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의 탄생. 노마 히데키. 357쪽
‘문자’라는 기적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문자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누구나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사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문자가 텍스트가 되려면 전혀 다른 지평을 획득하여야 한다. 옛 현인의 말을 빌린다면 ‘목숨을 건 비약‘이 필요한 것이다.
‘훈민정음’이란 문자체계의 명칭인 동시에 책의 명칭이기도 하다.
한글의 탄생-그것은 문자의 탄생이자 ‘지(知)’를 구성하는 원자의 탄생이기도 하고, ‘쓰는 것’과 ‘쓰여진 것’, 즉 ‘에크리튀르’의 혁명이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미를 만들어 내는 ‘게슈탈트=Gestalt=형태’의 혁명이기도 하다.
문자는 음의 세계에 존재하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음과 모음을 나타내는 요소’, 즉 ‘음을 나타내는 자모’를 문자의 세계에서 조합하는 것이다.
한글은 언어의 명칭이 아니라 문자체계의 명칭이다.
말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대화는 의미를 가진 말을 주고 받는 캐치볼 같은 것이 아니다. 말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말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말은 먼저 ‘말해지는 것’으로 존재한다…’쓰여진 언어’로서 실현되는 혜택을 받은 언어는 많은 언어 중에서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언어는 ‘말해진 언어’로서만 존재하며, 어느 사이엔가 소멸되어 가곤 한다.
조사! 제아무리 영어가 능통한 사람이라도 뒤로 넘어갈 일이다.
풀알파벳! 역사상 유례없는 전면적 단음문자 시스템(풀알파벳)으로 완성된다.
문자를 만든다-‘음’이란 무엇인가?
15세기 조선 ‘정음학’-‘음소’에 가장 가까운 언어의 학문
세종의 반론? 그대들이 음으로써 글자를 합친다는 것은 완전히 옛것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설총의 이두 역시 한자와는 음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가 붕괴된다. 에크리튀르가 붕괴된다. 사대부들은 ‘지’와 에크리튀르의 근원에 대한 ‘정음’의 과격하고도 근원적인 장치에 전율하는 것이다.
‘정음’이여, 살아있는 것들의 소리를 들으라.
천지 자연의 ‘문장’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다.
이 땅에 ‘글’이 있음은 이 땅에 이 땅의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국 황제를 초월한 ‘천지 자연’이며 이 땅에 이 땅의 에크리튀르가 있는 것은 천지 자연의 이치이다.
쓰여진 언어와 말해진 언어.
이 땅의 ‘소리’를 글로 쓸 수가 없다.
오노마토페 에크리튀르-정음 혁명 강령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울음소리, 개가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써서 나타낼 수 있다.
문자가 텍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완저히 다른 위상을 획득하는, 결정적 비약이 필요하다. 그것은 마치 상품이 화폐가 되는 것과 같은,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이다.
‘정음’, 바른 음. 동국정운. ‘정음’이여 음을 다스리라 혼란스러운 한자음

정음은 왜 붓을 거부했는가?
스스로의 로지컬한 ‘형태’를 과시하는 ‘게슈탈트’의 변혁.
‘어리석은 백성’이 한자한문을 모른다는 것은 붓도 필법도 모른다는 뜻이다…’어리석은 백성’일지라도 흉내 내고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창세기의 정음은 ‘쓴’ 문자가 아니라 ‘그린’ 문자였다고 말한다…나뭇가지도 땅바닥에 끄적이기에 결코 부적합한 문자가 아니었다.
‘훈민정음’을 읽는다는 일. 훈민정음? 문자가 문자 자신을 이야기하는 책
‘정음’은 ‘문자 자신이 문자 자신을 말하는 책’으로서 세계사 속에 등장하였다…이런 점에서 그 존재의 양상 자체가 희유하다. 그 존재 방식 자체가 세계 문자사상 비할 데 없는 광망을 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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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탄생! 당연히 우리나라의 국어학자가 쓴 책일 것이라고 여겼지만, 뜻밖에도 일본학자가 샅샅이 파헤친 한글의 구조, 원리 그리고 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위대한 유산인 ‘우리글’ 한글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국어시간에도 배울 수 없었던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의 위대함이 일본학자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어색함을 무색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