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이완주. p234
쉽게 풀어본 흙의 과학과 시비기술
#들어가는 글
우리는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흙에서 많은 것을 얻어 쓰고 그 위에서 살다 그 속에 묻힌다. 그런데로 사람들은 하늘과 별과 바다에 비해 흙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적다.
흙과 관계없는 사람이 흙을 모르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어민이 바다를 모르면 안 되듯이 농민이 흙에 대해 모른다면 문제가 된다. 이런 느낌은 이 분야를 연구하며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수많은 농민을 직접 만나고 내린 결론이다.
토양학은 매우 복잡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긴 해도 대중을 위해 흙을 설명한 글을 보면 이 분야의 전문가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그러니 농민들에게 흙은 얼마나 어렵고 멀기만 한 대상이겠는가.
토양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 점에 책임을 느껴 흙과 비료에 대해 쉽게 쓰게 되었고, 지난 1998년…그리고 다시 도서출판 들녘에서 개정판을…이 과정에서 더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을 다듬었다.
농민에게는 농사에 도움이 되고, 상식의 범위를 넓히려는 교양인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흙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흙의 어머니는 자갈(모래)이고 할머니는 바위(모암)
흙은 불에 타지 않는다. 바싹 말린 흙? 그래도 태우면 타서 없어지는 부분이 있다. 무게를 재보면 2~3% 준다. 이때 무게가 많이 준 흙일수록 비옥한 흙. 5%, 10% 줄어든다면 농사가 잘 되는 땅.
타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은 바위가 원료인 무기질이고, 타서 없어진 부분은 주로 죽은 식물체인 유기물이다.
풀은 흙에 뿌리를 박고 살다가 쓰러진다. 그리고 흙 속에서 썩어간다. 이렇게 풀이 흙 속에 섞인 것이 유기물.
바위 그 자체는 틈이 없어서 물과 공기가 있을 수 없지만 부스러지면서 점점 엉성해진 틈새로 공기와 물이 들어간다.
흙은 흙알갱이인 무기물과 함께 공기, 물 그리고 유기물 등 4가지가 함께 산다.
어느 누구도 꿈틀거리는 흙을 보지 못하지만 흙은 살아 있다. 흙 속에서는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무수한 생명이 살고 있다. 또 흙에서 생명이 자라나다.
비기 오면 물이 공기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물이 많아지고 대신 공기는 줄어든다. 가물면 물이 없어지면서 그 자리를 공기가 차지한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흙 1g 속에 약 3천만 마리나 되는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로운 일, 해로운 일을 쉬지 않고 벌리며 산다. 너무 복잡해서 현대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들이 아직도 수없이 일어난다. 그러니 흙은 살아 있다고 할 수밖에.
흙이 산성이면 해로운 미생물은 많이지고 이로운 미생물은 적어진다. 그래서 나쁜 일이 더 많이 일어나고 흙은 죽었다고 말한다. 이로운 일들은 흙이 중성일 때 많이 일어난다. 흙을 살리려면 석회를 주어 중성으로 만들고 공해를 멀리해야 한다.
#흙 속에 사는 삼 형제? 고상, 액상, 기상
고상은 흙의 몸체. 흙덩이의 반이 틈새라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고상과 고상 사이에는 틈이 있다. 그 틈새를 물과 공기가. 물을 액상이라 하고, 공기를 기상이라 한다.
삼상의 비율은 수시로 변한다…액상이 많아지면, 즉 물이 많아지면 작물이 잘 안 크는 것은 뿌리가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뿌리는 양분과 수분을 먹은 입. 또 숨을 쉬는 코 역할도.
뿌리가 하는 5가지 일? 입이 된다/ 배설기관이 된다/ 코가 된다/ 다리가 된다/ 창고(양분저장)가 된다
#흙의 등뼈는 규산
우리 몸을 이루는 성분에도 등뼈 같은 성분이 있다. 탄소가 바로 등뼈가 되는 성분. 탄소는 여러 개가 쇠사슬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지네발처럼 탄소에서 발들이 나온다.
흙에도 ‘등뼈 성분’이 있다. 탄소처럼 손이 네 개 달려 있다.
#흙의 성은 규씨
토성? 흙이 고우냐 거치냐, 즉 찰흙이냐 모래흙이냐는 따지는 말.
알갱이 크기가 2mm 이상인 것은 흙이 아니다. 자갈이다.
