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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근본적인 정의는 생각하는 노동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선생님, 연구가, 학자라는 표현을 넘어 사상가( think/er)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공부를 한다. 사상가라는 말이 스피노자, 푸코, 니체 등을 떠올리게 해서 거창해 보이지만, 사상가는 단어 그대로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다. 즉, 자기만의 사유 방식, 쳬계, 입장을 추구하고, 자신만의 렌즈로 현실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새롭지 않은 공부, 생각하지 않는 공부라면 왜 해야 할까. 공부가 어렵다? 이는 생각이 불편함(문제의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상과 기존의 언어와 일치할 때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기 경험과 규범(이데올로기)이 불일치할 때는, 자신과 세상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든 타인을 설득하든 새로운 생각을 찾아야 한다.
도서관의 기능은 공간 자체에 있다? 도서관은 내가 책을 선택하는 곳이지도 하지만 책이 나를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지식의 습득으로서 공부’와 ‘생각으로서 공부’의 결정적 차이는 정치적 입장의 유무다.
생각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생각은 그 자체로 새롭고, 사유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하고 공부할수록 무지에 대한 공포는 상승한다. 스스로 작아지고 우울해진다. 공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몰두해서 계속 자기의 한계, 사회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무이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면 생각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부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우리의 삶 전반에 일생 동안 이루어져야 한다. 어제의 나를 넘어 새로운 나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동력이라서 그리고 나의 변화와 성장을 넘어, 내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회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진정한 공부는 완전체가 된다. 거창한 사회에의 기여나 업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의 공부가 매일 만나고, 관계 맺는 나의 가족을 위해, 동료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사회를 위해 쓰일 때 진정한 공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