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농(殺農)의 시대, 희망은 있는가_윤병선
사라진 가을의 풍요. 정부의 쌀값 포기 정책은 살농 그 자체이다.
상상을 초월한 쌀값 폭락. 2013년 17만 7천 원이었던 산지 쌀값(80kg)은 작년에는 15만 9천 원으로, 결국 2016년에는 13만원대로 추락했다. 3년 사이에 쌀값이 25%나 낮아졌다. 이것도 농가 수취가격으로 따지면 9만 5천 원선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장 농민의 이야기.
쌀값이 폭락하는 중에 쌀 생산 농가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마땅한 대체작물이 없기 때문. 쌀 대신 콩 재배를 장려했지만, 콩 가격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농민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농민이 빠진 대책들. 이런 상황을 빌미로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를 쉽게 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24%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에 할 이야기는 분명 아님에도 불구하고 농지축소안, 농업축소안을 들고 나오고 있다…김영삼 정부는 42조 원을, 김대중 정부도 45조 원 투자 정책 수립하였지만, 식량 자급률은 계속 추락했고 농가의 소득도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도 119조 원을 투입…규모화 중심, 설비 중심의 정책 위주로 되어, 풀어 놓은 돈이 농민의 주머니보다는 토건업체와 설비업체 등의 배를 채워줬다.
정부 예산의 많은 부분은 대규모 시설 자금으로 투입되어 거꾸로 농민들 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농촌 내부의 결속력을 와해시키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농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대자본의 농업 진출 길을 열어주는 불쏘시개 역할이나 하고, 먹거리의 안전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농업의 융복합화’에 뒤이어 나오는 ‘식물공장’이 그렇고, ‘스마트팜’이 그렇고, 유전자조작(GM)벼 상용화 시도에 이어서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이 그렇다.
GM농산물이나 제초제를 사용한 농산물이더라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GAP(농산물우수관리)인증 농산물이 마치 친환경농산물보다 생태적인 것처럼, 보다 안전한 것처럼 종편의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유기농업의 위기. 정부의 친환경농업 육성정책? 외부에서 조달되는 유기농자재에 의존하는 시스템. 제3자 인증 자체에 치중. 정부의 ‘목록공시’에 등록된 고가의 자재를 구입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 생산력주의와 경쟁력주의에 입각한 양적 지표의 성장에만 몰두. ‘유기적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과정에 대한 고민보다는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결과만이 중시되는 전혀 유기적이지 못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인증에 중심을 두고, 농자재지원에 예산이 집중되다보니 부지불식간에 유기농업이 ‘유기농자재를 활용하는 농업’으로 정착되어 버렸다.
과정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유기농업 등의 가치에 대한 공유가 부족했기에 그 방식은 과거의 녹색혁명을 강제했던 1970년대식 새마을운동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정부의 정책이 농자재 지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관계시장’의 창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도농상생의 ‘관계시장’ 창출. 다소 생소한 용어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 기본권(먹거리 정의)’의 실현을, 도농상생의 먹거리 체계 구축을 통해서 달성하려는 것이다. 우선 공적 영역에서라도 먼저 중소 가족농이 중심이 된 생산자 조직들과 직접적인 관계망을 통해서 먹거리가 전달되어지는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별로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닌 꾸러미사업이지만, 이를 통해서 농민의 마음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이 사업을 통해서 농촌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전국여성농민총연합의 ‘언니네텃밭’과 같은 운동이 현재의 관계시장의 희망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로컬푸드 운동. 생산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 ‘얼굴을 볼 수 있는 관계’를 만듦으로써 거대자본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멀리 벌어진 ‘농’과 ‘식’간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거리를 줄이자.
농업직불제가 필요한 이유. 농민들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시장이라는 속박에 억눌려서 편하게 농사짓지 못하는 농민들이 굴레에서 벗어나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곡물자급률이 24%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다양한 곡물 농사를 짓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현재의 보조금 제도는 농민을 우선하는 제도가 아니다. 자부담을 떠안는 것을 전제로 보조사업비가 나온다. 400만원짜리 3평짜리 저온창고, 정부지원사업이 되면 700만원짜리로, 농민의 자부담은 350만원. 거꾸로 계산해서 정부가 350만원 부담하고 농민이 50만원만 부담하면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다!
전체 농업예산에서 농민에게 지원하는 38%, 이 중 농민에게 직접 지급되는 것은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직불금 수령의 양극화, 직불금 액수가 재배 면적에 비례해 지급되다 보니 농가소득의 안정적 확보를 통한 농업의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빈곤하기 때문에 생계비가 적게 들고, 낮은 생계비 수준 때문에 낮은 농산물 가격에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역설적인 상황, 즉 농민들의 자기 착취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1990년대 초반부터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도입한 직접직불 제도. 안정적인 소득의 확보를 통해서 농업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크게 작용했다.
농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바탕이 될 때 농민도 책임감을 갖고 농업의 생태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최근 유럽에서 경작 규모에 따른 직접직불제를 농가에 대한 직접직불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직접직불제는 농가에 대한 기본소득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옛 어른들의 겨울채비? 첫째가 쌀, 둘째가 김장, 셋째가 연탄(장작)이었다. 그 옛날 쌀을 준비했던 어른들의 마음은 쌀값 폭락에도 쌀농사를 짓는 지금의 농민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쌀값 폭락을 예견하면서도 쌀농사라도 짓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는 농민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정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길, 다만 사람들이 가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