모래는 2~0.05mm 크기의 흙알갱이, 가루모래 또는 미사는 크기가 0.05~0.002mm의 알갱이, 가장 작은 알갱이들은 점토 0.002mm 이하.
#봄채소는 모래 흙에
봄채소를 남보다 빠르게 수확하는 데 모래땅 보다 더 좋은 땅은 없다? 흙이 빨리 데워지면 뿌리의 활동이 빨라지고, 양분을 빨리 공급해주기 때문에 잘 자라며 수확도 빠르다!
#내 땅 흙은 몇 트럭이나 될까?
입자밀도와 전용적밀도. 입자밀도라 흙알갱이만의 부피를, 전용적밀도는 흙덩이가 차지하는 전체 부피(흙알갱이+틈새)를 모두 고려하는 것.
#뭉쳐진 흙, 흩어진 흙
알갱이들이 똘똘 뭉치면 식물이 잘 자란다. 잘 뭉쳐진 사이사이에 큰 틈이 생겨 그 틈새로 공기가 통하고 물이 간직되고 뿌리가 뻗는다.
점토, 미사(가루모래), 모래가 뭉치지 못하고 알갱이들이 모두 따로따로 있으면 나쁘다. 모래 알갱이 사이로 가루모래가 들어가고, 가루모래 사이로 점토가 들어간다. 틈새가 있을 수 없다. 틈새가 없으니 공기와 물이 머물 곳이 없다. 틈새가 없으니 뿌리가 뻗을 수가 없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흩어진 흙알갱이는 쉽게 날아간다.
이렇게 알갱이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를 홑알조직(단립조직)이라 한다. 이와 반대로 알갱이끼리 서로 뭉쳐서 큰 알갱이가 되어 있는 상태를 떼알조직(입단조직)이라 한다. 대표적인 떼알조직은 지렁이 똥이다. 물에 담궈도 잘 부서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흙을 뭉치게 하는 농민이 진짜 농민이다.
흙알갱이의 본드는 무엇일까? 유기물과 석회가 흙의 본드다.
콩은 흙을 뭉치게 하고 오수수는 헤치가 한다. 흙에 금이 간다? 금이 간다는 것은 떼알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청신호다. 홑알조직에서는 먼지 같은 흙알갱이들이 금을 바로 메워버리기 때문이다.
#흙도 아내처럼 부드러워야 좋다
쟁기바닥. 트랙터와 같이 농기계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쟁기바닥은 더 두껍고 딱딱하게 만들어진다. 무거운 농기계들에 의해 한번 다져진 흙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엄청난 노력이 든다.
#콩 뿌리도 뻗는 만큼 열린다.
뿌리는 여러 일을 한다. 물을 마시고 양분을 빨아들인다. 숨을 쉬고 먹은 만큼 싸기도 한다. 뿌리를 입이자 항문이고, 콧구멍이며 배로 말하자면 닻과 같다.
무슨 작물이든 잘 키우려면 뿌리를 잘 뻗게 해야 한다.
#빛깔로 보는 흙의 관상
흙빛이 검을수록 비옥하다. 검은 흙은 유기물이 많기 때문.
#흙 속의 물이 있어도 식물은 시든다
유효수분
#해바리기는 물먹는 하마
옥수수의 증산계수는 94, 해바라기는 잎이 커서 705로 75배 이상이다.
#고추 풍년에 배추는 흉년
도토리는 들판을 보고 매달린다.
#도망가는 물 어떻게 잡나
우리 조상은 가물 때면 호미로 흙을 긁어주었다.
흙에 유기물을 많이 넣는 방법도 있다
#지렁이의 천국은 뿌리의 왕국
지렁이는 식물이 자라는 데 유익한 떼알조직을 연간 1~1.5톤/ha이나 만들어준다. 지렁이가 먹기 이전의 흙보다 빗물에 깨어지지 않는 강도가 13배가 강해진다.
#채소한테 좋은 질소, 사람한테 해로운 질소
요즘 농부들은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질소비료를 준다. 질소질이 곧바로 수량을 좌우하는 성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 그 결과 농촌의 지하수 오염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질소비료의 고향은 하늘나라 공기. 벼락에 빗물 속으로. 빗물을 맞는 잎은 질소를 흡수
#식물이 퇴비를 먹는다고?
유기물은 미생물의 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