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권산. p369
지리산닷컴 jirisan.com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왜 내려왔나?”
“뭐해서 먹고살 건가?”
거처를 위하여
수도 없이 거처를 옮겨왔고 그 변동의 대부분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나의 뜻대로 살고 싶었고 조금씩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더 온전하게 나의 뜻이 반영되는 거처를 생각한다. 거처(居處). 자리를 잡고 사는 일이다.
#서울에서 우연히 먹고살기
다르게 살고 싶다
www.iam1963.com
2005년 2월에 두 주 간의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나의 마음은 스스로 일상을 폐업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완전히 무제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이제까지 내가 한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세상이 생각과 다르게 뒤집어졌을 때
세상을 뒤집어버리는 것,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
분명한 것은 불안한 미래를 향해 별 다른 대안 없이 습관적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멈추는 순간 작동되던 모든 살림은 일순간에 쑥대밭이 되기 때문이다.
‘지리산이라도 다녀오시지’
“내년 이맘때 완전히 내려올게요”
가능하면 남은 인생을 노골적으로 나를 위해 살자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불행하면 주변도 불행해진다.
#1 신입신고식
왜 욌어요?
뭐해서 먹고살 겁니까?
서울이 좋지 않아요?
그런데 왜 왔어요?
…
“지리산닷컴 운영할 것”
“그 사이트에서 밥이 나와?”
“지리산닷컴이 뭐하자는 사이트야?”
그는 단순한 웹디자이너를 구하거나 만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 듯했다. ‘같이 할 사람‘이 그가 구하거나 원하는 인력의 실체였다.
지리산닷컴은 수익성 사이트가 아니다. 포괄적으로는 미디어 성격의 사이트를 지향하지만 ‘옆 집 지정댁 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라는 소식이 메인 뉴스로 올라갈 수 있는 사이트이니 통념상의 미디어와는 거리가 있다. (‘상품성 있는 뉴스’보다 ‘소외된 소식’을 전하는 역할)
물음표 없는 ‘행복하십니까‘라는 편지 제목
#읍내 텃밭-‘생쑈’를 해라
“그것들 봤냐? 열무 꽃다발 들고 내려가는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웃었다
#텃밭 위 컨테이너 사무실
세상의 어떤 디자이너가 이런 창밖 풍경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농사짓지 않고 시골에서 사는 디자이너다.
#살구나무와 이웃들 그리고 신입생
시골에 살면서 아주 명확하게 깨달은 사실은 ‘식물들의 한순간’은 정말 찰나라는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일 년 후의 모습이 오늘과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사무실 앞 살구나무? 어떤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이름의 실체를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쉬운 것이 외면이다
그동안 포토샵으로 무수히 전깃줄을 제거했는데 현실에서 내가 제거할 수 있는 전깃줄은 하나도 없었다.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에 유기농이다 뭐다를 더해서 원하지만, 막상 그들이 찾는 자연광 건조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시멘트 마당이 적격이다…돌담과 자연건조 태양초가 공존하기 힘든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지정댁은 ‘보루꾸 담’을 원하고 도시 사람들은 ‘자연건조 태양초’를 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은 작물을 사랑해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정기적이고 습관적으로 뿌려준다.
“고추 따갖고 가. 끝물이라 요즘은 약 안 흔께 걱정 말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농약 텃밭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신뢰와 배려다.
도시는 익명을 조정하기는 이곳은 익명이 존재할 수 없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른 것이다
#배추모종이 김치가 되기까지
분명한 것은 김장은 ‘돈이 하늘이다’라는 세상의 대세에 대해 나름으로 ‘밥이 하늘이다’라고 항변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스스로 키우고 스스로 담근 행위, 김장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밥이 하늘이다
#2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마을신문을 만들다-마을주민 되기 프로젝트
“마을과 사람들을 풍경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기농 밀 프로젝트
우리는 쓰레기 같은 식재료를 복용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밥벌이(먹고 살기위한 돈벌기)? 모든 식재료 구입해서 먹는다
선택권은 없다? 우리은 메뉴를 보고, 가격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 재배하지 않는 한 식재료 선택권은 없다. 단지 들고 있는 돈이 우리가 먹을 식재료의 질을 결정할 뿐이다.
