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전쟁. 이희재. p
좋은 글도 문턱이 낮고 좋은 세상도 문턱이 낮다. 문턱이 높은 세상에서 모두가 포기할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절망과 싸우는 모든 나라의 선진시민에게 이 책을 바친다.
말을 상대로 보이지 않는 전쟁. 말과 앎 사이의 무한한 가짜 회로를 파헤친다.
말을 점령한 돈과 싸우다
금벌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populism을 포률리즘으로 충실히 따르는 데에 그치지 않고 oligarch를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올리가르히’라고 러시아 발음으로 적은 것은 한국인이 얼마나 이 세상을 돈으로 주무르는 사람들의 세상 번역에 맹종하는지를 보여준다.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만이 번역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영어든 한국어든 말로 담아내는 것 자체가 번역이다.
다원주의
아옌데의 집권보다 키신저가 더 두려워한 것은 아옌데가 재임에 성공하든 않든 무사히 임기를 마침으로써 칠레에 민주적 헌정 질서가 자리잡는 것이었습니다. 아옌데 모델이 성공할 경우 미국은 중남미를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칠레의 다원주의. 하지만 미국이 더욱 두려워한 것은 아옌데가 사회주의와 다원주의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옌데는 쿠바의 카스트로를 존경했지만 일당제를 추구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아옌데는 진정한 민주주의자였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다원주의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려고 했습니다. 카스트로 체제는 아무리 경제발전을 이룬다 하더라도 일당제, 독재라며 비웃을 수 있었지만 아예데 체제가 성공할 경우 미국은 그렇게 꼬투리를 잡고 비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25 베네수엘라의 기득권 세력이 일으킨 쿠데타는 아옌데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거리로 쏜아져나온 베네수엘라 국민의 저항에 밀려 수푸로 돌아갔습니다. 그뒤로도 차베스는 번번이 압도적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베스는 결국 2013년 의문의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차베스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뒤 차베스가 추구한 다원주의에 입각한 21세기 사회주의는 시련에 처했습니다.
30 독립 당시 무일푼. 에리트레아는 외국 자본을 적극 유치해서 빨리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유혹을 느낄 만했습니다…하지만 에리트레아는 외국에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시간은 걸렸어도 자력으로 복구했습니다. 덕분에 에리트레아는 외채가 거의 없습니다.
31 에리트레아에는 이렇다 할 자원도 없는데 왜 미국은 에티오피아를 앞세워 에리트레아를 무너뜨리려고 기를 쓰는 것일까요? 서방에게 빚을 얻지 않고 자력으로 번영을 누리는 독립국이 아프리카에서 생기면 자본주의 체제 말고 대안은 없다는 공갈협박이 먹혀들지 않을까봐 두려워서가 아닐까요.
33 에티오피아는 경제성장률이 높게 잡히는 나라지만 거기에는 외국 기업들이 매입한 에티오피아 농지 값도 포함. 에티오피아 소농을 몰아내는 데 들어간 돈이 에티오피아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으로 잡힙니다. 에티오피아의 경제성장률이 빛좋은 개살구인 까닭입니다. 에티오피아는 부패한 군인, 정치인이 대접받는 나라입니다. 반면 에리트레아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 대접받는 나라입니다.
인권탄압국가에 일당독재의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가 국가를 팔아 받은 돈은 부패한 특권층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다수 국민은 땅에서 쫓겨나 빈민가에서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죽어가지만 에리트레아 정부가 금광에서 얻은 수익은 고스란히 국민의 미래로 투자됩니다.
34 찰스 다윈은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적 감정을 여섯 가지로 보았습니다. 행복, 슬픔, 분노, 혐오, 놀람, 공포였습니다. 이 중에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생겨났고 또 사람에게 아직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감정은 누가 뭐래도 공포라고 현대의 진화심리학자들의 입을 빌려 스튜어트 월튼은 『인간다움의 조건』에서 말합니다.
흔히 다신교가 발전한 것이 일신교라고 말하지만 모든 다신교의 뿌리에는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문자 공포라는 단일한 공포가 있었습니다….인간을 움직이는 동심원의 중심에 있는 것은 나의 안전, 내 가족의 안전, 내 나라의 안전이 언제 남의 손에 유린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입니다. 그리고 외부의 위협이 지속되는 한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검증된 지도자를 준심으로 뭉치려는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37 하지만 올로프 팔메는 암살당했습니다. 진정한 다원주의자가 사이비 다원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소련과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또 한 명의 다원주의자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당했습니다. 진정한 다원주의자는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일당제 에리트레아에게 훈수를 두기 전에 우리는 진정한 다원주의를 굳건히 지켜내는 다당제를 완성시켰는지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포플리즘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주홍글씨.
원래 populism은 People’s Party를 만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기들끼리 이르던 말.
일부 온라인 영한사전에서는 ‘인민주의’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인민이라는 말은 20세기 초반에 러시아에서 정권을 잡은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정치이념의 주역을 가리키는 말의 번역어로 이미 선점되었습니다…서민주의자는 인민주의자일 수 없습니다.
잘못 붙여진 이름은 현실을 왜곡합니다.
