 다 바뀌었어요.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습관, 인간관계까지 완전히 다 바뀌었어요. 리뉴얼이죠. 예전엔 딱 도시형 스타일이었어요.
본성교육 vs 본능교육? 본성은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품은 것, 기독교에선 예수님의 모습, 불교로 얘기하면 불성, 그런 것이 자기 속에 있는게 그게 숨겨져 있고 가려져 있어요. 그건 키우는 게 아니에요. 가리고 있는 것들을 걷어주면 자연히 커져요. 빛과 같이 커지는 것이죠. 옛날 교육은 다 본성교육이었어요…종교와 교육이 하나였죠. 종교는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방법론이자 장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본능교육이죠. 가지고 있는 재능을 키워주는 쪽이에요. 그러니까 자르치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게 해주고, 자유주의 교육이라 해서 아이들이 표출하는 욕구를 억압하지 않는 교육이죠.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팥쥐나 신데렐라 언니들처럼 오냐오냐 키우면, 곧 본능교육으로 키우면, 자라서 사회악이 되죠. 타자에 대한 배려심도 없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난동을 피우고 사기도 치고, 제가 직접 아이들의 본성을 키워줄 능력은 없어요. 본성교육에 스승이 필요하죠. 저는 사실 교육에 크게 신경을 쓴 적은 없는데 집에서 애들을 엄하게 대하죠. 본성교육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본능을 억제하는 강압교육에 가깝게 하게 되죠. 적어도 공주병, 왕자병 가진 아이로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어요. 문명적인 문제인데, 술을 마시면 열이 위로 뜨고 배가 차가워지죠. 배가 차가워지면 몸의 기능이 떨어지는 신체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람이 차가워져요. 열이 떠서 머리가 뜨거워지면 계산을 잘해요…늘 술을 먹는다면, 열이 머리에 있을 텐데 머리가 하는 일은 계산이고, 너와 나를 구분하는 거니까 술 먹는 사람들은 파당을 많이 만들어요. 시골에도 수많은 파당이 있어요. 다른 파당과는 술을 안 먹어요. 그렇게 이익집단이 생기는 거죠. 기업문화도 마찬가지잖아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차를 마시고 술을 안 먹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술 문화가 시작되고 파당이 발생하게 되죠. 한국 문명을 전환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에요. 반면 차는, 그중에서도 발효차는 배를 따뜻하게 해줘요.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요. 배가 따뜻한 사람은 너나 구별이 없어요. 모든 사람이 하나라고 생각해요. 동식물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배가 따뜻한 사람은 땅에서 착취를 못 하죠. 자연주의적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또 다른 사람을 이용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머리에 열이 있은 사람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계산을 하죠.
배를 따뜻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음식이 발표식품이잖아요.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 청국장을 먹이죠. 또 제가 먼저 일어나서 차를 만들어주고, 배가 따뜻한 사람이 되자는 거죠.
귀농지 선택? 보통 사람들이 이사 올 때는 자연환경 때문에 이사 오거든요. 그런데 이사 갈 때는 사람들 때문에 이사 가요. 거꾸로 말하면 귀농지는 자연환경 때문에 선택하면 안 되고, 사람 보고 선택해야 돼요. 자기 생활패턴과 맞는 동지나 사람이 있는 곳을 선택해야지 물 좋고, 공기 좋고, 돈벌이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선택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초창기 귀농은 거의 다 자연주의적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시작했어요. 후에 IMF 터지고 나서 도시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시골을 삶의 터로 삼고 일상을 유지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으로 많이들 내려왔죠. 그런 사람들이 현재 90%이상일 거예요. 그래서 시골의 문화가 도시화된 거예요.
지금의 시골은, 어떻게 보면 초창기 귀농의 모습들은 다 없어지고 귀농지가 다 사업화됐어요. 한살림, 생협 등으로 프로젝트화하여 다 사업농으로 바뀌었죠. 실제로 보면 이건 도시나 큰 차이가 없어요.