유기농, 친환경 트렌드? 유기농이란 개념의 출발은 최초 하나의 ‘운동’이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는 의미로 발생한 운동이었다.
음주가무산업보다 못한 농업? 음주가무산업비중 4퍼센트, 농업 3.5퍼센트(대한민국 전체 산업 생산 비중)
***후발 산업화 국가에서 농업의 퇴조는 필연적이었다. 공업화는 농업을 수탈하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먼저 출발한 서양 나라들은 자국의 농업을 수탈하지 않아도 공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식민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보고 배워라”라고 그들은 지도했고 그들을 보고 뒤늦게 출발한 후발주자들은 내부에서 ‘빨아먹어야’ 했다.
나는 농민도 아니고 농민운동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농민운동의 미래는 소농중심의 생태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가운데, ‘탈시장, 직거래운동‘에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기존 시장에 속하는 방식으로는 농민운동뿐만 아니라 그 어떤 운동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기존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시장을 경영할 수 있다면 물론 아주 심각한 정치적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기존 시장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아주 큰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녹색혁명의 주인공? 석유(비료와 살충제)
햇볕과 물과 바람으로 농사를 짓던 시절에 비해 평균 50배 이상의 에너지가 투입된 것이다(실제로는 비효율적 혁명)
식량위기? 모든 인간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세계 곡물생산량 40퍼센가 가축사료, 미국은 80~90퍼센트 곡물이 가축사료(사람이 굶지 않기 위해 경작하는 곡식이 아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 27퍼센트, 쌀을 빼면 5퍼센트 수준
우리가 식량을 지원하는 북한의 자급률은 75퍼센트!
우리나라 에너지 해외의존율은 97퍼센트, 세계 1위, 밀 자급률? 0.3퍼센트, 옥수수는 0.8퍼센트
식량 무기화? 표현만 완화된 전쟁상태다!
*유기농 밀 베기
막상 ‘내일이면’ 밀을 벤다고 하니 마음이 급하다. 물론 ‘어떻게 팔지?’라는 문제와 당면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다! 지리산닷컴과 운조루 사이트 모두 동원해도 얼마나 팔 수 있을까?
비싼 우리밀 소비자? 경제력과 철학이 일치해야 가능한 일이다!
구례 오미동 들판에서 세계 5대 곡물 메이저 회사를 침몰시키기 위한 작전을 진행 중인 지리산닷컴 이장이었습니다. 필승!
***농부는 밀가루를 사먹는다
그러나 자신이 키운 밀을 먹지 않는다. 거의 전량 구매를 한다.
수매가 40킬로그램 한 가마니 삼만오천원
농부는 한가머니를 삼만오천원에 넘기고 10킬로그램 정도의 밀가루를 먹기 위해 비슷한 비용을 지불한다.
“그럼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이야!”
유해물질 덩어리 밥상? 우유가 몸에 좋다. 백밀가루가 몸에 좋다는 유통라인을 잇는 대기업들의 거짓말, 광고의 홍수 속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를 조작한 그들의 마케팅 전략에 속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우리는 이런 시스템의 어딘가에 배치되어 노동하고 월급을 받고 밥을 먹고 산다.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 더 비싼 것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먹고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조절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정치다.
나에게 언제나 중요한 한 가지 화두는 ‘구체성’이었다.
“중간에 안 가고 끝까정 도와주니 고맙네.”
“지아 할매(운조루 어르신)가 이야기하제? 잘 되얐네. 같이 하세.”
시골에서 소문은 곧 결정이다
귀농과 귀촌. 물론 아시겠지만 비슷하나 의미는 다르다.
그 모든 결과는 경제와 연결되었다…노동은 신성해야 하는데 고통이 우선 감정으로 자리한다.
…”무엇이든 해라”라는 말보다 “무엇을 하지 마라”라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왔다. 시작과 끝을 스스로 결정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단지 똥과 오줌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권리만 부여받았다. 대부분의 경우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없었다. 대열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동경하지만 실행하기는 힘들다. 새로운 시작은 우선멈춤을 전제로 하는데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은 엉망이 되기에. 어쩌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달리고 있는 우리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사는 방식이 당신을 말해준다.
