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만에 흙집짓기. 고제순
모든 사람이 행복을 꿈꾸며 산다
행복한 삶이란? 삶의 세가지 영역,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로운 삶,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평화롭고 영혼이 기뻐하는 상태
행복한 흙집 짓기?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영혼이 조화롭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육체노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손발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집 짓는 현장은 이론과 실천이 따로 놀지 않는다. 생각과 행동이 분리되지 않는다. 지행합일의 현장이다!
흙집을 한 채 짓는다는 것은 자연의 훌륭한 의사를 주치의로 모시는 것과 같다? 흙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흙집 짓기는 여러모로 나에게 신명나는 일이다. 행복한 일이다.
##나는 왜 흙집을 짓는가?
뭔가 잘못 살아온 삶? 오로지 이성 중심의 삶, 책상머리에 앉아서 읽고 쓰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판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며, 머리로만 살았다. 특정 영역에 치우친 삶이었다.
치우친 정신 생활? 앎과 행동이 분리, 이상과 현실이 따로, 내면의 분열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정신의 위기이자 삶의 위기였다.
식食, 주住, 의醫! 이것은 분명 생존의 세 가지 기초. 이 세 가지 삶의 근본 요소에 대해서 홀로서기 능력이 전혀 없는 나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도권 교육의 박사 학위증을 손에 쥐고도 자립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난 정말 당혹스럽고 참담하기까지 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정말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공부요, 헛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정신노동만 하며 살아온 결과로서 학위증이 위미하는 것은 현실의 박사가 아니라 이론의 협사狹였다
#삶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오랜 세월을 정신노동에만 치우친 기형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자각! 생존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식, 주, 의 생활에 대한 비자립적 삶에 대한 자각! 이러한 자각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삶의 기초를 철저히 다시 세우고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삶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 생태적 농사꾼이 되는 것이요. 생태적 목수가 되는 것이요. 생태적 의사가 되는 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을 도시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시골 생활, 자연 생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랫동안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준비해 온 길을 단념하고 준비되지 않은 생소한 길로 전환한다는 것은 참으로 결정하기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쉽지 않았다…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은 늘 이렇게 새로운 삶을 주춤거리게 하나 보다.
‘현실은 생각의 반영’이라는 말은 경험적 진리인 것 같다. 생각의 내용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생각은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작동하게 되어 있고 작동하는 에너지는 모종의 현실이라는 결과를 창조한다.
#생태적 식생활의 홀로서기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번쩍 뜨이는 농업을 만났다. 바로 조한규 선생님의 자연농업이었다. 자연농업은 4무농법으로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를 추구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농업이었다.
충북 괴산의 시골 어느 폐교를 개조한 ‘자연농업 생활학교’
‘저 분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자구나!’
평생 농사만 지어 오신 분이지만 한마디로 철학자였다
#생태적 주생활의 홀로서기
전통건축의 공통점? 흙집. 흙은 그 자체가 생명체이기도 하면서 수많은 생명체를 양육하는 생명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흙집이란 달리 말하면 생명의 집이다. 생명을 살리는 집이다.
#생태적 의생활의 홀로서기
대체의학, 대안의학이라는 용어보다 생명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더 좋아한다? 생명의 이치를 깨치기만 하면 누구나 손쉽게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생명의학!
#흙집 짓기의 세 스승_새,벌,거미
가능한 한 손수 짓는 집
자연을 닮은 집
튼튼한 집
생명 에너지가 소통하는 집
#막돌은 없다
천태만상의 자연의 돌 vs 규격화, 정형화? 개성의 무화!
돌을 쌓다 보면 각종 모양의 돌이 저마다 제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돌쌓기에는 잘난 돌 못난 돌이 따로 없다. 있다면 그렇게 판단하는 인간의 망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각자의 돌은 그 모양대로 그 크기대로 쓰임새가 있고 자신의 고유한 자리가 있다.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유독 인간만이 섬김의 이치에 역행하며 살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코 인간은 자연의 유일한 무탄트(돌연변이)일 것이다. 그것고 가장 잔인한 암세포 무탄트일 것이다.
돌은 엄연한 생명체? 모든 생명체는 움직임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존재 방식은 ‘움직임’이다. 생명은 살아 있으며, 살아 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요. 움직인다는 것은 생명 에너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이제 생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지 않으면 생명의 미래는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깨달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명체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변화하기 때문이다. 진동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물이냐 무생물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주의 관점에서는 무생명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인간의 언어에만 존재할 뿐이다.
#흙집 학교를 열다
아파트 공화국? 대부분 콘크리트가 생명을 죽이는 물질이라는 사실에 너무도 둔감한 채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선목수가 선禪목수의 길을 걸으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선목수가 사고를? 못 하난 제대로 박지 못했던 자가 흙집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진정 조화로운 삶은 머리로만 살아서는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조화로운 삶이란 몸, 마음(정신), 영혼의 삼위일체의 조화를 의미한다.
#생명을 살리는 흙집 짓기
흙의 움직임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여기에는 인위가 없다. 작위가 업다. 스스로 그러하게 움직이며 더불어 그러하게 움직인다. 수많은 미생물과 더불어 움직이며 햇빛과 더불어 움직이며 바람과 더불어 비와 움직인다. 수많은 생명의 탄생을 위해 흙은 묵묵히 움직인다.
흙은 넓고 넓은 가슴입니다.
흙은 깊고 깊은 배려입니다.
흙은 높고 높은 은혜입니다.
흙은 낮고 낮은 겸손입니다.
흙은 한이 없는 인내입니다.
흙은 온갖 허물을 덮어주는 가이없는 용서입니다.
흙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흙은 따사한 어머니 품속입니다.
흙은 생명을 기르는 신입니다.
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삶의 참 스승입니다.
흙처럼 아쉬람 www.mudashr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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