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엄기호. p292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편’을 강요하고 ‘곁’을 밀치는 사회
다름과 차이를 차단하게 되면서, 서로의 경험을 참조하며 나누는 배움과 성장은 불가능해진 ‘사회’. 곁을 만드는 언어는 소멸해버리고 편만 강조하는 ‘사회’.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 이 세계를 과연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편만 남고 곁이 파괴된 사회를 과연 사회라고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지난 십여년간 이 문제를 들여다보며 나는 ‘단속(斷續)’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처지 차단하고 외면하며 이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자기를 ‘단속(團束)’하여 타자와의 관계는 차단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차 끊어져버린 상태, 이것을 나는 ‘단속’이라고 이름붙이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단속사회’로 지은 이유? 이 사회의 한가지 특성으로 ‘단속’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속이라는 말로 한국사회가 ‘사회가 아닌 상태의 사회’라는 그 역설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이 사회는 이미 사회로서 가져야 하는 유대와 연대 혹은 상호참조의 체제를 파괴하여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참조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물론 모든 곁이 파괴된 것은 아니다. 국가는 악몽이 되고, 사회는 몽상이 되고, 개인은 착각이 되어버린 이 폐허에서 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제주 강정이나 경남 밀양에서 활동하는 예술활동가들, 평화활동가들, 인권활동가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듣고 그것으로 글을 쓴다. 그들에게 글은 곁을 만드는 도구다.
#누구의, 어떤 관계의 단절인가?
한 사회가 ‘사회’일 수 있는 것은 연속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연속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경험과 지혜가 끊임없이 갱신되면서 후대들에게 전승될 수 있음을 뜻한다.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고 또 그 환경을 바꾸기 위해 사람은 한편으로는 선대의 경험과 지혜를 필요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새롭게 바꾸어내야 한다.
옛것만을 고집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선대로부터 아무런 지혜와 경험을 전승받지 못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할 때 그 사회는 겉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끊어져버린 것이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일 뿐이다.
강의 후 청중에게. 나이든 어떤 분에게 자식들에게 돈과 아파트 말고 물려줄, 자신의 삶으로부터 길어 온 교훈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 장면은 한국이 왜 망한 사회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 사례였다.
토론을 통해 서로의 경험과 생각이 공유되지 못하는 이유? 허망한 말들뿐? 대부분 하소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자기만의 고통으로만 말할 줄 알지 남들도 들어줄 만한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전환해내진 못한다. 말하는 입이나 듣는 귀나 모두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번역해내는 능력이 없는 셈이다.
‘관계 단절’? 우리에게 부재한 것은 실존적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의 부재다. 이런 관계가 부재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남도 듣고 참조하면 좋을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 또한 전승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참조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사회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누군가의 참조점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존재감을 획득하고 공적인 존재로 설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을 공적인 존재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만들어질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는 힐링이나 상담이나 하는 말로 사적인 것을 더 사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소비하는 그런 ‘시장’의 팽창이 대신한다.
SNS니 ‘취향의 공동체’니 하는 곳에는 모두들 중독자처럼 접속해 있었다. 어딘가에 늘 접속해 있으면서 어떤 경우에는 벼락같이 연결을 차단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는 관계의 전면적 단절이 아니라 언제, 어느 곳에 접속하고 언제 누구와는 단절하는가가 아닐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타자와의 단속/ 공적인 것과의 단속/ ‘연속의 반대’로서의 단속
연속성이 있어야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 전승되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결국 지금까지 성장을 화두로 삼아 공부하고 연구한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속사회란 사람의 성장이 불가능한 사회다. 낯설고 모르는 것과 부딪치고 만나며 경험을 확장하고 갱신하고 통합하며 자신의 삶을 서사적 주체가 되려는 그런 성장은 불가능해졌다.
‘저녁이 있는 삶’? 그 저녁이 서로 경험을 나누며 곁을 만들고, 자신의 경험을 공적인 이슈로 전환하는 정치의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 책을 읽는 이들과 함께 찾아보려 한다.
“그 문제가 한 사람만의 것이라면 개인사라 할 수 있으나, 두 사람의 공통된 문제라면 사회과학적으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으며, 만약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이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이는 공공의 문제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