도시의 경제순환이라는 게 결국 제로섬 게임이잖아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실 남의 돈을 뺏어야 하는 거죠…이게 도시의 문화인데, 거기에 젖어 있는 상태로 시골에 내려와 산다면 시골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많이 보여요. 지금껏 살아온 모습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겠죠. 그래서 수단만 바뀌기 때문에 도시처럼 되고 있어요…좋은 농산물을 생산해서 소비자가 먹고 몸이 좋아지는 것보다는 유기농 비료를 써서 어찌하면 소출을 많이 내서 돈을 벌지 고민해요. 귀농할 때 단순히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게 아니고 농사를 자연이라고 본다면 자신을 다 바꿔야 해요. 냉정하게 말해 귀농을 이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 자연을 파괴하러 오는 겁니다. 도시 자체가 더러운 게 아니라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함으로써 도시가 그렇게 된 거잖아요. 한 사람만 그런 걸 부려도 다 그렇게 돼요.
지도자가 없어졌어요. 예전에 자연주의적 삶을 선택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도자가 있었죠. 지금은 그런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아요. 글너 리더십은 돈을 버는 것과 상관없으니까요. 이미 인간관계는 없어지고 ‘쩐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죠. 귀농을 생각한다면 자기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개념 정리부터 해야 합니다.
#나무와 흙으로 집 짓는 목수 정상용, 한승주 부부_청천면 삼송리
귀농을 하는 젊은 남자라면 농부 다음으로 목수를 고려한다고 해요
낭만의 크기만큼 책임의 크기를 지며 산다는 것
저는 시골 가면 꼭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애초에 없었어요. 마을이 형성되는 방법에 대해 간디가 설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하나의 마을이 형성되려면 재판관도 있어야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집을 짓거나 옷을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요. 시골이라고 전부 농부만 있다면 나머지는 어디서 구할까요. 노동력이든 돈이든 어차피 외부에서 들여야 하는데, 외부에서 들인다는 것은 내부의 것이 빠져나가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나의 마을이 조화롭게 형성되면 경제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죠.
잘난 척하지 않고 열심히 살면 동네 사람 되는데, 좀 으스대고 그러면 동네분들이 안 끼워주세요.
#자연을 노래하는 가수 사이_문광면 신기리
겁 먹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산다
End of Suburvia(교외의 종말), 석유문명에 관한 다큐멘터리
미국에선 도심이 아니라 좀 벗어난, 차를 타고 가야만 갈 수 있는 가짜 시골에서 살잖아요.
생태 근본주의자? 그러니까 근본주의 그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사람들과 벽을 쌓게 되고 나만 잘났다고 남을 무시하는 게 겁이 났어요.
저는 선택이라는 게 뭔가 얻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엇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골에 살다 보니 더 큰 문제가 있더라고요. 돈이 진짜 무서워요. 그 때문에 사람이 순식간에 망가지잖아요. 행복하려고 내려왔다가 고생만 한다든가, 부부 사이가 깨진다든가 하는 것을 많이 봐서 돈 앞에 주눅들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돈에 매몰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어느 정도는 가난해도 괜찮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작은 농사나 자급자족을 꿈 꿀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뭘 해도 먹고살 수는 있잖아요.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어떻게 해도 먹고는 살더라고요.
그 밖에도 주변에서 학교에 안 다니고도 애들이 얼마나 괜찮게 자라는지 많이 봤어요.
또 어떤 여자아이들은 집에 자기들이 만든 종이 인형으로 가득했어요. 엄마가 인형을 안 사주니까 직접 만들어서 방 하나를 완전히 상상의 공간으로 만든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 심심한 걸 너무 어른 입장에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있는 걸 만들어내더라고요.
좋은 말을 선점하니까 이쪽이 지는 거예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말이 더 좋잖아요. 그러니까 불만이 있으면 불만만 얘기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으면 돼요.
