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151. 2016년 11-12월
#강은 흘러야 한다_최병성
4급수의 늪으로 전락한 4대강. ‘보’라 부르는 16개의 거대한 댐을 세우고 물을 가득 채워 강의 흐름을 차단. 흐름을 잃어버리니 강바닥엔 펄이 쌓이고 강이 죽어가기 시작한 것.
4대강 건설 5년. 강의 수심이 깊어지고 체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수질이 악화. 심층수에는 용존산소가 고갈.
‘지하수 유입량 감소가 진행 중’? 강에서 퍼 올린 펄 속엔 수분이 전혀 없었다. 미세한 펄 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 4대강의 수문을 열지 않아 펄이 더 두껍게 쌓이면, 강바닥으로 물이 스며들지 못해 결국 주변 지역에서 지하수 고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
창궐하는 녹조는 예상되었던 것. 강이 흐름을 잃어버리는 강의 상류와 하류 구분이 없어졌고, 강 상류에까지 녹조가 가득한 죽음의 강이 된 것.
4대강의 녹조와 그 위험성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일까? 아니다. 강에 댐을 세워 물이 흐르지 못하면 녹조가 생기고 식수가 위험해진다는 것은 과학 이전의 기본적인 상식. 그러나 당시 언론은 4대강사업의 진실을 외면하거나 침묵, 심지어 4대강사업의 효과를 부풀려 선전하며 ‘대국민 사기극’의 공범으로서 큰 역할을 담담했다.
남조류의 한 종류인 마이크로시스티스는 세포 한 개가 1주 후에 1,000여 개, 2주 후에는 120만 여 개로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녹조를 제거하는 단 한 가지 방법. 방법은 간단하다. 수문을 열어 강물이 흐르면 녹조는 사라지고 물이 맑아진다.
녹조를 함유한 물로 키운 농작물에 미량의 독소가 축적된다는 보고가 있다
수질악화의 주범은 강변 농사가 아니라, 강에 댐을 세워 물이 흐르지 못하게 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학교수의 명함을 걸고 전문가 흉내 내던 지식장사꾼들과, 날치기로 예산을 통과시킨 새누리당 의원들이다.
모래는 유실되고, 지반은 무너지고. 예수는 이미 2,000년 전에 모래 위에 건설된 4대강 16개 보의 미래를 예언했다. 물에 잠겨 있으니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나, 모래 위에 세운 거대한 보가 결코 안전하지 않음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혈세 잡아먹는 준설토, 사고를 부르는 자전거도로
2012~2017년 6년 동안 매년 580만 평방미터를 판매 총1,899억의 순이익 발생 추정. 그러나 준설토 판매량은 연간 평균 100평방미터에 불과, 현재 준설토를 다 처리하려면 앞으로 16년이 지난 2031년이 되어야 한다고. 문제는 예산이다. 준설토 쌓아놓은 곳은 농경지를 임차해 만든 야적장. 임차료와 영농보상금 지급에 약 400억원…준설토를 팔아 그 돈으로 공사를 한다던 주장 역시 사기극이었던 것이다.
자전거도로 사고 급증, 자전거 사망율 1위. 자전거란 도심 내 근거리 이동수단이지 장거리 여행수단이 아니다.
영주댐. 세계에서 유일한 모래 하천인 내성천이 파괴되고 있다. 이렇게 내성천을 파괴하며 건설된 영주댐은 용수 공급용도 아니고 홍수 예방용도 아니다. 오직 4대강사업으로 인해 썩어가는 낙동강의 녹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 그러나 영주댐에 고여 있는 물 자체가 이미 ‘녹조라떼’다. 아무 쓸데없는 짓을 해서 내성천을 잃어버렸다.
수질개선, 홍수예방, 가뭄극복 등 4대강사업의 명분은 하나같이 거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많은 물’이 아니라 ‘맑은 물’이 중요하다.
강의 생명은 흐르는 역동성에 있다.강물은 흐르면서 자신이 필요한 곳에 모래톱을 만들고, 버드나무 군락과 습지를 만들며 스스로를 치유, 정화한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은, 수문을 열어 강이 흐르게 하는 것뿐이다. 4대강 16개의 괴물 보를 파괴할 것인지는 그 다음에 고민할 일이다. 강은 흘러야 한다.
