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p319
#추천의 말_베르너 보테
다큐멘터리 영화 『Plastic Planet』. 다행히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한 덕분에 나는 온 세계로부터 수없이 많은 편지를 받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의 편지였다.
산드라의 이 책은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플라스틱 별’은 싫어요
어쨌든 우리는 플라스틱, 특히나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쓰레기통으로 직행해 버리는 그런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우리의 일상에서 완전히 추방하려고 힘닿는 데까지 애를 쓰고 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것은 아주 특별하고도 만만찮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친구들조차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냐고 묻는다.
당초 내 의욕을 부추긴 것은 “행동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격언이었다.
이 실험의 기본 전제조건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우리 가족이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이 없을 터였다.
『Plastic Planet』…플라스틱 제조업체들은 중요한 질문에 대해 기업비밀을 내세우며 냉소적으로 반응하고, 정치인들은 대개 얼빠진 듯 아무런 행동도 없이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거나 외면해 버렸다.
맙소사. 아름답고 무결한 플라스틱 세상이라니!
새로운 도전거리,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실천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우리 마음속에는 적어도 자기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큼은 삶을 완전히 뒤집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겼다(나부터 혁명!)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지 한 편의 영화에 영향을 받아 시작한 어느 가족의 두해에 걸친 다소 유별난 실험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재미’와 ‘용기’와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시작은 다 어려운 법
친환경적으로 산다고 착각했던 날들
분리수거. 수거된 뒤에 어떻게 처리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다. 쓰레기를 분리배출한 것만으로 내가 꼭 해야 하고, 또 해낼 수 있는 올바른 일을 모두 다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잘 살았을 뿐이다…그것으로 충분했다. 쓰레기 총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근원을 파헤쳐 볼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던 셈…나의 이런 생각을 전환하도록 만든 것은 이번에도 영화 한 편이었다. 이 영화는 내 삶의 안락함에 의문을 제기했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나를 바꾸어 놓은 한 편의 영화.
“말도 안 돼!” 신뢰는 불신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분노와 당혹감으로 변해 버렸다…보테 감독은 다양한 스타일의 기법을 뒤섞어 구사하면서 보편적인 주제를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설득력을 극대화했다.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이미 대세야. 그걸로 포장 안 된 상품이 하나라도 있나? 네가 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걸?
자본가들은 새로운 욕구를 끊임없이 일깨우고, 그래야 자기가 생산한 쓰레기들을 처분할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 반면 그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포장재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어. 게다가 그런 물건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게 문제야.
그런 우리 집에서 이제 한 달 동안 플라스틱이나 비닐 없이 살아 볼게. 그게 가능하지 실험 삼아 그렇게 해보는 거다, 이거지.
그리고 이 실험이 힘들거나 재미가 없다면 난 언제든 그만둘 거야. 이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생각은 없어. 재미가 있어야 계속 하겠다는 얘기지!
가족과 함께 해야 진짜지.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모험이었고 우리 부부에게는 거대한 도전이었다.
시작부터 좌절 모드. 악마는 포장에 있었다. 예기치 못한 장애물.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소한 것들. 주방용 세제와 샴푸의 경우는 단박에 떠오르는 대안이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왜 오늘날에는 플라스틱을 추가하지 않고서는 도대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가 하는 물음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플라스틱과 합성소재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물질은 대략 1만 가지쯤 되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겨우 11개 물질의 유해성을 검사할 수 있었을 뿐”
“이 물질이 해로운지는 현재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생산하고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사후약방문보다 사전예방원칙이 중요한 과학기술의 세계!)
슈퍼마켓에서 마주치는 플라스틱 홍수는, 꼭 그건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법한 채소 및 과일 코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기농 과일이나 채소를 왜 굳이 비닐로 포장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테트라팩에 든 우유 역시 비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닐코딩!
종이상자 안에 감쪽같이 숨겨져 있는 비닐 포장. 과잉 포장 문제…
어디를 둘러봐도 환경이나 건강에 해로운 요소들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살아가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등골이 오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는 어쩌지?
플라스틱 없던 시절이 가르쳐 준 것.
“그 일로 너희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 된다.”
문제는 금방 쓰레기로 버려질 무의미하고 지나친 포장들이거든요.
