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산다.지율/박기호/이남곡/임락경/칫다다/서영남. p.359
채워도 채워도 허기진 현대인을 위한 여섯 현자의 메시지
‘우리 시대 무소유를 묻는다’-생명평화결사(황대권) 강연
#나는 소유하고 있다, 햇살과 바람과 구름을_지율 스님
“무소유는 과연 무엇인가?” 금방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일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인 것이죠.
자기가 가진 것은 나눌 수 없으면 그게 바로 탐심이며 소유입니다
감사히 받은 다 헤진 스님의 겨울 옷? 이렇게 꼭 필요할 때 망설이지 않고 옆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벗어주는 게 무소유가 아닐까 합니다. 추위에 떠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옷을 벗어주고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 하지만 소유하려는 마음이 강하면 차일피일 미루게 되지요. 내가 좀 더 부유해진 다음에 베풀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정작 영원히 부유하지 못하다고 여기니까요.
가장 많은 것을 가진 부처님? 평화로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 깨끗한 마음.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또 누구도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버려야 가능합니다.
“지도로 보는 땅은 기호에 불과하지요. 인간이 소유하는 땅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허상의 기호에 불과하지요.”
그 허상의 기호를 인간은 소유하고 있을 뿐 땅의 진짜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소유하는 것과 무소유도 그런 차이가 아닐까요.
가난한 산골 오지 마을? 큰 부자가 있을 수 없지만 마을 사람들 중에 빚이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언제나 남지요.
하루 종일 불켜진 삶이 과연 평화로운 삶일까요? 빛 하나 없이도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 별들이 뿜어내는 빛들도 보고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도 들립니다!
문명의 기계는 외진 마을보다 수십 배가 더 많았으나 마음속은 텅텅 비고 말았습니다…4대강 사업…완성되고 나면 우리의 문명은 또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겉보기에는 부자가 되었으나 속으로는 빚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4대강 사업? 생명의 피라미드 저 아래에 있는 작은 벌레들, 송사리, 조개, 피라미, 가재, 퉁사리, 버들치, 수달, 메기,…그리고 수많은 식물들의 터전을 한꺼번에 덮어가고 있습니다. 생명의 터전이 무너지면 당연히 생명이 사라지지요.
이제 우리는 자연을 포기하고 끝없는 문명을 추구하느냐, 자연을 지켜 모두가 공존하는 터전을 만드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놓여 있는 그대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 하나는 질문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답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올바른 해결책을 낼 수 있을까요?
낙동강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도 도룡뇽이 사느니 안 사느니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질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시민사회운동? 자신이 가진 마지막 한 방울의 물까지 짜내 독에 붓는 건 안 됩니다. 자신을 채워나가면서 물을 부어야 합니다.
#이제 호화 여객선에서 뛰어내려야 할 때_박기호 신부
가진 자나 갖지 못한 자나 모두 행복하다는 말은 모순되어 보이지만 비주류 사람들은 소유로 인한 걸림돌이 없기에 자유롭고 행복한 것입니다.
무소유와 소유는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 역시 아닙니다. 가치관의 차이 혹은 삶의 방식의 차이일뿐입니다.
풍요속 빈곤? 배고픔이 사라질 때 인간도 덩달아 사라진 것입니다.
공동체 생활? 이론적으로 풀어낼 수 없는 ‘삶’ 그 자체
공동체는 하나의 이념 아래 모이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은 버리고, 자기 가치관은 양보하고, 자기 욕심은 깊이 파묻어야 합니다.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입니다…열심히 살고 있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생의 의미가 없게 됩니다.
무소유이 삶 자체가 기본적으로 자연의 생태적 구조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무소유가 우리 삶의 기초가 됩니다.
정치인들의 정책, 공약이란 게 전부 ‘개발’입니다
지구를 살리자? 지구나 생태는 죽지 않습니다. 그 안에 사는 인간이 죽는 것이고 위험한 것입니다.
도구가 나타남으로써 인간의 능력은 끊임없이 퇴화하고 있습니다.
기계로 인해 퇴화하는 인간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는 없는 편이 명백히 좋은 물질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니씩 지워나가면 소유가 최소한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꼭 가져야 할 것도 최소한의 유익만을 취합니다. 가령 어떤 영농 기계를 구입하자는 의견이 있으면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아닌가 검토하게 되는데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일단 구입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한 번 필요한 것은 필수품이라고 할 수 없기에 소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용, 절용, 활용을 추구합니다. 필요한 범위를 최대한 줄이고, 하나의 기구를 다용도로 활용하며, 가진 물건을 최대한 아껴서 생활합니다. 물질은 인성을 만드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물질을 만들지만 물질도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차량과 생활의 편의도구들이 나타나면서 인간의 삶은 퇴화하고 있습니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호화 유람선에 올라탔다고 기뻐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 배가 올바른 목적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목표는 반드시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허황된 공상이나 꿈만으로는 목표를 세울 수 없습니다.
내삶의 주인 되는 첫 번째 조건? 소유욕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로부터의 자유가 풍요를 가져다줍니다. 자기 소유가 없으면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겠지요.
전쟁을 멈추는 길? 최전선의 병사가 총을 내려놓는 것-톨스토이
가장 쉬운 해답이지만 실천은 어렵고 한편으로는 두렵습니다.
무한 질주하는 타락한 문명을 멈추게 할 유일한 길은 과학도 인문학도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의지입니다. ‘나는 필요 없다’고 거부하는 삶이지요…그 거절의 정신을 우리가 실천해야 합니다.
안티 소비운동? 단순히 ‘쓰지 말자’고 주장하지 않습니다.덜 쓰는 차원이 아니라 올바로 쓰자는 것입니다. 굳이 필요가 없으면 쓰지 말자는 운동입니다.