유럽초청공연 연출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는 네가 이길 수 있는 요소다. 참 마음에 든다, 그랬어요.
저는 1년 이상 멀리 내다보는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요. 제 경우는 경험상 아무 쓸모가 없었어요. 그런 것보다는 당장 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지, 순두부를 먹고 싶은지 선택하는 거죠. 처음엔 풀밭처럼 보이더라도 매순간 그런 선택을 하다 보면 나중에 오솔길처럼 길이 되거든요.
#만화방과 게스트하우스 양철모_문광면 신기리
마을에 만화방을 낸 이유, 나누어야 더 즐겁다(탑골만화방)
이게 꼭 문화예술 행위가 아니라 삶으로서의 만남과 대화, 이런 것들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귀촌이 아닌 반촌
도시에서 농사나 농부를 너무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부는 오랜 경험과 노력이 축적된 전문인이고, 삶의 지혜가 굉장히 많은 분들인데 도시에서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도가 지나칠 때도 있어요. 유행처럼 만들어서 갈 데까지 갔는데 너무 이벤트화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농사가 예술이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것고 경계해야 하고,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는 것은 좋은 행위인데 그게 너무 과한 쪽으로 가는 것도 좀 아니다 싶고,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정의내리기 힘드네요.
꼭 착한 귀촌이 아니어도 돼요. 마을 공동체로 가까이 가려고 자신을 너무 착하게 몰아가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러니 친절하지 않은, 착하지 않은 귀농/귀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주 당당하거든요. 각자의 방식으로 사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대안적 삶이 아닐까요.
#일러스트레이터 아내와 비디오 촬영가 남편 김주영,차화섭 부부_칠성면 두천리
사람이 재산인 시골, 가능성은 더 크다
아, 얻는 것은 너무 많죠…피고 지는 자연의 변화가 하루하루 다 눈에 보이죠. 자연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게 큰 얻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물이라든가 생명에 대해 좀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옛날같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게 아니고 이 동물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요…자연과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삶의 가치가 생겨나고 있는 게 또 하나의 얻음입니다.
어차피 귀농/귀촌하는 사람들 중에 가진 사람도 많지만, 잃을 게 엄청 많은 사람들은 사실 별로 없거든요. 우리도 잃을 게 별로 없어서 쉽게 내려왔죠.
그리고 시골에서의 가능성이 굉장히 많으니까 그렇게 앞뒤 잴 시간에 일단 내려와 경험해 보는 게 더 큰 준비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 당장,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친환경 먹거리 유통가 이규웅, 마복주 부부_감물면 매전리
시골에서 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유통이었습니다. 덜 벌고 덜 쓰는 것을 신조로 삼아도 화폐는 필요하니까요…거창한 신념이 없어도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기꺼이 자유로운 불편을 받아들인, 생활이 아름다운 가족입니다. 지식이, 앎이 머리로 쌓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실천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대안적 삶이란 선택한 것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
귀농? 생각은 오래.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시골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귀농통문』
돈을 써야 돈을 버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이왕 할 바에는 40대에. 농사를 지을 때 많은 육체노동이 필요하고 또 농사도 아는 게 없으니 젊을 때 내려와서 부딪칠 거 빨리 부딪치고 50대에 안정기에 들어서야겠다 생각했어요.
대안학교? 사회적 규범이나 현실에 자기를 맞춰가는 삶이 아니라 좋아서 택하는 삶,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나뿌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벌어 끊임없이 소비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와 다른 대안적 삶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자본주의 틀에 박혀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뭔가 자신에게 충족되지 않는 제도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자기 몸뚱이로 감당하겠다는 것이 대안이라고 여겨요. 자연 속에서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거든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여전히 자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죠.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제도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도시에서도 자기 정신을, 마음 공부를 계속 해나가면 극복할 수 있다고 봐요. 시골에 와서도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죠. 다만 조건상 시골이 더 좋아요.
