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 최영중. p684
역사지리학자 최영준의 농사일기
#입출협기
내가 시골에서 단조로운 생활에 빠져 있는 동안 옛 친구들 중에는 고관으로, 경제계·문화계 저명인사로 이름을 낸 인물들이 적지 않다…그들 중 상당수는 폭넓은 사회생활을 즐겼다. 그런데 이제 모두들 은퇴하여 활동을 접게되자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서생의 존재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닌 기이한 일이다.
#1990~1992년 이상향을 찾아서
“밭 아래 넓게 퍼진 모래밭, 넓고 잔잔한 강, 그리고 앞에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짙은 녹색의 산은 마치 안동 풍산의 병산서원 주변과 흡사하다. 내가 감히 서애 류성룡 흉내를 내볼 엄두가 나지 않으나 주위 풍광에 어울릴 만한 글방 하나 짓고 들어앉아 낮에는 논밭을 다듬고 밤에는 글을 읽으며 살고 싶다.”
#1993년 너희는 결코 가난뱅이 자식이 아니다
시골 사람들 대부분은 제초제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호미로 잡초를 캐는 우리 부부를 비웃으며 “약을 치면 잡초가 깨끗하게 없어짐은 물론 삭아서 거름이 되는데 왜 저리 어리석은 짓을 할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들에게 땅을 파게 해보니 삽날을 비스듬히 눕혀 긁적거리는 수준이라 삽질하는 교육부터 시켜야 했다.
#1994년 자연을 받들어야 한다
혼인서약. ‘이제 두 분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부부란 형식과 법적 절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른다운 어른이 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주례를 할 때, ‘이제 두 분은 부부가 되는 첫걸음을 떼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시골에서는 심한 봄 가뭄으로 농부들이 밭작물 파종을 못해 애를 태우는데 그녀들은 주말 나들이하기에 좋은 쾌청하고 따뜻한 봄날을 찬미한다. 국민의 85%가 도시에 살고, 농촌에도 비농민이 적지 않아 실제로 농사짓는 인구는 국민의 10%밖에 안 되니 아나운서의 날씨예보는 주말을 즐겁게 보내고자하는 대다수 도시인을 위한 것이어야 하겠지만 농부들은 섭섭하다.
가뭄에 애를 태우는 전업농부들의 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놀이꾼들이 강변 모래밭에 화려한 천막을 쳐놓고 고성능확성기가 달린 음향기기를 틀고 요란한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어댄다. 이들의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을 테지만 그 땀은 농부의 것과는 냄새도 다르고 맛도 다를 것이다.
나는 환경파괴의 주범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깨끗한 곳을 골라 다니며 배설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또 동식물에 위해를 가한다. 물과 공기를 더럽히는 것도 인간이다.
#1995년 수확의 기쁨을 어디에 비할꼬
건조주의보 발령.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가뭄의 괴로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퇴비가 썩는 냄새를 구수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봄에 퇴비를 낼 때는 삼태기에 든 퇴비를 손으로 집어 밭에 뿌리게 되었다
#1996년 농사도 창작이다
“파종을 완료하고 나니 아내가 잘 정리된 이랑과 고랑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그렇다. 농사도 하나의 창작이고 땅 위에 만드는 하나의 예술이다.”
라디오에서는 주말 날씨가 맑아 나들이하기에 좋겠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농촌에서는 하늘만 쳐다보며 애태우고 있다.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으면 대부분이 자급자족하고도 남는다고 대답한다. 북한은 어떨할 것 같으냐 물으면 매우 부족하므로 우리의 남는 미곡으로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25% 내외에 불과하고 북한은 70%을 상회한다…우리는 무역을 통해 버는 외화로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지만 북한은 식량을 수입할 외화가 없다는 사실을 다수의 대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K대학에 근무하는 후배가 어느 날 내 밭을 보고 “엉성하군요” 하며 흉본 것은 바로 잡초를 처리하지 못했던 데서 연유한다(자연농법,유기농법,친환경농법은 게으르다? 잡초와 공생!)
#1997년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땅심이 살아난다
잡초 하나 보이지 않는 깔끔한 밭의 주인은 부지런한 농부로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밭에서 산다 해도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한 농작물만 자라는 밭으로 꾸밀 수는 없다!
#1998년 사람이 부른다고 봄이 오나
“…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나타나 문득 봄의 향취와 훈훈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1999년 노동은 과연 신성한가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신성하다고 말하면서 땀 흘려 일하기를 꺼린다. 상당수의 도시 사람들은 체육관에서 흘리는 땀은 귀하고 고급스럽지만 노동으로 흘리는 땀은 천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미움과 욕망과 고뇌를 잊을 수 있다. 노동을 통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노동은 신성하다.”
#2000년 자연이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
“이제 내 몸도 낡은 자동차처럼 수리와 정비가 필요할 정도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건강문제에 연연하여 보약을 찾거나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진다는 두려움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50세가 넘었으니 이제 남은 생애는 조물주가 베푸시는 덤인 셈이다.”
#2001년 농사의 길, 수신修身의 길
“농토를 가꾸는 사람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지모에 대한 애정과 조물주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에 땀 흘리면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부들에게는 땀에 절인 옷 냄새도 건강한 식물들이 발산하는 싱그러운 냄새와 별로 다르지 않다.”
