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 루쉰. p215
나도 젊었을 땐 많은 꿈을 꾸었다. 뒤에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리 애석하진 않다. 추억이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쓸쓸하게 만들기도 한다…그 남은 기억의 한 부분이 지금에 이르러 『외침』 이 된 것이다.
일본 의학전문학교 유학에서 문예로? 내꿈은 아름다웠다. 졸업하고 돌아가면 내 아버지처럼 그릇된 치료를 받는 병자들의 고통을 구제해 주리라, 전시에는 군의를 지원하리라,..이런 것이었다. 그런데….미생물학 강의시간 환등기 사진..러일전쟁…체포된 스파이…한 사람은 가운데 묶여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주변에 서 있었다.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몽매한 기색이 역력했다…구름같이 에워싸고 있는 자들은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구경꾼이었다.
그 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도쿄로 왔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의학은 하등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겁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건장하고 우람한들 조리돌림의 재료나 구경꾼이 될 뿐이었다…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저들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제대로 뜯어고치는데는, 당시 생각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문예운동을 제창할 염念이 생겨났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보겠노라 대답했다. 이 글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나는 이제 절박해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 하는 그런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지난 날 그 적막 어린 슬픔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 터, 그래서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고함을 내지르게 된다. 적막 속을 질주하는 용사들에게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도록 얼마간 위안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함성이 용맹스러운 것인지 슬픈 것인지 가증스러운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 돌아볼 겨를은 없다. 내 젊은 시절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청년들에게 내 안의 고통스런 적막이라 여긴 것을 더 이상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제목은 이 소설집의 의미와 성격을 여과없이 전해준다. ‘외침’은 그 자체로 계몽주의적 언어에 속한다. 그것은 창문 없는 철방을 울리던 각성자의 일갈이자 5·4정신에 대한 웅변이면서 동시에 무지몽매한 국민성을 향한 고함이다.
“루신은 이미 인류의 고전이다. 그 없이 중국의 5·4를 논할 수 없고 중국 현대혁명사와 문학사를 논할 수 없다. 그는 사회주의혁명 30년 동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존재했으나 동시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금구를 타파하는 데에 돌파구가 되었다. 루신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대결했다. 그의 ‘필사적인 싸움’의 근저에는 생명과 평등을 향한 인본주의적 신념과 평민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혁명인으로서 루신의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