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전쟁 문화전쟁. 주영하. p324
음식에 얽힌 인간의 행위는 인간의 삶 자체이다.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인간의 행위 속에는 너무나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문학적인 표현들이 가득하다. 다만 우리가 그러한 의미를 요사이 들어서 자각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인류학이란 학문의 안경을 쓰고 살펴본 우리의 먹고 마시는 행위
#기근과 포식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
왕조의 성립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먹을거리를 통치자에게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비록 식욕이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고 하지만, 그것이 권력과 탄탄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사람들의 음식 욕심은 독 정치적 욕구가 되었다
“음식으로 가득한 위장이 최고의 도덕”이라는 말은 로마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신대륙의 발견과 19세기 유럽 각국의 식민지 경영은 유럽인들을 기근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결국 20세기는 적어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포식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주도권을 쥔 미국을 중심으로 식품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했다
인류학자 라페와 콜린스는 가뭄과 기근 그리고 굶주림의 원인이 단순히 표면적인 가뭄 때문만은 아니라고 단언했다…1920년대부터 프랑스의 식민지 관리들에 의해 면화 생산을 위해 시작된 집단적 농업은 토지를. 척박하게 만들있고, 가축을 먹일 초원 지대가 줄어들게 했다. 특히 자의적으로 그어진 국경선은 목축민들의 이동을 어렵게 했고 결국 자연 환경 파괴를 가속화시켰다. 이것이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이 지역의 지속적인 가뭄과 그로 인한 기근과 아사를 조장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의 기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제1세계의 시민들이 엄청난 기부금을 투자하고 있지만, 이미 파괴된 자연 환경을 되돌리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것 같다.
음식으로부터 여성의 해방? 오랜 시간 동안 부엌에서의 지식을 독점했던 여성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공장과 식당에만 의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장과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은 자본주의적 논리가 가득 찬 음식이다.
‘요리=여성의 일’이라는 관념? 오로지 ‘인간다운 음식’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실패한 식혜? 전통 음식이란 대체로 속도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동시에 이것은 가내에서 몇 사람의 가족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패스트푸드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마치 아날로그 방식의 전화를 무조건 디지털 방식에 끼워서 왜 통화가 안 되지 하며 근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날로그는 아날로그이며 디지털은 디지털이다. 서로 호환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가능하겠지만 완전히 바꾸려면 하드웨어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새로운 개념인 ‘슬로푸드’의 등장)
‘흰 쌀밥에 고깃국으로 배불리 먹자’? 한편 농사 정책을 쌀에만 집중시킨 남북한 양쪽은 이제 자연환경의 파괴에까지 이르렀다. 개펄을 논으로, 오염의 지원지로, 화학비료와 농약의 대량 살포, 무리한 관대 농업은 지하수 고갈, 황폐화된 땅
얻는 만큼 주어야 하는 것이 자연인데, 얻은 만큼 주지 않고 계속 빼앗기만 해 온 일류의 역사는 이제 거대한 함정에 빠졌다(부족한 유기농의 생산량? 적게 먹으면 된다!)
#음식과 기술
근대 식품 공업의 시작은 자본주의의 출발과 같은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시장 경제의 논리다. 이른바 소비자의 욕구에 충실히 맞추어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이 공장주나 자본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밀가루에 표백제를 쓰게 된 이유는 단지 소비자들이 흰색의 밀가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마도 제분업을 하는 자본가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노라는 것인 많은 판매이지 결코 소비자의 건강한 신체를 염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불고기는 한국 것이 아니고 일본 것? ‘맥적’이나 ‘너비아니’로 알려진 불고기는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천대받은 유기농? 유기농업 농산물의 수확량은 결코 많지 않다!
비싼 가격과 기아문제의 해결이 가능한가? “사람들이 먹는 양을 줄이면 된다”-원경선 풀무원장
#음식과 경제
공동체 음식에서 경쟁적인 음식으로
전통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음식들을 스스로 소비하기 위해 생산했기 때문에 상표명이나 제품의 이름을 내세운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스럽게 등장한 가공 식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제품 자체의 고유한 명칭과 상표를 혼동하게 만들었다.
#음식과 공동체: 식사 습관과 맛의 사회화
음식의 진짜 맛을 잘 아는 ‘미식가’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음식은 어떠한지를 잘 구별해 내는 ‘맛의 감별사’가 존재할 뿐이다…그것을 맛본 외국인은 그저 맵다고만 느낀다. 그들은 고추장 속에 숨어 있는 깔끔한 맛을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 (느낌의 차이)
‘어떻게 하면 모든 국민이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3공화국 정부가 펼친 벼농사 중심의 농업 정책은 결국 한반도에서 콩이나 밀과 같은 잡곡 농사를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농산부에서 낸 통계 자료에 의하면, 1965년 보리와 콩은 자급자족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1989년에 와서는 쌀과 보리만 자급자족하고, 콩은 국내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아 외국산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기술은 문화의 한 요소이다. 문화란 사람이며, 문화인류학은 그 사람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지닌 기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과 같다.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음식은 그가 지닌 기술이며 그가 지닌 문화이다.
한국의 전통 음식이 지닌 보이지 않는 기술은 전통 세대의 삶 속에 있다. 그 삶을 재구성하면 기술이 보인다.
더러움의 본질은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물질’
#음식과 민족
오늘날 우리는 음식을 선택하면서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 소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우리가 매일같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행하는 음식 선택은 예전 사람들에 비해, 심지어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 비해 덜 자유스럽다.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 중에서 약 30% 이상을 식품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에 기대고 있다. 나머지 음식 재료들 역시 판매를 목적으로 식품 원료를 재배하는 농민들 선이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민족음식? 경험적 합리성에 기초한 식사 구조

굉장히 깔끔한 정리입니다 많은 도움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책도 일독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