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허신행. p276
식물이 사람처럼 보고 듣고 말하며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식물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는 우리 인간보다 더 진화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알고 보면 식물은 인류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고 우리 인간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아낌없이 보살펴 올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많은 삶의 지혜까지 제시해 주고 있건만 우리는 식물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식물도 마음을 가지고 있다
수호신으로 굳게 자리잡은 사례는 흔하지 않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의 동신목(洞神木) 소나무
동물이나 식물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물에게는 질병이나 병해충이 있기 마련인데 은행나무에게만은 이런 것들이 없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오래 살고 크게 자란다(용문사 은행나무)
나무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면서 정보를 수집해 들어가면 신비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광맥처럼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식물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고, 또 잘 모른다고 하는 사실마저 모르고 지내는 문외한들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 때가 많다.
이집트 사막의 피라미드 비밀? 반달모양의 큰 나무통을 네 쪽이나 붙여서 원통처럼 돌을 굴려모아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정설이 최근에 나오고 있다. 고생대의 비옥한 땅들이 황량한 사막으로 변한 것!
풍족하면 귀함을 모르고, 귀하면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모든 환경은 변할 수밖에 없다. 나무와 물이 흔한 브라질의 아마존강 유역이 사막으로 변하고, 풀 한 포기 구경할 수 없었던 중동 지역의 사막 지대가 세계의 곡창지대로 바뀐다면, 역사가들은 과연 어떤 교훈을 찾아 낼 것인가.
동물도 식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 따지고 보면 식물은 모든 것의 기본이다. 식물 없는 달이나 화성을 연상해보면 이 의문은 자동으로 풀린다.

노산 이은상 시인이 지은 『나무의 마음』을 읽는 순간 ‘아차! 이런 진리를 모르고 살았구나’하는 탄식의 소리가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오면서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는 왜 식물들이 눈·코·귀 없이도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옛 성현들이 말씀하시길 이 세상 모든 것이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먼지 하나도 불성을 갖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하물며 생명체인 식물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제주 감귤나무가 만든 걸작품
누가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고 말했던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만큼 생동감 넘치는 일은 없다. 사람을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살고, 나 자신보다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감귤에 대한 이야기는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일부 교수들이 감귤나무가 어떻게 생각할 줄 아느냐고 비판하고 있소”. 과학적인 근거 없이 청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곤란치 않느냐는 일종의 충고인 셈이었다…그러나 모든 학문의 뿌리는 철학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는 듯 싶었다. 철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 세상 만유(萬有)는 하나요, 모든 것이 불성 내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 생각하고 말한다. 식물들이 노래를 하고, 클래식 음악을 즐길 줄 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지만, 어디 식물뿐이겠는가.
#식물을 새롭게 바라보자
식물은 정직하다. 남의 것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웃 동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는다…식물은 성현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한다. 불교에서는 보시 중에 몸보시가 으뜸이라 했는데 식물들은 꽃과 열매는 물론 잎과 줄기 그리고 몸통까지고 모두 우리 인간에게 나누어 준다.
우리 인간이 식물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식물이 우리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에 대해서 더 가까이 접근해 갈수록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레밍을 집단 자살케 하는 풀들
풀들의 계략? 레밍이 계속해 뜯어먹으면 중화액 생산, 소화를 못하게 만들고 체력을 고갈시키게 만든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풀들이 레밍의 모양이나 움직임은 물론 그들의 성격까지 대충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레밍의 수의 규모와 그들이 뜯어 먹은 풀의 양까지 모두 알고 있다는 놀라운 점이다…만일 풀들이 집단적인 대화 내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갖지 않고 개별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레밍 집단을 자살로 유도하지 못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풀들이 일정한 양의 자기 몸을 레밍에게 희생시켜 먹이로 줄 의향이 있다는 사실이다…그러니까 식물들은 자기 종족 보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수준에서라면 자기 몸이나 가족 일부의 몸을 동물들에게 먹이로 제공할 마음의 준비와 양보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인가.
식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만이 식물과 동물 그리고 우리 인간의 지속적인 공동 번영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으며 생각하는 식물
데이비드 애튼보로, 『식물의 사생활』
사진에소 보는 사이프러스벌난초, 노랑벌난초 등이 만들어 낸 꽃들의 모습을 보면 식물들이야말로 모방의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펄이 이 꽃을 암펄로 착각하며 꽃잎 위에 올라타고 교미하는 자세를 취하여 꽁무니를 꽃잎의 끝부분 가장자리에 있는 긴 털속으로 밀어 넣는다.
