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 마츠오 바쇼. p139
하이쿠? 5·7·5의 음수율을 가진 일본의 짧은 정형시.
두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いのちふた つのなかにいきたる さくらかな)
구름이 잠시 달구경 하는 사람 쉴 틈을 주네
(くもおりおり ひとをやすむる つきみかな)
오랜 못이여 개구리 뛰어들어 물 치는 소리
(ふるいけや かわずとびこむ みずのお)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しずかさや いわにしみいる せみのこえ)
말을 하려니 입술이 시리구나 가을 찬바람
(ものいえば くちびるさむし あきのかぜ)
재 속 화롯불 사그라드네 눈물 끓는 소리
(うずみびも きゆやなみだの にゆるおと)
한밤에 남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갉는다
홀로 마른 연어를 겨우 씹었다
얼음은 씁쓸하고 두더지가 목구멍을 겨우 적셨네
노 젓는 소리 파도를 가르고 창자 얼어붙는 밤이여 눈물
말은 터벅터벅 그림 속의 나를 보는 여름 들판
자세히 보니 냉이꽃 피어 있는 울타리로다
문득 보니 울타리 옆에 냉이가 작은 흰 꽃을 피우고 있다. 평소 무심히 지나치는 길가의 잡초에서 만물의 조화의 오묘함과 자득의 경지를 발견한다. 정명도의 <만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자족하고 있다>라는 시구가 연상되는 작품. 계어는 <냉이꽃>
도미 자반의 잇몸도 추워라 어물전 좌판
비릿하구나 물옥잠 잎사귀의 피래미 창자
마츠오 바쇼오는 한낱 말장난에 불과했던 초기 하이쿠에 자연과 인생의 의미를 담아 문학의 한 장르로 완성시킨 인물이다.
번역시에서 느낄 수 있듯이 하이쿠는 주해 없이는 이해하기 곤란한 논리의 애매함을 지니고 있다. 의도적으로 논리를 무시하고 애매모하게 쓴다고도 할 수 있다. 육하원칙에 따른 사실의 진술은 논리적이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처럼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사이는 간단한 명사만 나열해도 충분히 통한다. 이때 형식논리는 오히려 거부된다. 하이쿠도 그와 같다…하이쿠는 원래 여러 명이 모인 문예 공동체(렌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는 부분을 과감히 생략할 수 있었다.
하이쿠는 일종의 점의 배열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점을 연결해서 하나의 선이나 공간으로 느끼는 감각이 갖추어져 있다. 최소한의 적절한 소재, 즉 점의 배치만 있을 뿐이지 슬프다든지 아름답다든지 하는 서술을 과감히 여백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생략이 많은 표현, 다양한 해석과 함축이 있는 표현일수록 하이쿠적 효과가 살아난다.(시적 여백의 미)
그 여백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메꾸어져서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비가 잦다는 것은 그만큼 날씨의 변화가 심하다는 이야기…비 오는 날은 외출을 않고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거나 내면적으로 침잠하는 수가 많음은 우리네 경험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이쿠 이야기를 하면서 비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비로 인한 다양한 식물, 변화무쌍한 날씨, 내향적인 일본인들의 성향, 이러한 요소들이 하이쿠가 오늘날까지 대중적인 전통시로 남게 된 토양이 되어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이쿠의 우리 말 번역을 지극히 어렵게 만드는 무수한 동식물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식물의 다양함은 그만큼 그들에 대해 민감한게 만들고, 변화무쌍한 날씨는 변화 그 자체를 아름답게 보는 미의식을 낳게 한다. 그리고 내향적인 성향은 속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고 함축적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만든다.
변화의 미를 추구하는 일본인의 성향은 불교가 그 사상적 틀을 마련해 주었다. 유교는 무사들의 수직적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 이론으로는 적극 받아들여졌지만 서민들의 기본 정서를 지배할만큼 민간에 침투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찍이 도입된 불교의 ‘무상(無常)은-허무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변화가 잦은 일본의 풍토와 부합하여 찰나적인 미를 추구하는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다. 중세의 수필 『츠레즈레구사』에 나와 있듯이 이 세상은 무상하기 때문에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며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세계관을 형성한다. 가령 윤선도의 『오우가』에서 추구하는 변화하지 않는 불멸의 아름다움은 일본적인 문학의 범주에서는 제외되어 있었다.
일본인의 생을 좌우하는 것은 한마디로 ‘변함 없는 윤리’가 아니라 ‘변화하는 미’…하이쿠란 결국 무한한 시간의 흐름을 찰나적으로 자른 그 단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혹은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려 한다는 표현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마츠오 바쑈오는 17세기를 살다 간 인물. 우리나라의 윤선도가 주로 17세기를 문학적 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에 횡적으로 대개 그 시기를 같이 한다. 혹자는 바쇼오가 방랑시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김삿갓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으나, 생존한 시기나 한시에 심취했던 점, 자연에 몰입한 점 등에 있어서 오히려 윤선도에 비견된다. 단 윤선도는 유교적인 토양에서 시를 썼지만 바쇼오는 불교적인 토양에서 시를 썼다는 점이 다르다.
바쑈오는 초기 하이쿠가 골계 위주의 말장난으로 일관했던 것을 반성하고, 자연시의 위치에까지 끌어올려 일본의 민중시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고전은 탐독하고 방랑의 일생을 보내면서 부단한 수행을 통해 하이쿠를 문학의 한 장르로 완성시켰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旅に病んで夢は枯野をかけ廻る)
일본 하이쿠 선집. 마쓰오 바쇼·요사 부손·고바야시 잇사·마사오카 시키·가와히가시 헤키고토. p
#열일곱 자에 담긴 일본인의 서정과 사계
이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짧은 시.
하이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하이쿠는 5·7·5 17자로만 구성된 짧은 시. 하이쿠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두 가지. 하나는 하이쿠에는 계절을 상징하는 계절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레지. 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기레지이지요. 5·7·5의 어느 한 단락에서 끊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하이쿠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변화하는 사계절을 소재로 자연·동물과 인간과의 교감, 때로는 지나간 시간과의 교감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감동이 동반됩니다. 하이쿠는 서정시입니다. 불과 열일곱 자에 서정이나 계절이 펼쳐지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