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장준하. p424
이제 나는 그 2년간의 체험을 중심으로 우리 현대사의 한 증언자가 되고자 이 수기를 발표한다.
#탈출
나의 생존가치는 지금 이 시각 이후로부터 비로소 존재한다고 나는 어금니를 갈았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서 꼭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학도병 지원, 탈출, 항일독립운동을 위한 중원6천리길
#불로하 강변의 애국가
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던가, 우리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나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이 길을 위해 나는 가련다. 나의 인생의 여정은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이정표의 푯말을 꽂고 이제부터 나를 안내할 것이다…
“너, 불로하, 말없는 강, 안으로 모든 것을 가라앉혀 비록 그 바닥에서는 물결이 거세어도 수면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기만 하는 강,…너 마르지 않고 너 나타나지 않는 그 강심을 나는 여기서 배우리라.”
나에게는 지금 젊음이라는 가장 큰 무기가 있다. 아니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다. 이 무기는 곧 나의 생명이다. 그러나 이 무기도 언젠가는 녹이 슬 것이다.
녹이 슬기 전 나는 이 무기를 조국광복 전선에서 들 것이다. 이것은 조국이 준, 내가 조국으로부터 받은, 단 하나의 그리고 다시는 받지 못할 무기이다.
#동족상잔의 와중에서
내 이 광야에서 벨 베개는 돌베개임을, 벌써 일군을 탈출하기 전 마지막 편지로 아내에게 말하였고 또 각오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베어야 할 나의 돌베개는 어느 지점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고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가.
나는 사실 나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것은 숨가쁜 길로 산을 기어오르면서 스스로를 시험한다는 의식 속에, 나를 이기고 있었다. 이긴다는 것은 모두 내 생애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의 생애가 만일 나 이외의 것을 위해 있을진대, 반드시 오늘의 이 이김은 나의 생애를 위해 필요한 것이리라.
‘나 자신에게는 이기되, 다른 사람에게는 지리라’ 이러한 나의 생각은 이름도 모르는 이 산을 정복하면서 나의 머리에 괸 생각의 결정체가 되었다.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
#광복군 훈련반에서 3개월
단조롭고 무의미한 생활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우리는 청년기의 한창 나이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태는 새로운 적으로, 우리를 자포자기 속에 빠지게 하였다. 타락이라는 차원이 우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등불』, 책이라기보다는 잡지의 형태로.
이것은 그때 그 상황 속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업이었다. 적어도 보람을 얻고 쌓고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숭고한 사업이라고 우리는 자부하고 일했다.
#노하구의 공연
#파촉령 넘어 태극기
#눈물의 바다
#자링청수는 양쯔탁류로
비록 이 강물은 맑아도 기어이 양쯔강의 탁류에 합류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 맑은 물은 탁류 속에서 어떻게 제 맑음을 보존하겠는가. 이 강물 속의 물고기들은 양쯔강의 탁류에서 살지 못하고 우리처럼 거슬러올라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생명을 잃은 고기떼는 그 탁류에 휘말리겠지
이범석 장군. “…내가 왜 중경을 떠나서 시안에 가 있는지 아는가? 나도 그분들의 정치싸움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뿐더러 이곳에 더이상 머물러 있다는 것은 나와 나라에 모두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8·15 전후
#임시정부의 환국
“…나 여기 이렇게 왔소”
그러나 실상은 우리들 몸만이 온 곳이고 와야 할 것이 못 온 것이 아닌가. 무엇인가 우리가 조국에 가져와야 할 것을 못 가져온 것이 아닌가? 우리가 가져와야 할 것을 우리 힘으로 찾아왔다면, 누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분명히 우리는 비행기에 태우져 온 것처럼 조국에 그저 돌려보내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빈손으로 되돌아가게 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대가를 충분히 치를 힘이 정말 없었던 것이 사실일까.
싸워서 피흘려 찾은 해방이라면 그 얼마가 싸운 대가라고 계산될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못난 후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또는 남북만주, 시베리아를 무대로 얼마나 많은 우리 선열들이 이날을 위하여 숭고한 피를 흘렸던가. 우리는 그 피값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베개』에 부치는 말
이 이야기는 단 2년간의 체험수기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부터 조국광복이란 감격의 깃발이 민족의 숨결처럼 펄럭이던 1945년까지 나의 20대는 ‘자랑스러운’ 자부심으로 부끄러울 것 없는 젊음을 구가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나고 또 한두 해가 얹혔다. 그리고 나도 50대에 들어섰다. 이제 나는 그 2년간의 체험을 중심으로 우리 현대사의 한 증언자가 되고자 이 수기를 발표한다. 당시 국내외를 통한 제반 사정과 우리 젊은이들의 저항을 내 눈으로 확인한 대로 기록해야 하겠다는 사명감까지고 느끼게 되는 오늘날의 정치현실은 나로 하여금 주저 없이 붓을 들게 했다.
그러나 광복조국의 하늘 밑에는 적반하장의 세상이 왔다. 펼쳐진 현대사는 독립을 위해 이름없이 피 붐고 쓰러진 주검 위에서 칼을 든 자들을 군림시켰다.
내가 보고 들은 그 수많은 주검들이 서러워질 뿐, 여기 그 불쌍한 선열들 앞에 이 증언을 바람의 묘비로 띄우고자 한다.
창세기 28장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 ‘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다. 그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춘원이 한 수필집을 내면서 짧은 하나의 수필제목을 따 『돌베개』로 낸 일이 있음을 아나 그러나 나의 ‘돌베개’는 중원의 ‘돌베개’이므로 외람된 마음 드는 것을 접어두고 이 수기의 제(題)를 『돌베개』라고 붙였다. 이제 나는 살아서 50대 초반을 보내며 잠자리가 편치 않음을 괴로워한다. 1971.4.19
장준하의 사람됨을 보면 구약의 야곱 같은 데가 있다. 참사람이 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무외(無畏)의 덕을 풍부히 가지고 있다. 겁이 없다. 무서운 것이 없다.-함석헌
온몸으로 민족의 문제를 안고 씨름하며 살아간 그의 뜨거운 가슴. 고요하면서도 단호한 그의 몸가짐에 비겨보면 그의 사상의 평가 같은 건 검불과도 같은 것이다.-문익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