농사는 결코 선비가 해선 안 될 일은 아니다. 전에도 어떤 사람에게서 “학자가 연구하지 않고 어찌 땅이나 파는 천한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농사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이틀 이상 농사일을 하는 동안 나는 잡념 없는 무의식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체력이 강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2002년 대지의 어머니
“우리 선조들은 물이 필요하면 강물이나 개울물을 길어다 썼고 옹달샘이 있는 곳은 복이 있는 취락으로 여겨 이를 약수 또는 영천이라 하였다. 샘이 지기가 통하는 혈맥과 관련이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자연을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하면 외경심을 갖게 되므로 함부로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은 삼갈 것으로 생각된다.”
#2003년 뻐꾸기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2004년 어찌 하늘은 가난한 사람만 골라 재앙을 내리는가
“얼었던 토양을 한 삽 떴더니 싱그러운 봄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땅 속에서 잠을 자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 찾아온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들판으로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땅의 기운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겨줄 것이다. 밟고 선 땅이 누구의 것인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밟고 선 그 순간은 자기 소유니까.”
#2005년 도둑이 들어 사랑채 현판을 훔쳐갔다
“…문 앞에 ‘무단침입한 사람에게 고한다. 우리 집에는 가져갈 만한 귀중품이 없으니 출입을 삼가주기 바란다’라고 붙여놓았다. 내가 짓는 농사는 규모가 영세한 지라 도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론 언짢겠지만 그것도 일종의 보시라 여기니 마음이 편하다.”
#2006년 국토의 난개발은 재앙을 부른다
“…농작물을 잘 키워 수확한다 해도 금전적인 가치는 아주 적고 보잘것없겠지만 밭 갈고 씨를 심고 김을 매서 키운 것이기에 말 못하는 작물들에 대한 애정이 자식에 버금가니 소홀할 수 없다.”
#2007년 10년 가꾼 산의 절반이 사라지다
“도로공사가 막바지에 들어서니 20여 년간 볼 수 없었던 땅주인 여러 명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촌스러운 토지관에 젖은 반면 그들은 촌토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도시의 경제관으로 무장되어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농로와 마을길에 부재지주들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인심이 각박해지고 있다.”
#2008년 산마루에 걸리 초승달
“토지를 생산활동의 기반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지형과 토성에 관심이 없어 거친 흙과 돌을 상관하지 않고 메워 평탄하게 다듬고 있다. 기하학적으로 정리된 토지는 그들에게 부를 가져다줄 단순한 공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9년 신음하는 대지
이 세상에 누구에게나 꼭 맞는 이상향은 없다. 이중환도 완전한 복거(卜居)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지리·산수·생리·인심 들의 네 가지 요소 중 미비한 점이 비교적 적은 곳을 택하여 이상향으로 삼도록 권한 바 있다. 최근 산수리가 외부의 충격을 받아 부분적으로 삭아들고 있기는 하나 20년간 정든 곳이다…그러므로 이제는 이 터전을 잘 가꾸고 보전하는 것이 오히려 옳은 일이라 여겼다.
#협곡생활 20년을 되돌아보며
그러나 길 다듬기가 몰고 온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 조상님들은 길이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풍양속을 해치는 부도덕한 요소들을 몰고 오며 질병을 퍼뜨리는 매개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땅 위의 길이든 물길이든 길가에 집을 지으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나 역시 조상님들의 고루한 생각을 지지하는 편에 속한다.
중장비로 무장한 인간의 힘이 막강해진 오늘날에는 자연의 위대성이 맥을 못 추게 되었다. 선인들은 자연이 베푸는 방향을 따라 작고 소박한 길을 열었으나 오늘날의 후손들은 책상에 펴 놓은 지도상에 자를 대고 용감하게 직선을 그어놓는다.
20년 전 강바닥에 서서 협곡을 둘러싼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자연의 위대성을 느끼던 나와 달리, 오늘날 자동차로 신작로를 달리는 사람들은 강 위에 높게 걸린 다리 위에서 협곡을 내려다보며 자연을 정복하는 인간의 능력에서 위대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편리한 길이 열리게 됨에 따라 최근까지 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던 꽃님이고개 같은 샛길들은 초목에 점유되어 사라졌다…이 고갯길을 비롯하여 널미재·한우재·말고개 등을 넘던 천산월령의 낭만적인 여로가 인간의 자만심 때문에 붕괴되고 있다.
직선으로 구획된 시가지, 육면체의 고층 아파트 등 기하학적 구조 속에서 살아온 도시 사람들은 울툴불퉁하고 삐뚤삐뚤한 산골의 토지경관을 야만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개조하지 못하는 산골 사람들을 무능하고 어리석다고 여긴다. 또한 몇백만 원의 현금을 푼돈으로 여기는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의 배포없음을 비웃듯이 농토의 개조작업을 거리낌 없이 해치운다. 이러한 땅은 땅심이 없어 수년간 유기질 퇴비를 부어야 비로소 작물을 키울 수 있다. 대부분의 개조된 땅은 방치되어 한 두 해가 지나면 잡초와 관목들이 자리를 잡아 도깨비소굴처럼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나는 오늘날까지 수확물을 팔아 돈을 번 일이 없고 앞으로도 자급자족에 만족하며 살 생각이다.
…따라서 농사일은 나 같은 서생에게 경제적으로 거의 실속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식량을 자급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경야독을 통하여 체력을 강화하고 건강을 유지하며 글을 쓸 수 있으므로 경제적인 소득보다 더 귀한 거을 얻을 수 있었다.
정년후유증? 나는 퇴임과 동시에 경작 면적을 세 배로 늘리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에서 보냄으로써 빠른 시일내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퇴계·반계·다산 등의 선현들을 본받아 주경야독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삶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