더 놀라운 이야기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말벌과 용난의 흥미 진진한 머리 싸움이다.
식물을 위한 전용 음악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미국의 덴칼슨 박사라고 한다. 8년간의 연구 끝에 1983년 ‘소닉 볼륨’이라는 음악을 만들었는데, 지금 15개가 넘는 나라에서 이 음악을 사용중이다.
일본의 ‘바이오 연구회’라는 농민 모임들이 이 음악을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보다 식물의 초월적인 능력을 증명하기가 더 쉬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날은 멀지 않은 장래에 다가와서 우리 인간의 좁은 시야와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리라 확신한다.
#식물이 펼치는 과학의 세계
인간이 발전시켜온 과학의 결과란 어떤 것인가?..그 결과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키고 인간의 윤리 도덕을 타락케 함으로써 인간의 종말을 앞당기게 된다면 과학에 대한 예찬론을 펴거나 우월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식물은 가전 제품이나 인공 위성은 만들지 않지만 그들은 인류가 장래 꿈의 에너지로 생각하고 있는 태양 에너지를 오래 전부터 실생활에 직접 이용해 왔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인간이 식물처럼 빛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인류의 생활 모습을 어떻게 변할까?
불교에서는 참선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천공(天供)이라는 말을 더러 쓴다. 천공이란 하늘, 즉 공기로부터 필요한 영양을 직접 섭취할 수도 있다는 가설상의 식공양(食供養)을 의미한다.
#식물에게서 배우는 경제학
돈이 뭐길래 살빈인과 강도짓을 하며, 이웃과 싸우며 속이고,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가. 이것이 소위 경제학을 발전시켰다는 인간 사회의 모습이라면 경제학을 잘못된 것.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는 경제학, 계속 성장하는 길을 제시코자 하는데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겟다는 것인가. 부익부 빈익빈 부자가 더 부자 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가 경제학에서 추구하는 이상 사회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식물의 경제학을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부익부 빈익빈이 아니다. 이윤 극대화도 아니요, 물질 만능주의적 자본 축적도 아니다. 식물은 노동자를 착취하지도 않고, 시장을 독점할 생각도 갖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소비를 일삼지도 않는다. 더욱이 경제 성장과 개발을 통해 환경을 파괴시키는 것과 같은 행위도 결단코 도입하거나 선택하지 않는다. 식물은 오히려 환경을 보호하는 데 언제나 앞장선다.
식물의 경제 철학은 탐욕을 배격한다.
식물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만을 생산하고, 그것도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품질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고객감동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이다. 식물은 산업 쓰레기나 폐기물을 내놓지 않는다. 식물은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경제 행위를 한다….
이렇게 볼 때 인간과 식물이 이용하고 있는 경제학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의 경제학은 너무 근시안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환경 파괴적인 데 반하여 식물의 경제학은 중장기적이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며 환경 보전적이다.
식물은 돈이나 금·은·보석 등의 부를 축적하지 않고 선비나 도인들처럼 청렴하고 담백하게 무심·무아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식물들이 굶거나 추하게 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멋있고 재미있게 음악과 더불어 한 세상을 예술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멋있는 삶을 가능케 만든 식물의 경제학이야말로 빈틈없이 완벽하고 가장 이상적인 학문이 아닐까.
#식물의 타고난 경영 능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디자이너
#현대 의학보다 앞선 식물
병충해에 약한 농작물? 인간이 인간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농작물들을 약하게 만든 것.
식물은 본래 자구적인 수단과 방법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야생벼나 채소들을 보면 열매보다 줄기나 잎을 튼튼하게 하는데 에너지를 더 쓴다. 과일 나무나 다른 농작물도 마찬가지로 야생에서는 질병과 해충을 물리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인간이 식물을 대신하여 질병과 해충을 막아 주는 대가로 많은 열매와 잎이며 줄기 그리고 뿌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농작물들은 인간의 그런 소망을 알고 기형적으로 생산 활동에 임한 것이며, 그 결과 농작물들이 질병과 해충으로부터 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형동, 『씨앗 건강법』
#식물이 동물을 사냥한다
육식식물? 생존조건이 가혹하리만큼 열악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생존을 위해 동물을 어쩔 수 없이 먹이로 삼는다…악조건 속에서…살아 갈 수 있는 길은 곤충들을 잡아먹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식물이 인간을 어떻게 고용하는가
인간은 농작물인 식물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보는가 하면 뜨거운 한여름에도 구슬땀을 흘려가며 거름을 주고 농약을 뿌리는 등 지극 정성으로 일한다
#식물사회에서 발견하는 민주주의의 참모습
풀뿌리 민주주의
식물들은 도인들처럼 움직이지 않고 각자 나름대로 의·식·주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있으니 식물의 세계에서는 식품이나 위생, 의류나 주택 정책 등이 필요 없다…식물의 세계에서는 행정부가 필요 없다.