“네 말이 맞구나. 요새는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 많기도 하지.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잖니. 그때는 포장이 다 뭐냐, 죄다 그냥 팔았지.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았단 말이지.”
우리가 먹은 것이란 그저 철따라 나는 것들이 다였지. 냉장고가 없었지만 저장과 갈무리를 잘해서 겨울도 잘 넘겼고, 또 그땐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어.
그 많은 플라스틱은 도대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한 걸까? 어느 시점을 기해 한날한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된 일이었다. 그리고 아, 이건 좀 문제인걸, 싶어졌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자본주의적 욕망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고 지금도 그런 추세는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댁을 한 바퀴 둘러보고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은 우리 생활의 방만함이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들이고, 그러나 당연히 멀쩡한 새 물건들이 집안 구석구석 쌓여 먼지를 뒤짚어쓴 채 방치되고 있었다.
“이것들은 20년도 훨씬 넘었지만 이렇게 멀쩡하잖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다 보면 종종 그렇게 옛 물건들에 다시 손이 가는 법이란다.”(온고지신!)
너무 완벽하게 해내려 하진 말아요. ‘한 가정의 비장한 투쟁’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작은 실천이 더욱 소중하지 않겠느냐는 보테 감독의 말
플라스틱 없는 생일파티
우리 집에 플라스틱 물건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일단 치우고 시작하자. 나는 우리의 실험이 어디까지나 서구 문명사회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활 가운데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행동’이기를 바랐다…우리 실험은 인간적이어야 하며, 타협과 실패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완벽주의’라는 환상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출발이다
시작 선포식을 겸한 생일 파티. 플라스틱 없는 생일 파티
통조림. 통 내부는 예외없이 비닐 코딩이 되어 있음
무한 소비를 부추기는 프레임이 문제. 조악한 멜로디. 요 몇 달 동안의 분투는 생활에 유익한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을 구분할 줄 하는 안목을 놀라우리만치 길러 주었던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범벅이 된 성탄절 특수용 상품들. 무지막지한 과잉생산이 낳는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될지 아닐지 관찰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나에게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성탄절 무렵의 이러한 광적인 에너지 낭비가 눈엣가시였다.
집단적 압력.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분위기에 휩쓸려서 죽을 둥 살 둥 그것을 따라 한다는 사실이다…시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광고는 온갖 현란한 기법을 동원해 그것을 사라고 부추긴다…우리는 마치 쳇바퀴 속에 사로잡힌 다람쥐이라고도 한 듯 그 속에서 뱅글뱅글 돌며 착하게 계속 물건을 사들인다.
우리 모두가 ‘단’ 50%만이라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
#실험을 넘어서
이 프로젝트는 여러 측면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임기응변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 창의적 행위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독한’ 세제를 멋모르고 쭈욱 써 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아마도 이것을 과거로부터 계속 이어져 온 광고, 즉 ‘세균 없는 깨끗함’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광공에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노출됨으로써 형성된 어떤 기억과 맞물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플라스틱이 위생적이라는 편견은 버려!
그래, 육식도 그만 끊자! 비닐로 포장된 육류를 바라보고 있자면 포장의 문제에 앞서서 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대체품이 없으면 아예 안 쓰는 것도 한 방법. 실질적 변화란 아마 거대한 대중이 각자의 소비 습관을 바꿀 때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중도 다름 아닌 개개인으로 구성된다.(나부터 실천)
동지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네
왜 더 오래 쓸 수 있지 않게 만들지 않을까? 제조업자의 ‘계획된 노후화’는 아무런 걸림돌 없이 은밀히 자행된다…(수익을 높이기 위한 자본의 회전률을 높여라!)
장바구니를 바꾸자, 비닐에서 진짜 천으로!
‘올바른 소비’를 위한 팁. 플라스틱 없는 장보기
#옮긴이 후기
플라스틱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널리 확산된 것은 천연재료에 비해 성형이 자유로운 데다 쉽게 대량생산될 수 있기 때문. 그 덕분에 우리는 아주 싼 가격에 삶의 편리성을 극대화해 주는, 일회용을 비롯한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편리성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 수 있다.
원인에는 결과가 따르는데, 늘 그래왔듯 우리는 풀라스틱이라는 소재의 편의성에 빠져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보지 못했고, 아직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일부러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