농민들도 친환경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가 대중화 되니까 하고 싶긴 하지만 친환경 농사를 짓기 위해선 옛날처럼 풀 매면서 해야 하는데 그건 힘들죠. 친환경 농사의 어려움이 그런거죠. 4인 가족이 친환경으로 지을 수 있는 농사 한계 평수가 대략 2,500평이라고 일반적으로 얘기해요. 그런 평수로 넉넉히 먹고살기 힘들고, 그렇다고 일반 농민 1명을 대체하려면 귀농자 5명은 있어야 하는데 그 수는 못 따라주는 게 한계죠.
새로운 사람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만나도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심히 도를 닦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깨져요.
귀농자들이 농사를 지어서 이걸 어떻게 팔 건가 하는 막막함이 있어요. 직거래가 의외로 어렵기도 하고요.
생계를 위한 직거래를 하게 되면 그것도 일이에요.
매일 포장하고, 전화받고, 또 회원관리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많이 힘들어요. 유기농 절임배추 하시는 분들도 이제 직거래는 그만해야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물건이 왜 이러냐 잘 갔네 못 갔네 하는 부분까지 다 개인이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귀농자들도 도시에 알 만한 사람이 있어도 그냥 조합에 내는 게 더 좋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게 효율적이에요.
아는 체 가진 체 다 필요없어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괜찮은 놈이라는 말을 듣게끔 노력해야 해요. 그래야 농사짓는 거,땅 사고 집 사고 하는 모든 것에 득이 돼요. 그런 모든 것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과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주고받는 거예요.
#행복한 마을기업을 꿈꾸는 농부 김용자, 최은진_사리면 소매리 ‘깨가 쏟아지는 마을’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을 쌓으면 길이 보인다
어디 가서 토론하면 아무리 합리적인 주장을 펼쳐도 소용없어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안 되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싶었어요.
지인 판매는 어려워요. 올해 옥수수를 드신 분들이 또 드신다는 보장도 없고 새끼친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분들이 기름을 사서 드신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에요…택배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착불은 결과적으로 가격이 올라가고요. 마트를 뚫어야 하나 생협을 뚫어야 하나 고민이에요.
#유기농 도농 직거래 모범 농부 이우성,유안나 부부_감물면 박달마을
농사를 짓는 것은 매년 새로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
귀농의 계기? 친구의 돌연사! 귀농하는 시기를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서 실행에 옮긴 것예요.
귀농운동본부 교육장? 저와 같은 바보 친구들이 모여 있는 거예요. 바보 친구들을 만나니 반갑고 동료 의식이 크게 느껴졌죠.
완전 쿠데타? 사표내고 집사람과 상의도 않고 무조건 시골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 남편은 가고 싶은 마음 딱 그거 하나죠. 저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힘들었어요.
우리 엄마는 죽을 힘을 다해 농사지어도 자식 교육을 못 시켰는데 우리 아이들한테도 가난을 대물림해야 하나 싶은 불안한 마음이 컸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기우지만 서른 일곱 살인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였어요…그 땐 온실 속의 월급쟁이 아내로 편안하게 살았으니까 불안한 미래에 대한 염려가 컸다고 해야겠네요. 어쩌나 울었던지 이불이 해질 만큼 울어서 이불 하나는 버렸어요.
제가 왜 마음이 급했나면 마흔이란 나이가 되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3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더 많다는 보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흔 이전의 삶이 주어진 삶이라며 이후엔 주체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가까운 친구도 그렇게 보냈는데 저 역시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생각에 급해졌죠.
요즘 말로 스펙 쌓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죠. 사람이 태어나서 제대로 된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에 체면과 부와 주변의 시선은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잘 적응했는데 어른들이 잘 적용하지 못한 거죠. 예를 들어 음성에서는 이 사람이 재래식 화장실에 적응을 못 했어요.
