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산책자. 애스트라 테일러.
8인의 철학자, 철학이 사라진 시대를 성찰하다
철학자와 함께 산책하다

나는 철학자들에게 “나와 함께 걸어요. 바깥에서 당신들의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해 봅시다”라고 제안합니다.
“거리로 나선 철학”
사회를 변혁하려면 이론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요.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삶의 질을 평가할 경우 분배는 아예 논외였습니다. 엄청난 불평등을 안고 있는 국가가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지요….아리스토텔레스는 정부의 목표가 사람들이 풍요로운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단수가 아닌 ‘복수Plural’라는 중요한 통찰을 던집니다…마르크스는 우리가 이처럼 ’복수‘를..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한번쯤은 철학에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자구책을 찾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나 우리 세상을 이해할 통찰을 구할 때 과학을 바라본다는 얘기다.
철학자는 용감해야 합니다…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독자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려면 엄청난 훈련과 놀라운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찰하는삶#철학자는용감해야합니다#불온한산책자#애스트라테일러
알다시피 많은 용기는 민중demos에게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아래에서 나옵니다. 상아탑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운동과 그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받는 거고요. #코넬웨스트
여러분이 아는 진리는 대개 불가사의한 요소를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그런 진리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며, 유한한 존재기 때문에 대문자 진리Truth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모종의 소문자 진리들truths에는 접근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소문자 진리들은 오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진리는 틀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 주장을 새롭게 고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코넬웨스트#소문자진리들#대문자진리
낭만주의적 욕망이야말로 시장이 추구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죠…금전에 의한 결합과 아윤 창출, 쾌락이 지배하는 삶을 원합니다. 이런 삶은 매우 피상적이고 미숙한 삶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이 경제 전체를 유지하는 방식이 되고 있으며 삶의 한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시장적 삶의 양식이죠. #자본주의#낭만주의#코넬웨스트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생애 마지막 30년 대부분을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시장의 편재성과 시장이 안겨 주는 해로운 결과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형식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보냈어요.
그러나 아도르노는 그 저항 형식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늘날에는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졌습니다. 시장은 우리의 삶 속으로 훨씬 더 깊이 침투했고요. #테오도르아도르노#코넬웨스트#반자본주의
당신이 하는 것만큼 생각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하는 것만큼 놀 수 있다는 사실에 왜 감사하지 않습니까? 왜 당신은 온전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온전한 것이 필요하다는 기대치는 어디서 옵니까? 낭만적인 기회에서 오는 겁니다…낭만주의 기획은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도시는 낙원 같다고들 하지요.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엉망진창, 거짓말 등등…,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미국은 토착민의 땅을 약탈하고,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노동자와 여성을 예속시키고, 게이와 레즈비언(소수자들)을 주변으로 밀어내는 가운데 대단히 허약한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어요.
온전함이나 조화를 더 많이, 아니면 어느 정도라도 얻고자 하는 갈망, 소외를 극복하려는 바람, 그리고 현대 사상가들의 담화에 철저하게 배어 있는 모든 낭만적인 수사들 따위, 나는 이 모든 것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블루스는 파국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베토벤이 남긴 말을 기억하자고요. “나는 세상의 온갖 어둠과 악을 보고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낭만주의자 베토벤이 아닙니다…베토벤은 그 낭만적 온건함을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체호프의 출발점이고, 블루스의 출발점이며, 재즈의 출발점입니다….블루스는 약탈에서, 잔해에서 시작해 계속 축적됩니다. 약탈과 전해가 바로 출발점이에요. 블루스는 개인의 파국을 서정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돕기 위해 달려온 당신들 북아메리카 동지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모두 돌아가 미국에서 혁명을 일으킨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혁명#미국에서혁명을#마이클하트
좌파가 이런 비판적인 역할을 스스로 떠맡게 된 이유는 바로 좌파가 혁명 가능성을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좌파는혁명을포기했습니다
혁명은 인간 본성의 변혁이다!
인간의 본성은 구성되는 겁니다. 인간 본성은 우리의 행동 방식에 따라 구성됩니다. 사실상 관습과 실천의 역사입니다. 과거의 투쟁, 과거의 위계질서, 과거의 승리와 패배의 결과이지요. 바로 여기에 혁명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열쇠가 있습니다. 혁명은 단지 민주주의를 위한 변혁이 아니라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인간 본성의 변혁을 요구한다는 점, 그것을 깨닫는 게 바로 혁명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혁명은 노예적인 습관을 타파하고 자치 능력을 발전시키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사람들의 바람을 확장시켜 현재의 정치 상황을 훌쩍 뛰어 넘게 할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혁명은인간본성의변혁#정치적상상력#혁명#인간본성
수단과 목적을 분리하게 되면 이행의 과정은 불행한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어요. 적어도 혁명의 경우에는 수단이 목적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유토피아를 막연한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미룰 수 없는 이유는 수단 자체가 민주적이어야 하기 때문이죠…이 과도기는 날마다 유토피아를 현실화합니다. #혁명#수단과목적#과도기#수단이곧목적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오늘날 거의 완벽하게 변질되어 버린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떨 때 민주주의는 단지 정해진 수만큼의 통치자를 정기적으로 뽑는 선거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죠. 다른 경우, 특히 국제 문제에서는 민주주의는 종종 미국의 뜻을 따르는 것을 뜻하고요. 민주주의의 본래의 뜻과는 완전히 반대되지요!