#3 이웃과의 인터뷰
젊은 대장정이 박경종
기계화는 일을 편하게 만들었지만 사람들을 일터에서 내쫓기도 했다
24시 ‘인정수퍼’의 래드우먼, 문덕순
그녀는 항상 ‘지금’이 좋았을 것이다…지금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네 인생은 피곤해진다. 자신에 대한 부정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그녀는 단지 단 한 번도 ‘지금’을 외면해본 적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농부 홍순영
나에게는 길가의 잡초지만 그에게는 농사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영양제이자 살충제들이었다.
“박스가 문제여? 감이 문제지.”
맞다. 세상은 포장에 너무 열중하고 있다.
염도가 높은 농협이나 농약방 퇴비? 확인할 길이 없다!
연곡분교에서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처음 만나도 몇 등이냐고 물어본다.’-백창우와 아이들 노래
아이들의 환경은 결국 어른이 결정한 것이다…연곡분교의 아이들 역시 스스로 이런 환경을 택한 적은 없다.
삶은 문학이 아니라 주로 기술이었다. 기술은 연마하고 구사하고 전수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말에 살짝 의문을 표했다. 어른들은 끝까지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 하고 싶은 일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어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일 것이다.
귀촌 신입생, 마을 사무장 박용석, 윤은주 부부
“..제 일은 주로 듣는 거예요…”
사람은 대우받을 때, 특히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상대방을 새롭게 본다. 특히나 대우받지 못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그 반대일 경우 사람은 거칠어진다.
“…여기서는 지식이 아닌 다시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요…그것은 지식과는 좀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힘든 점은 어떤 게 있나?”
“긴장감의 종류가 달라요. 그런데 견손하기만 하면 대략 해결돼요. 그리고 늦잠 문제.”
“..막상 결행을 못하는 이유가 뭘까?”
“돈?”
“음..돈 때문에 오지 못한다면 서울에서는 얼마나 안정적이란 이야기야?…소박한 삶을 지향한다며?”
지금 박차고 떠날 만큼 오고 싶다면 오는 것이지. 정말 오고 싶어요?
#4 어떻게 살아야 할까?
덜 소유하고 조금 더 행복하다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소중하다
대부분의 빈곤감은 절대평가보다 상대평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충동구매는 힘들다. 모든 구매는 필요와 직결된다. 살림만큼 소비한다.
#묵은지쌈 앞에서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온 이후 가장 확연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먹는 문제다. 구체적으로는 식재료의 질적인 변화다.
나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출발은 항상 밥상이다
장담하건대 우리집 밥상은 검소하다…우리집 밥상은 대부분의 경우 식사가 끝이 나면 모두 빈 그릇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행복하다.
권정생! 생각과 실제 삶을 일치시킨 보기 드문 사람이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직접 키운 채소를 먹는 일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다!
베트남 ‘사파’ 다큐멘터리
신발을 신지 않았을 때 그들은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발을 신고 나자 남루해졌다. 이제 그들은 가난을 알게 되었다.
‘오래된 미래‘ 이야기? 가난을 인식하게 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불행을 경험하게 된다
장터에서의 소비와 지출은 항상 겸손하다
뾰족한 수가 없다보니 사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은 결국 생각한 대로 살아보는 것을 단 하루도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란 폴 벌레리의 악담을 실현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와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가장 큰 실수는 ‘농촌’을 ‘개조 대상’으로 바라본 나의 기본 시각이었다…근본은 교만이고 착각이다. 평생을 살아왔던 그 많은 도시의 마을들을 개조해볼 생각을 과연 단 한 번이라도 했었는가?..대한민국 문제점 100가지중 99가지는 도시에 있지 않은가?
오랜 시간 동안 생각과 현실이 모순되는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적개 소유하고도 점점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그것은 현실이 영화처럼 되는 그런 과정이리라.
이곳에서 나는 산과 강과 들과 사람들과 나무와 풀과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또 스스로 치유 가능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이곳에서는 상처가 빨리 아문다.
매일 새롭다. 출근길의 나무 한 그루가 새롭고 온몸으로 느끼는 계절의 전환은 충격적이다. 예측은 가능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랜덤한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 속에서 살아가는 조연배우가 된 기분이다. 늘 보았던 영화가 아니라 재미있다.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 계획이다, 스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