농부의 장점은 봄이 되면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새 도화지를 받는 것 같아요.
모두 자기 방식대로 하지만 농사를 잘 짓는다고 말하는 것은 늙어 죽을 때까지 해도 어려워요. 주변과 함께 농사짓고 묻고 배우고 땅에 적응하는 거죠.
시골이란 공간에서 도시와는 다른 삶의 대한 구체적인 상, 대안적인 삶?
일을 스스로 생각해서 할 수 있는 것이요…삶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것, 먹을거리를 챙길 수 있는 것, 건강한 농산물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는 것들이에요. 그런 게 바탕이 되어서 자연의 변화를 느끼는 거죠. 흘러가는 물 한 방울이 그저 스쳐 지나는 물이지만 그것이 내 안의 피를 돌게 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죠. 그냥 헛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미물에 눈뜨게 되고 봄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느끼고 가장 맛있는 농산물을 가장 먼저 가족과 나눌 수 있고요.
시골에 오니까 사람이 사는 데 가장 필요한 일상적인 것에 대한 소중함에 눈 뜨게 되는 거죠.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 해요…주입하는 도회지 제도권 교육의 이기적인 부분이 싫었어요. 조금 일찍 내려오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데 작은 아이와 큰 아이의 반응이 다른 것을 볼 때 그래요…큰 아이는 감흥이 좀 적어요.
택배가 가능한 농산물은 다 직거래로 팔았아요…회원이 4,000명이 되었어요.
농사공동체? 그렇게 농사짓다 보니 가정생활이 없어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고 내일 비온다 하면 라이트 켜고 밭을 갈았어요.
가정은 평화를 찾았는데 수입은 다시 내려왔어요. 농사 공동체 3년 동안은 그런 게 없었거든요. 저는 저대로 외롭고 이 사람은 육체적으로 외로웠고요. 작년에 농사를 줄이니 면적이 논까지 4,000평 정도 되었는데 그러니 좀 평화가 와요. 산책하고 싶을 때 산책하고 비오면 어디 훌쩍 다녀올 수도 있고요.
우리집은 가족회원이 있어요. 4인 가족 기준으로 품목이 쭈욱 있어요. 1년 동안 그때 그때 보내 드리는 거예요. 감자 20 kg 1박스, 옥수수 2자루, 쌀, 잡곡, 장류 등 가정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거예요. 우리에겐 1년 농사짓는 데 필요한 기초 자금이 돼요. 가족회원은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요. 품목은 개개인별로 조절할 수도 있어요.
자기 결심과 생각이 중요하겠지요. 가치관이 좀 제대로 서야 해요. 도회지 습성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음식만 먹겠다고 하면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거예요.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아죠. 그런 가치관의 변화가 제일 먼저 필요해요. 그리고 동네 분들하고 잘 어울려야 해요. 왜 동네 개보고도 인사하라고 하잖아요. 인사만 잘해도 좋아하시니까.
시골 아저씨들이랑만 소통하며 살기가 어려웠어요…사람이 내려오면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서 소통이 시작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그게 다 마련되어 있어요. 특히 괴산은 기본 바탕이 다 되어 있어요.
도농공동체? 도시에서와의 관계를 끝까지 가지고 오면 참 좋아요. 가족회원 30가족이 우리를 살리고 그들도 살아요. 도시의 인연을 귀하게 가지고 오세요…도시의 친구들은 생필품을 계속 대줬어요. 뭐 가져오면 좋겠냐고 하면 치약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손님이 많이 오시니 치약이 제일 많이 소비되더라고요…도시에서 맺은 관계를 그대로 시골로 가져올 수 있다면 여기서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제대로 늙어가야 하지 않나…마을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하고 있어요…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건나물 묵나물 만든 것들을 가져다고 용돈벌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설계하고 있죠. 마을이 행복하게 잘살아야 저도 잘 사는 것이고 또 농촌공동체에 활력도 생기지 않겠어요.