차베스는 왜 미국한테 찍혔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서였습니다. 같은 산유국이라도 사우디는 미국에 기름을 팔고 받은 돈을 다시 미국 은행에 맡겼습니다. 미국 달러가 사우디나 주변 국가로 돌지 않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차베스는 외국에 기름을 팔아 번 돈을 자국 서민의 교육, 보건, 주택, 복지에 투자했습니다. 또 주변 나라에 몇십억 달러씩 저리로 빌려주면서 다른 나라들도 자국 서민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번 달러는 사우디가 번 달러와는 달리 미국 은행으로 돌아오지 않고 남미 안에서 돌면서 남미 경제를 살찌웠습니다.
게다가 차베스는 남미 은행을 세우고 남미 지역 공동화폐까지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중남미 지역 공동화폐가 자리잡으면 달러는 중남미에서 힘을 못씁니다. 달러가 힘을 못 쓰면 미국도 힘을 못 씁니다.
미국에게는 악몽입니다.
하지만 차베스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석유를 팔아 번 돈을 백인 상류층이 독식했지만 차베스는 사회에 투자했습니다. 수천 개의 병운을 지었고 의사를 열두 배나 늘렸습니다…병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들이 처음으로 무상의료 혜택을…학교도 많이 지어 문맹률을 뚝 떨어뜨렸습니다.
민간은행 RBS의 대주주들은 영국 정보의 공적자금 지원으로 주가를 고스란히 인정받아 투자금과 이익금을 고스란히 건지고 빠져나간 다음 RBS의 주가가 헐값이 되었을 때 다시 RBS 주식을 사들이겠지요. 금권자본가들이 금융 사회주의 정부의 지원으로 곱배기로 돈을 버는 동안 영국 국민은 빚더미에 올라앉습니다.
51 국민의 생존을 걱정하는 차베스의 사회주의 vs 소수 금융자본가들의 금권 세습 사회를 만들려는 영미사회주의? 그래서 뜬금없이 부패한 전직 장관의 칼럼을 실으면선 차베스를 까고 헐뜯었지요.
진보
노벨 경제학상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크루먼이 예견한 가장 큰 변화는 화이트칼라 직업은 기울고 블루칼라 직업이 각광을 받는다는 것.
미래학자들은 디지털 혁명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가치를 다루는 정보 직종이 뜰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바라는 것은 더 좋은 차를 몰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규모의 경제논리는 미국 농업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특히 농업에서는 소수만을 이롭게 합니다.
극우
더 좋은 깡패, 더 나쁜 깡패는 없습니다. 타국을 무단으로 침공하는 나라는 일본이든 영국이든 다 똑같이 깡패일 뿐입니다.
한국이 정말로 슬퍼해야 하는 것은 동족을 괴롭히고 능욕하고 고문하고 학살한 세력이 ‘우익’세력으로 군림하고 진보진영으로부터는 ‘극우’ 세력으로 규탄받는 어이없는 현실입니다.
전시작전권 환수에 결사 반대하는 세력이 군대와 정부의 중심에 박힌 나라에는 적어도 정치세력으로서 우익도 극우도 없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는 소녀상은 주한 일본대사관이 아니라 한국 국방부 앞에 두어야 합니다.
한국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미군 철수를 외치는 또 하나의 좌파정치세력이 아니라 미군 철수를 외치는 최초의 우파정치세력입니다.
선군정치
이승만의 총애를 받아 나중에 치안국장에까지 오른 일본군 하사관 출신의 김종원은 일본도로 ‘빨갱이’들의 목을 쳐나갔습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아내는 남편을 죽인 경찰 간부의 첩이 되어야 했고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간을 입에 물고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가족이 죽으면 만세를 부르도록 강요받았습니다. 한국 전쟁 전문가 부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학살은 남북 모두에 의해서 자행되었지만 규모와 잔인성에서 남쪽은 차원이 달랐다고 합니다.
미국의 문제는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이유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까닭은 다수 미국인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 금벌의 안전을 위해서인 거지요. 전쟁을 벌이면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어야 무기산업과 보안산업으로 돈을 벌 수 있고 테러의 위협을 들먹이면서 다수 세계인과 다수 미국인을 쥐어짤 수 있어서입니다.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은 반미주의자가 아니라 소수 미국인의 횡포에 분노하고 핍박받는 다수 미국을을 염려하는 친미주의자가 아닐까요.
음모론
전쟁을 원하는 금벌. 보어전쟁. 1차,2차 세계대전
음모론이 아니라 음모. 대량살상무기? 이라크 침공
역사
루신
절망과 싸우는 것이 희망
달라진 질문
미래가 과거를 규정하는 것이 역사
균형
평생직장
농부야말로 미래의 전문직
개가 주인 말을 잘 듣는 것은 먹이가 주인한테서 나온다는 걸 잘 알아서입니다.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목구멍이 포도청임을 알아서입니다. 자기가 먹을 식량을 스스로 생산하는 자급농은 평생직장입니다. 자급농은 풍요는 덜 누려도 자유를 더 누립니다.
지구를 살리는 것은 풍요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풍요을 누리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립을 지키려는 자유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