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더불어숲>의 메시지는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라는 말에 담겨있다. 강자의 지배 논리에 맞서서 ‘공존과 평화’의 원리를 지키고 자본의 논리에 맞서서 ‘인간의 논리’를 지키자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 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론’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여행은 돌아옴입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돌아옴이며 타인에 대한 이해입니다. 정직한 귀향이며 겸손한 만남입니다. 이 정직한 귀향과 겸손한 이해가 없는 한 서로 다른 세계가 평화롭고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20세기의 아픈 과거로부터 새로운 세기를 향하여 떠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행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 밖으로 걸어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여인상의 전승기념탑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드네프르 강 언덕의 전승기념탑. 2차대전 때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의 침략을 물리친 전승을 기념하는 탑. 나는 그것이 기념탑인 줄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언덕에 서 있는 여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승기념탑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의아해하는 나에게 안내자의 설명이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전승이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어머니가 서서 기다리는 것, 그것만큼 전승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전승기념탐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워싱턴에 있는 전승기념탑이었습니다…전쟁에 대하여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천박함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전승은 적군을 공격하여 진지를 탈환하거나 점령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미국적 사고와 문화가 우리의 심성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쉽게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20세기를 떠나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재 속에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20세기의 실상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떠남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만남에 대한 환상입니다. 떠나지 못한다면 만날 수도 없는 법입니다. 만남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고 함부로 재구성하는 것은 오만이며 삶과 역사에 대한 무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곳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든 그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 땅의 최선이었고 그 세월의 최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존중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행은 돌아옴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의 자연?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있지만 문화의 본질은 공산품이 아니라 농작물입니다. 우리가 이룩해내는 모든 문화의 본질은 대지에 심고 손으로 가꾸어가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람에게서 결실되는 것입니다.
근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은 한마디로 탈신화와 물신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자연’을 파괴하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외부의 자연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과자로 된 산’을 쌓아온 과정이었습니다…진정한 문화란 사람들의 바깥에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성에 씨를 뿌리고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입니다.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책임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청산입니다.
최후의 식민지이던 홍콩이 반환되었지만 영국은 그곳에 영어를 남겨놓았습니다…영어는 이제 레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노후한 자본부의 국가는 머리만 남은 국가입니다. 언어와 브랜드와 금융만으로 남아 있는 경제입니다. 몸에 해당하는 산업이 없는 나라입니다. 비단 영국뿐만 아니라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이미 해외 투자로 외국에다 그 몸을 만들어놓고 있거나 외국 자본을 자국에 유치하여 국내에다 남의 몸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문명의 진보는 태양을 잊어가는 과정입니다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이 아닌 경우는 언제인가? “협동조합이 회사가 되는 경우”,
대수롭지 않는 차이? 결국은 ‘경쟁’과 ‘협동’이라는 아득한 거리를 두고 갈라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듭니다.”-호세 마리아 신부
지식인의 탄생은 한마디로 ‘정신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
공자는 자기 자신을 일컬어 ‘배워서 아는 정도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란 곤경을 당하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우리를 절망케하는 것은 비단 오늘의 곤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곤경을 당하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했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세모의 한파와 함께 다시 어둡고 엄혹한 곤경이 우리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곤경이 비록 우리들이 이룩해놓은 크고 작은 달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하더라도, 다만 통절한 깨달음 하나만이라도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