#약초 농사를 꿈꾸는 농부 김영준_괴산읍 제월리
얻은 것 많죠. 일단 마음이 편해졌고요…마음 편하게 소득을 발생시키고 크든 작든 그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제가 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것이 얻은 것이고 도시적인 생각을 버리게 된 게 얻은 것이면서 잃은 것이에요.
#대안학교 교사 허선웅_괴산군 자립형대안학교 <느티울 행복한 학교>
사람과 사람이 진짜로 만나면 감동이 있다
중고등통합형 비인가 대안학교
괴산(槐山)의 순우리말 느티울에서 몸과 마음과 정신의 자립을 배우며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연습. 학교의 슬로건은 ‘삶은 차 좋은 배움터’
우리의 삶이야말로 참 좋은 배움터입니다
마을학교에 대한 꿈
물리적 공동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적 공동체를 뜻합니다. 흔히 공동체라 하면 한 마음에 모여 살거나 특정한 일을 함께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하시는데 광의적으로 봐야 합니다. 한곳에 모여 있다고 해서 공동체는 아니거든요. 이 마을 저 마을에 살아도 서로 관심을 갖고 어떤 일을 함께 품앗이도 하고 새로운 일을 누가 하려 하면 아낌없이 도움도 주고요. 커다란 의미에서 괴산 지역 공동체를 꿈꾸는 거죠. 그것이 학교가 중심이 되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길 바라고요.
귀농하기 전에 생각하는 농촌의 삶은 잔디죠. 전원생활을 그리니까. 하지만 닥치면 잡초예요. 잔디의 가치는 여유고 잡초는 생활이고 일이에요. 밖에서 보면 성숙한 사람들이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상적인 곳으로 생각하고 와요. 생활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대안학교도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라 모든 것이 다 힘들죠.
느티울 행복한 학교의 좋은점? 행복이 가장 중심 가치죠.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공부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자는 것이죠. 아이들이 대안학교를 다니면 제일 좋은 것은 정서적인 부분이에요. 제도권 안의 학교는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은 모두 무시되기 십상이에요.
교과과정에서도 일반 학교는 지식 교과 위주로 편성되어 있잖아요. 그게 머리는 크고 몸은 왜소한 현대인을 표현한 조각상과 같다고 봅니다.
머리만 계속 쓰는 거죠. 그건 삶이 없는 거예요.
우리는 살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는데 실제론 일하기 위해 살고 공부하기 위해 살고 있어요. 학생들은 공부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보여요. 우리는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가르치죠.
현실과 철학의 괴리? 중원대 영상학 전공학생의 질문과 법륜스님의 대답.
현재의 스펙으로는 메이저급 방송국 불가능, 학과 교수님도 포기하라 조언하셨답니다.
학생이 하고 싶은 게 철학을 가지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방송국에 들어가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요. 좋은 다큐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하는 데 가서 1년 근무하고, 또 다른 곳에 가서 일해보고 한 3년 살아보라고 하시더군요.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영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냐고요.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찍는 것이 더 중요하지 좋은 방송국에 들어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대안학교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꼭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아도 그것보다 더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짜가 된다는 건 돈을 조금 버리면 되겠죠.
우리는 학생들을 엘리트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라고 가르치진 않아요. 돈을 적게 벌더라도 진짜가 되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두번째는 협동조합 관련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졸업한 학생이 일할 곳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에요…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구조의 사업체가 많이 생겨서 아이들이 그런 직장에서 자기 뜻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고민이죠. 대학이 아니어도 학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를 느끼고 고민해요.
학생들에게 졸업 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함께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삶의 터전을 다져가자고. 그렇게 되려면 기반을 만들어줘야 하는 책임까지 있는 거죠.
스스로 가진 가치에 맞게 가르치고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죠…저로 인해 학생이 변화되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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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