내가 미국 정치사를 즐겨 읽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이 아무 것에나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제안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오히려 민주주의를 막으려고 이 사실을 분명히 밝혔죠…“대중은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대중의 통치를 막기 위한 확실한 장치가 필요하다. 즉 우리에게는 통치할 엘리트가 필요하다. 헌법이 해야 할 일은 그런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죠. 일부 정치 과정은 이 개념을 둘러싼 싸움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노동입니다. 노동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것이면서 우리가 가진 큰 부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장소죠. 동시에 우리는 노동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노동#민주주의#훈련
“당신은 대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주려고 이곳에 온 북아메리카 이론가 아닌가요?”
“누구도 나를 따르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을 따르고 있는 겁니다.”
“혁명을 생각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어디며, 누가 혁명에서 혜택을 볼 것인가?”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오늘날 가장 못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그런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말하는 거죠. #모두를위한혁명#더나은세상
그런데 왜 재난을 막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건가요? 정신분석학에서 부인disavowal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지요. 그 논리는 이런 거죠.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믿지 않고, 마치 내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슬라보예지젝#생태#환경위기#부인
의미를 찾으려는 유혹에 저항하는 일은 왜 그토록 어려울까요?…의미를 찾는 일은 인간 본성이 지닌 일종의 자연스러운 유혹입니다. 그러나 의미 자체는 거짓입니다. 참된 의미도 없고 거짓된 의미도 없습니다. 의미 자체의 신화화가 있을 뿐입니다…의미란 무의미성에서 도망가기 위한 수단입니다…따라서 철학자의 의무는 의미를 제거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겁니다. 의미는 방어 수단이며 인간의 조건에서 나온 근본적인 거짓말입니다. #슬라보예지젝#의미#개구즉착
우리는 늘 현실 세계에 비추어 우리의 추상적인 이론을 검토하고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예컨대 정의론은 오랫동안 가족을 잊었죠. 정의론은 가정 바깥의 커다란 정치 공간에나 적용하기 좋은 이론들만 만들어 냈지, 가정 안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정 안에도 정의와 부정의가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한 거죠. #마사누스바움#정의론#추상화#철학이해야할일
지구적 정의를 생각할 때는…인간이 아닌 동물도 있지요. 나는 정의론이 동물을 포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도 품위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어요….사회계약론자들은, 사람들은 상호 이익을 위해서만 협력한다고 가정해 이론을 단순화했어요.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사람들을 협력하게 만드는 다른 동기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가정해 가정을 최소화하고, 이 가정에 합당한 이론 구조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게 더 간단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저 사람들, 빚도 못 갚아”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사유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게 만듭니다…사회계약론의 목적은 인간 본성을 완전히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고 그저 단순한 이론을 만들려는 데 있어요.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매우 협소한 가정에 의지하고 있지요. #정의론#장애인#사회계약론#마사누스바움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삶의 질을 평가할 경우 분배는 아예 논외였습니다. 엄청난 불평등을 안고 있는 국가가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지요….아리스토텔레스는 정부의 목표가 사람들이 풍요로운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단수가 아닌 ‘복수Plural’라는 중요한 통찰을 던집니다…마르크스는 우리가 이처럼 ’복수‘를 추구할 때 삶은 진정으로 인간다워지고 인간은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우리의 인간성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 단순히 생명만 유지할 뿐인 삶의 방식도 있다고 귀뜸하고 있지요. #아리스토텔레스#복수#plural#마르크스#지표
정치 원리는 인생관이나 인간 본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분열을 초래할 만한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철학자들은 종종 감성을 무시하곤 하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철학에서는 오래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남성 철학자들에게 감성은 정말 오랫동안 난처한 주제였지요…이 주제가 본격적으로 철학의 의제로 채택된 것은 사실 여성운동의 결과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감성에 먼저 주목한 것은 남성들이었어요. 만약 처음으로 감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여성이었다면 비웃음을 샀을 겁니다.
“윤리란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기본적인 선택에 관한 문제입니다.”
물에 들어간다고 당신이 위험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연못이 얕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좋은 구두를 신고 있죠. 연못에 들어가면 구두는 십중팔구 망가질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당연히 구두 따위는 잊고 아이를 구할 거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죠. “좋습니다. 나도 당신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신고 있는 구두 값 정도만 <옥스팜>이나 <유니세프> 같은 곳에 기부한다면, 가난한 나라의 아이를 한 명 이상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윤리#선택의문제#사치품#소비윤리#피터싱어
구할 때 삶은 진정으로 인간다워지고 인간은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우리의 인간성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 단순히 생명만 유지할 뿐인 삶의 방식도 있다고 귀뜸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