#경주지진과 핵발전소_김익중
나는 핵발전소의 안전에 관한 모근 사안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으나 지진에 관해서만큼은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그러나 이번 9월 12일 지진을 경주에 있는 우리집에서 몸으로 경험한 이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활동성단층’이라는 술책.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임이 인정되면 핵산업계는 상당히 곤란해질 상황. 이러한 상황을 핵산업계는 활동성단층이라는 개념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핵발전소의 위치에 관한 법적 요건이 위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살농의 시대, 희망은 있는가_윤병선
관계시장 창출의 원천. 중소 가족농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지역먹거리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그간의 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
농업직불제가 필요한 이유. 자신이 경작하는 살아 있는 땅을 생각할 때 떳떳하게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농민들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맑스는 “소농이 지배적인 국가에서 농산물 가격이 낮은 것은 빈곤의 결과”라면서, 이 빈곤으로 인해서 농업의 합리적인 발전은 어렵게 된다고 했다.
농업의 생태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농사. 안정적인 소득의 확보를 통해서 농업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농가에 대한 직접직불제로. 농가에 대한 기본소득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기득권에 맞서는 인민이다” 스페인 정치 참방기_하승우
좌우를 넘어서.
권력의 심각한 부패만큼 걱정스러운 건 시민들의 둔감함이다.
아오라마드리드의 3원칙.
1.좌우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다. 우리는 아래에서 왔다/ 2.우리가 하는 게 진짜 정치다. 정치인, 의회가 그동안 해온 방식은 진짜 정치가 아니다/ 3.이해하기 쉬운 말을 쓴다. 언어가 참여하는 데 진입장벽이 되지 않도록 전문가들이 쓰는 어려운 단어는 최대한 배제한다
흥미로운 점은 스페인의 15M운동이 어떤 특정한 목표를 정하거나 특정한 정책을 요구하지 않고 ‘진짜 민주주의’와 진정한 사회변화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정부 구성이 늦어져도 괜찮은가? “지금 우기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가 정부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에 전혀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야말로 비효율적이고 과정이고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시민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체계가 아닐까.(민주주의는 도로가 아닌 길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 그 모순을 심화시킨 것이 기득권층. 포데모스와 아모라마드리드 모두에서 강조되는 것은 바로 윤리.
급진적인 공간의 구성: 윤리는 사람이 서로 마주 볼 때 타자의 얼굴을 통해 형성된다.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은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를 윤리적으로 대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듯이, 만나지 못하는 곳에서는 윤리가 형성될 수 없다.
조직을 구성하는 원칙과 활동할 사람들의 역할이 분명하되 노동자나 농민, 중산층과 같은 단어들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인민(people)이라면 누구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시, 고통에게 말 걸기_나희덕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 고통은 부정적인 것이고, 피하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 고통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며 삶의 중요한 본질이라는 입장, 고통을 통해 인간의 정신은 더 성숙해질수 있고 삶의 고양된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
행복할 때 시를 쓴 적은 거의 없거든요. 무언가 힘들 때 더 간절해지고, 부재와 상실의 경험이 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이야말로 시의 가장 중요한 질료이자 동력.
타인의 고통에 대한 우리는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인식, 그것을 해결하는 데 무력하지만 하다는 수치심, 그럼에도 고통받는 이들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경각심이야말로 오늘날 시인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본적인 치유는 불가능할지라도 타인의 고통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응답하는 것, 시와 윤리가 만나는 지점은 여기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본소득 또는 행복한 환상_강홍구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미술가들이 기뻐하고….미술가의 한 사람으로 기본소득 정책이 정말로 시행되길 바란다…보통사람들은 에술가 혹은 미술가들이 어떻게 살고 삶을 꾸려나가는지 거의 모른다.
예술의 가치를 지탱해나간다는 것. 주위를 둘러보면 작품을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미술가는 0.1%쯤 될까 싶다
적자가 날 도리밖에 없다. 그럼에도 전기를 한다는 것은 그것만이 거의 유일한, 작가로서의 존재 증명 방식이기 때문이다.
미술과 예술의 가치는 돈이 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이 무시되는 세계에서 그것과 관계없는, 혹은 돈으로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우리가 꿈꾸는 괜찮은 세상이란 대부분 간단하다. 자유, 평등, 인권, 평화 등의 가치가 상식적 차원에서 지켜지는 것. 그런 걸 몰라서 이런 세계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