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를 읽다. 양자오. 유유출판사
공자는 ”때를 아는 성인“으로서 누구보다 시대의 수요를 잘 알았습니다…역사적으로 공자는 대단히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행한 일들은 실질적으로 주나라의 봉건 문화를 망가뜨리고 훼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동경한 것은 옛 봉건 체제, 다시 말해 그 자신과 같은 ‘스승’이 있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양자오 #공자 #논어를읽다

‘인재시교’. 인물에 맞게 가르치는 교육방식…진정한 교육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답이 아닌 답을 제자들에게 내줄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승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인재시교 #공자 #논어를읽다 #양자오
양자오는 이 책 <논어를 읽다>에서 성인 공자를 인간 공자로 되돌려 놓는다.
“사야, 너는 어찌 이렇게 늦게 왔느냐?”

성인이 된 공자는 자공이 기억하는 공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공이 상복을 입고 고기와 술을 멀리하며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공자는 완벽한 인격자도, 진리의 확성기도 아니었다. 단지 배움 그 자체를 즐기고 어지러운 세상에 예를 회복시키려 했던, 진실하고 다면적인 한 인간이었다. #양자오 #인간공자 #논어를읽다
그 말들을 완벽하게 정리된 진리로 받아들여 줄줄이 외우고 실행하기보다는 그 말들의 진면모를 복원함으로써 단편적이지만 진실하고, 또 단편적이어서 오히려 진실한 이 기록에서 2천 년 전에 살았던 한 훌륭한 인물을 관찰하는 편이 낫습니다…이런 방식으로 <논어>를 읽는 것은 전통적인 독법보다 힘들지만 재미있습니다. 힘든 이유는 독서 과정에서 공자를 인간으로 복원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수동적으로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공자 #인간공자를읽다
“사람을 알면 그의 책이 읽힌다”,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논어>에서 공자의 말과 의견은 상황과 대상에 따라 이야기된 겁니다. 절대로 무슨 시험 같은 것을 위해 구상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읽어라 #상황과맥락 #인간공자 #양자오 #논어를읽다
그러면 상례는 왜 이렇게 고안되었을까요?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당연히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상례에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각양각색의 의식을 배치하여 산 사람이 계속 일을 하게 함으로써 감정을 통제하고 천천히 슬픔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장례와 제례의 핵심은 기억에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생전에 다른 사람과 가졌던 관계를 생생히 기록하고 그 관계망 속에서 그가 차지했던 위치를 중심으로 그가 살았던 일들을 추억하는 것입니다. #안회의장례식 #추모는기억하는것 #장례와제례의목적
‘인’은 본래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질다는 뜻이 아니었다!)
언제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까요? 가장 흔한 상황은 그런 일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지 의식하지 못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어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할지 세심하게 생각하지 못할 때죠. 자기만 알고 자신만 신경 쓰는 것, 그것이 바로 무절제한, “예가 아닌 것”입니다. #무례 #무도 #청문회풍경 #이진숙 #양자오 #논어를읽다
공자는 걱정이 많았다? “덕을 닦지 못하고, 배운 것을 연구하지 못하고, 의로운 얘기를 듣고도 실천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한 점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근심이다”…공자는 언제나 배운 다음의 일을 걱정했습니다…많은 사람이 거기에 머무를 뿐 ‘그다음’이 없습니다. 특히나 스승은 더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지식과 기능은 가르칠 수 있어도 가장 중요한, 그 지식과 기능이 자신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게 하는 것만은 가르칠 수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자의근심 #배움 #실천 #깨달음

서부진언, 언부진의 (書不盡言 言不盡意). ‘어떻게 읽느냐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이다!’ 판에 박힌 ‘성인’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를 읽어주는 논어 해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