그 비결은 생과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고 불교에서 말하는 소위 탐진치 삼독을 없애고 무심 무아의 경지에서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사는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인간 사회에서 사는 도인들의 삶이 바로 식물들의 모습이라고 보면 크게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실 제대로 깨달은 도인들은 식물처럼 움직이지 않고도 육신통(六神通)을 통해 세상을 다 보고 듣고 알기 때문에 중생처럼 헐레벌떡 땀 흘리며 뛰고 돌아나닐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노래하는 나무들
1980년 10월 일본에서 태어난 가제오 메그르라는 소녀. 식물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사람을 정화시키는 숲
#도인(道人)처럼 사는 식물
노자가 말하기를 도인은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다 알고, 보지 않고도 훤하며, 억지로 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오히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그만큼 덜 알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깨달음의 단계가 깊어져 불교에서 말하는 소위 보살의 경지에만 이르러도 필요한 경우 자기 몸까지도 아낌없이 보시한다….그러니까 식물처럼 한 곳에서 인연 따라 살아갈 뿐 다른 작위를 만들지 않는다.
이런 정도만 생각해 봐도 도인의 세계가 어떤 것이고 그들의 사는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연상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식물들이 사는 모습은 어떤가?
#식물은 자연 교과서다
학생들이 읽고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을 봐도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것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 입시나 취직 시험에 필요한 기능적인 내용을 빼고 나면 인성(人性)을 기를 만한 마음의 양식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드물다.
소리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주변의 도인? 백성욱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래 여기서는 무슨 책을 읽느시는지요?”
“아무 책도 읽지 않소.”
“…여기 있는 사람들도 책을 읽기는 읽지요. 그러나 지나 다니는 사람들은 그 책을 읽지 못할 것이요.”
“그게 무슨 책인데 저희는 읽지 못합니까?”
“…저기 앞에 산이 있는데, 거기에 무엇이라고 씌어 있는지 아시오? ‘모든 정력을 낭비하는 자 속히 죽느니라’ 그런데 그 글자가 당신들 눈에 보이오, 안 보이오?”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우리가 애지중지 여기는 교과서란 실재가 아니라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실제 대상은 교과서가 아니라 자연계와 인문계의 모든 현상들. 진짜 교과서는 자연계 내지 인문계 그 자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읽고 배워야 할 대상은 흰 종이에 찍힌 글자가 아니라 눈앞에 전개된 삼라만상이다.
#인간보다 더 진화한 식물
식물은 인간이 가진 것처럼 거추장스런 큰 눈을 갖지 않고서도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덩굴처럼 자력으로 접촉하고 공해 없는 배설기능까지 모두 갖추고 인간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 그러니 자력을 갖지 못한 환자를 가리켜 ‘식물 인간’이라 부르는 것은 정말로 식물을 모독하는 언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식물을 보는 관점과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식물이 인간보다 더 많은 진화를 거듭해 왔고 또 더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까지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식물은 나의 스승
가르쳐 주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 될 수는 없다…깊이 있는 논리적 사고와 폭넓은 지혜, 미래를 투시하는 명철한 예측력,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손색없는 인품 등 배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을 주는 그런 스승이 더러 있기 마련. 일생 동안 이런 스승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며 행운아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가르치는 주체가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옛 성현이나 도인들도 말했지만 우리는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자연 현상이 모두 교과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내다 보면 가르치는 존재는 사람만이 아니라 산과 들, 바다, 동물, 식물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인간 사회에서 풀지 못한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식물의 세계에서 주어진다면 식물은 스승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셈이다. 더욱이 인간에 대한 식물들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심 그리고 희생 정신과 넉넉한 배품이야말로 더없이 값진 것이요 스승 이상으로 존경스럽고 감사한 선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나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식물을 스승으로 삼고 배우며 겸허하게 살아간다면 인류의 앞날에는 반드시 서광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