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집3.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함석헌. 522쪽
세번째 국민에게 부르짖는 말(461-475쪽)
해방이 된 지 20년에 아직도 나라의 끊어진 허리를 잇지 못해, 부모 형제 처자가 서로 땅끝에서 울부짖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우리 할 것을 했다 할 수 있습니까?
얼굴은 사람이지만 소가지는 짐승인 놈들 일어나 당파싸움만 하며 너는 장관해라 나는 대통령 되마, 국민의 권리를 마구 짓밟고 있는 이때에, 이름은 이 나라 사람이지만 버릇은 외국 놈의 갈보 새끼인 것들이 제멋대로 안팎을 쏘다니며 한일회담이니, 베트남 파병이니, 뭐니 뭐니, 나라의 주권과 이익, 민족의 생명과 명예를 도미 위에 고깃덩이처럼 다 팔아먹고 있는 이때에,…
여러분, 결코 기운이 꺽여서는 아니됩니다. 기 곧 천지정기야말로 사람입니다. 절대로 생각을 잘못해서는 아니됩니다. 생각 곧 우주를 꿰뚫는 정신이야말로 문화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뜻을 세워야 합니다. 뜻 곧 유무를 초월하는 의지야말로 역사입니다.
이승만과 그의 무리였던 자유당에서부터 나무랄 수밖에 없습니다…주위에 달라붙은 썩은 세력을 물리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과 합하여 국민을 억누르고 짜먹기만 했습니다…인물은 그 모자라는 중에 있어서도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니 국민의 원망이 없을 수 없습니다.
민족의 정신을 꺾어버린 5•16
백 가지 시비 입쌈보다 천하에 환힌 사실이 5•16군사폭동 이후 나라는 급전직하 잘못되기 시작하여 오늘의 꼴에 이르렀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정신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론기관들이 미웠습니다…그러나 늦었습니다. 그러나 또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정말 잘못한 줄을 알면, 붓은 칼보다는 무서운 것입니다.
언론인도 밉지만 또 더 미운 것은 대학교수들입니다…지성적인 현대인을 지배해가는 것은 대학 교수층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수들이 적지 않게 자기의 자리를 내버리고 칼자루에 몰려 혹은 돈에 팔려 군사정권에 고문이랍시고 나왔습니다…
아아, 슬프구나!
도를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우냐? 그러나 도(道) 아니고는 나라도 인생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어찌합니까?
“그것들이 짐승이지 어찌 사람이냐”고까지 극단으로 꾸짖었는데도 불구하고 종시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단념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싸움은 그쳐서는 아니됩니다. 싸우는 정신이 있는 순간까지는 사람입니다. 죽어도 국민입니다. 나는 죽어도 나라는 있습니다. 그러나 싸우자는 투지가 시들어버리는 순간 나는 사람도 국민도 아니요 나라도 아무 것도 없는 짐승뿐입니다.
그러면 다시금 생각해봅시다. 이 공화당 정권은 나라를 해쳤는가?
첫째는 경제파멸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잘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한 악한정책입니다. 민중을 억누르고 만년 정권을 가지려면 민중을 극도로 가난하게 만들어서 기아선상에 헤매게 해야 하는 줄을 그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몇 개의 대재벌을 길러놓으면 정치자금 늘 바치니 좋고, 중소기업은 몰락하여 자유정신은 마비가 되니 해먹기가 좋은 것입니다. 증권파동이요, 중농정책이요, 특혜금융이요, 화폐개혁이요, 그들이 하는 모든 산업정책은 오로지 한 점, 민중을 파산시킨다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국민의 기를 꺽었습니다. 국민을 파산 시켜놓고는 기껏 하는 소리가 외국자본을 얻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의기로 됩니다. 호랑이를 잡는 것이 힘에 있지 않고 기운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는 더럽습니다. 군사정권도 처음에는 반미주의를 내세우더니 요새는 곧잘 붙어먹고 있습니다.
사상은 사상이니 그대로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는 더구나 늘 그대로 가는 것 아닙니다.
세계는 하나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닐 것입니다. 오불꼬불 곡절 많은 길을 걸어서야 갈 것입니다.
역사는 어느 면으로는 기적이 없습니다. 또박또박 한 대로 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하면 역사야말로 기적의 연속입니다. 하나도 예측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늘 사람의 계획과 요량 밖으로 벌어집니다.
옛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심판 없습니다.
역사의 심판이 있을 따름입니다. 역사의 심판이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만중은 절대 죽을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모습이 민중이요 민중 속에 살아 있는 산 힘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심입니다. 살기로 결심, 싸우기로 결심, 이기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까지는 싸움에 졌어도 내일부터는 꼭 썩어진 정치에 끝을 내도록 결심 합시다…한 사람 한 사람이 이제 시시각각으로 결심해야 합니다.
결심의 송곳 끝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현재의 악조건의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가 빠를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다듬으십시오!(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