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전쟁. 조지 레이코프. p227
Thinking Points: Communicating Our American Values and Vision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 전략
프레임 vs 프레임
“자유시장은 공정하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다”-보수주의자
“자유시장은 환상이다. 가난은 국가의 책임이다”-진보주의자
“입시는 개인의 경쟁 문제다. 승자가 더 좋은 조건을 선점하다”-보수주의자
“입시는 불공정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다. 사회가 나서야 한다”-진보주의자
“이라크는 ‘전쟁’이다.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한다”-보수주의자
“이라크 ‘점령’이다. 미루지 말고 철수해야 한다”-진보주의자
미국의 가치는 본래 진보적이지만, 진보주의자들은 길을 잃고 헤매왔다.
진보주의자들은 이러한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더이상 진보적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정치적 논쟁의 언어를, 심지어 진보주의 이상에 대한 언어-‘자유’와 같은-마저도 다시 정의하도록 극우파들이 재정의하도록 넘겨주었다. 급진적 우파는 자신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의제를 알고 있다…그들은 논쟁을 주도해왔으며, 그 결과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슬로건과 정보조작이 대부분의 경우 진보주의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왜 유권자들이 프로그램과 정책의 잡다한 목록에 반응하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진리를 지키는 데 프레임 구성이 왜 필수적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왜 보수주의자들은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전체적이거나 복합적인 인과관계에 관심을 갖는지를 탐구한다.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진보주의 이상들이 우리의 국가적인 정치담론 속의 중앙 무대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금방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진보주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는 일은 바로 우리 시민들에게 달려 있다. 진보주의 정치 지도자들만으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
다행히도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이상을 추구할 때 예전의 혁명가들과는 달리 맞서 싸워야 할 영국 군대가 없다…맞서 싸워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승리와 패배
리차드 워슬린의 발견? 무엇이 정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레이건에게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지를 알아냈다!(가치와 인간적 유대, 진정성, 신뢰)
1) 레이건은 이슈보다는 가치를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정견보다 가치의 전달이 더 중요했다. 레이건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했으며, 의사소통에 능했다. 또한 진실한 사람으로 보였다. 즉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믿는 것으로 보였다. 레이건은 자신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신뢰할 수 있다고 느꼈다.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라. 진정한 사람이 되라. 그리고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을 옹호하라. 당신이 말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라. 그렇지만 정체성, 즉 당신의 정체성과 그들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그렇게 하라.
열두가지 덫을 피하라
*여론조사의 덫? 지도자의 임무는 선도하는 것이지 뒤따르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알아내기 위해 여론조사를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을 새로운 입장으로 유도한다.
*상세목록의 덫? 진보주의자들은 사람들이 프로그램과 정책의 목록에 근거하여 투표한다고 믿는다. 사실 사람들은 가치와 인간관계, 진정성, 신뢰, 정체성을 바탕으로 투표한다.
*합리주의의 덫? 이성은 합리적이지 않다
부동층 유권자 설득
이 전략을 사용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자신의 가치나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지지자들에게 말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중심’의 유권자들에게도 말하는 것뿐이다.
진정성이 없는 실용주의자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참된 가치로부터 기꺼이 이탈한다
당신의 가치가 현재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진정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용기가 있음을 뜻한다.
#프레임과 두뇌
정치적 프레임 구성은 실제로 응용 인지과학이다.
심층 프레임: ‘테러와 전쟁’
‘전쟁’은 군사적 행동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전쟁을 수행 중일 때 다른 모든 관심사는 이차적이다. ‘테러’에 ‘전쟁’이 더해질 때, 적이 되는 은유가 생겨난다. 적은 제압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테러’는 적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는 전쟁터에서 제압할 수 없다. ‘테러’는 감정이다. 더욱이 ‘테러와의 전쟁’ 프레임은 그 자체가 영구적이다. 단순히 전쟁 중이라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 프레임의 반복은 더 많은 두려움을 야기한다. 그래서 ‘테러와의 전쟁’에는 끝이 없다. 감정은 영원히 체포하거나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슈 정의 프레임: 이라크와 이민
전쟁 프레임을 부정직하며, 비극적인 생명의 손실을 초래했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점령이기 때문이다!
‘불법 이민’? 우리가 이 이슈에 대해 프레임을 다시 짜고 이 이슈를 ‘불법적인 고용주들’의 문제로 정의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이제 문제는 더 적은 급료를 지불하거나 탈세를 위해서 밀입국 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들이다. 고용주들은 임금을 깍거나, 미국인 노동자들을 다치게 하거난 이민자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프레임 구성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아주 다르다(질문이 답이다!)
‘이민자에 대한 감사’ 프레임은 이민자들의 기여를 인정하고, 필수적인 사회복지를 제공하며,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정당한 경로를 마련해줌으로서 그들에게 보상한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미지가 말보다 중요하다. 서민적으로 보이기 위해 부시는 자신의 목장에서 동력 톱을 다루는 이미지를 퍼뜨린다.
인지과학의 교훈
프레임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사용된다/프레임은 상식을 정의한다/이중개념주의자들에게도 당신의 지지자들에게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하라/ 진실만으로 당신은 자유롭게 되지 않을 것이다/ 상대편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단지 그 프레임을 강화할 뿐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나는 죠지 부시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부시로 간주했다.
인지과학의 탐구 덕분에 우리는 사고의 대부분이 무의식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합리주의는 모든 사고가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합리주의가 진보주의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이 진보주의자들이 최근 보수주의자들에게 패배를 당하고 있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프레임 재구성: 되찾아야 할 언어
시장 자유주의? 보수주의자들이 “당신은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자유주의자들은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시종일관 다음과 같이 말은 한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생명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산전관리를 받을 여성의 권리와, 예방접종을 받을 아동의 권리,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지지하는 나의 이유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내가 모든 생명을 지탱해주는 지구를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이다.”
공익의 원칙
“개인적인 야망안에서 우리는 개인주의자이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로서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추구할 때 우리는 모두 한 국민으로서 일어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쓰러진다.”-프랭클린 루즈벨트
공공 재원은 공익을 위한 자유를 창조한다. 사회안전망과 사회보장제도는 우리에게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준다. 권리장전은 우리에게 다른 많은 자유를 준다.
보수적 포플리즘
자유주의자들은 가난한 계층 또는 중산층 보주수의자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해서 투표하는 것을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주적인 포퓰리스트들은 별로 똑똑하지 않고 무지하며 부유한 보수주의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정말로 올바른 정보를 얻어서 그들에게 문제의 경제적 진실을 이해시킨다면, 그들은 모두 경제적 포퓰리스트가 되어 진보주의자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공허한 꿈이다! 보수적 포퓰리즘은 본성상 문화적이다. 그것이 바로 보수주의자들의 ‘문화 전쟁’의 내용이다.(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근본적 가치
어떤 경우에는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가치의 의미를 놓고 아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라크 점령 공개적 반대’? 용기 있는 사람과 ‘황급히 도망가기’ 입장을 취한 겁쟁이
일반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상세 목록의 덫’에 빠져 제한된 정책의안을 선택하고 이슈에 따라 행동하며, 수많은 구체적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러한 프로그램 중 어느 것도 우리의 가치를 부각하지 못한다…보수주의자들과 달리, 우리는 광버위한 귀결을 가져오는 다국면 전략 의안이 전혀 없다.
그리고 우리는 프로그램에 따라 그리고 이슈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의 운동으로 함께 뭉치지 못했다. 환경주의자와 노동조합, 여성주의자, 의료보장 운동가, 소비자 보호 단체, 이민자 보호 단체 등 모두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활동하며, 자체 기금관리기구가 있고, 자체 발행지가 있으며, 자체 로비스트를 두고 있다.
이러한 그룹들이 내놓은 이슈와 프로그램들은 정말로 중요하지만, 단독으로 실행되기 때문에 각각의 이슈와 프로그램이 패배하고 있다.
건강한 식품? 건강한 음식을 먹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평등과 관련이, 맛있고 건강에 좋는 음식은 다양성과 관련이, 다문화 체계, 이것은 자유와 관련, 모든 사람이 좋은 음식을, 이것은 공익을 위한 공공재원을 사용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전략적 의안의 이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중 건강을 위한 긍정적인 귀결로 이어진다.
윤리적 기업
시장은 공익을 신장하는 도구이다. 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장의 실패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공익을 저버리는 기업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적으로 강요받기 때문이다? 만일 관리자들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주주즐에게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윤리적 기업이 되는 두 가지 일반적인 길? 기업이 활동하는 시장의 규칙과 배경은 변화시키는 것(예 탄소배출궈 구매), 기업의 지배 구조에 이해관계자(시민, 노동자, 공동체, 생태체계 등)의 이익을 포함시키는 것
모두를 위한 운송? ‘모두를 위한 운송’ 의안을 통해 노동자와 경제학자, 환경주의자, 안보지상주의자가 동일한 기치 아래 모일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운송에 대한 투자는 자유와 건강, 경제, 국가 안보에 대한 투자이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전략적 사고를 시작할 때이다. 가장 효율적이며 장기적인 전력은 식사나 출근, 회사 근무 등 가장 흔한 활동과 함께 시작된다. 가정은 우리가 사는 곳이다. 거기서 시작하라!
#논증의 기술
오바바와 부동산세
감정이입과 공익, 그리고 경제적 등가프레임
납세자가 낸 수조 달러를 국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에 쓰거나, 아니면 부유한 상속자들에게 주어라.
오바마는 ‘세금은 구호품’ 프레임을 뒤집어서, 세금 우대조치가 부자들에게 부를 전이하는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생생한 진실을 말해주는 프레임이다!
우리의 근본적인 자유는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기 때문에 의료보험은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그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우리의 책임이다.
아메리칸 드림? 열심히 일하면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나라의 약속을 위반한다. 노동자들에게 약속했던 돈이 다른 사람들-고용주와 소비자-에게 가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도 생계를 꾸릴 수 없을 때, 당신은 집과 권위, 사회에서의 당신의 몫을 잃을 수 있다. 최저 임금을 올리는 것은 실제적인 문제이다. 최저 임금 인상이 이루어진 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다시 경제에 투입하여 일자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고용이 늘어났다. 최저임금은 또한 실행해야 할 도덕적인 일이다.
오늘의 이슈는 내일 잊힐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슈 뒤의 원칙과 가치는 지속될 것이다…표층 프레임은 사라지지만, 심층 프레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미국 진보주의자들에게 프레임을 재구성하고 “가치와 원리에 집중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 고 외치는 저자의 조언은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적인 감정이입과 인간 존엄성의 원칙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현할 수 있는 프레임을 계속해서 설파해야 한다. 경제발전과 진보적인 가치들이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중도’와 다른 ‘이중개념주의자’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진보주의자들이 이념적 이중성향자에게도 원래의 지지자에게 말한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어설픈 타협을 시도하는 것은 진보적 가치가 그릇되었음을 자인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레임 전쟁 |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출발점”에 대한 2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