공유, 무소유의 정신 실천? 공동 생산하되 분배 없이 공유로 살자는 것, 분배를 하면 다시 물질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배를 하지 않고 필요한 것만 가져가는 겁니다.
우리에겐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삶이 필요합니다.
노동의 몸을 이미 상실한 시대? 귀농한 사람들을 보아도 대부분 머리 쓰는 일은 잘합니다. 그러나 농사를 내 손으로 짓고 모든 일을 내 몸을 움직여 해결하는 일에는 굉장히 약합니다. 길들여진 문명의 혜택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행복은 스스로 발견하는 것
공동체 운동의 키워드는 무소유와 육체노동
귀농이나 공동체 생활은 결국 무소유와 절약, 육체노동으로 집약됩니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지만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새로운 것으로 계속 채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물질이 아니라 새로운 정신과 생활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신앙인.
무소유에 대한 신부님의 생각은 지극히 간명하다. 예수님께서 설파한 사랑의 공동체를 잘 살아내면 그것이 곧 무소유의 삶인 것이다.
#21세기 말, 무소유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_이남곡
사람을 떠난 우주의 자연계 안에는 소유라는 것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무소유 사회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능력껏 하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자가 70세에 도달한 세계? 마음먹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매 마음대로 행해도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 경지입니다.
무소유의 마음? 나보다 더 가져가는 사람을 보면서 너그러움과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아니,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게 더 좋습니다.
***충(忠), 경쟁이 아닌 몰아의 경지로 몰두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경험
***서(恕),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상대의 처지, 입장,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면 용서할 일이 없어집니다.
논어에서 말하는 충음 바로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이릅니다. ‘고도로 집중되어 마음이 편안한 상태’, ‘자기를 잊을 정도로 대상과 하나되는 충일감’, ‘그 일을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상태’입니다. 장난감 조립에 열중하는 아이의 마음과 같은 것이지요.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하면 일이 저절로 됩니다. 내가 된장인지, 된장이 난지 모르는 몰입의 상태가 오는 것이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이 경지에 오를 수 있으나 처음에는 무척 어렵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된장 담는 일이 싫었어요.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문든 ‘ 이 일이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로 일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마음이 평안을 느끼고 속도도 빨라졌지요. 그 결과 한때는 ‘된장 담기의 달인’이라는 말도 들었지요…이 마음의 상태가 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하고 하면 언뜻 분배를 떠올리겠지만 최고로 이상적인 상태는 분배가 없는 상태입니다. 분배는 필연적으로 소유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급료도 없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고도의 공동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전북 장수 ‘좋은 마을’)
극단은 반드시 보편성과 충돌해 문제를 일으킵니다.
무소유도 중요하지만 무아집도 중요합니다. 아집이 있는 상태에서는 연찬이 잘 안 됩니다. 내가 옳다는 인식을 버리지 않으면 연찬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아집을 버려야 진정한 무소유의 길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포함해 지금의 사람들은 다 아집이 있습니다. 이 아집의 실태를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하다 보면 마음속에 부자유와 허위의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편적일 수 없게 됩니다.
“군자는 천하의 모근 일을 논함에 있어 무적(無適), 무막(無莫)해야 한다”
불가지론이 아니라 어떤 단정도 내리지 않는 지혜를 갈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연찬입니다.
***진정한 일관성은 ‘실행과 연찬의 연속’을 통해 가장 옳은 것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단정하거나 고장하지 않지만 망설이지도 주저하지도 않습니다. 급하게 시행해야 할 일이 닥쳤을 때 최선의 방법으로 신속하게 실행에 옮깁니다.
내가 만일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면 그 이웃과는 소통이 막혔을 것이고 지금처럼 좋은 이웃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실제로 나나 아내나 ‘관행농은 옳지 않다’는 단정적인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 점은 장점이나 단점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특성으로 봐야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별 주체성이 강한 것으 사실입니다. 독립성이나 강한 주체성은 성격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가정이야말로 무소유와 무이집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입니다.
보편성 추구? 극단은 진실에서 멀어지고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야만과 진보, 그 기로에 선 인류
비관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개별 주체성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협동기업이나 협동생산보다는 좋은 경영자를 권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좋으 경영자란 단지 이윤에만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사원들의 행복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대안이 왜 없나요? 바로 사람이 대안입니다.(사회운동에 헌신하는 좋은 인재들)
무소유 사회 도래? 약간 역설적인 주장으로 들리겠지만 무소유 사회로 진화하지 않으면 인류가 종말을 고하거나 종말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야만으로 후퇴하리라는 전망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는 사회, ‘무아집, 무소유, 일체’를 이념으로 한 무소유와 공용의 사회를 자본주의와 종교를 넘어선 사회 모델로 제시했습니다.
자발적 가난? 자발적 풍요! 인산의 자유욕구는 물질적 욕구로부터 점차 정신적,예술적 욕구로 상향 진화합니다.
마을과 도시 주민들간의 연회비 회원제 야채 공급. 겉으로는 물자와 돈이 오가는 것이지만 마음이 선물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서로 가진 것을 풀어놓는 방식의 거래인 셈이지요.
‘성인화’란 에고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노숙이이 되어도 좋다’는 기개가 필요하다? (역경이 창조를 부릅니다)
진정한 마음의 힘인 호연지기를 살려야 합니다. ‘노숙이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 심리를 떨쳐내고 ‘노숙이이 되어도 좋다’는 청년다운 기개를 갖기 바랍니다. 이 말은 20대와 30대의 내 두 아들에게도 해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사람은 섞여 살아야 한다_임락경 목사
어떤 직업이 좋을까 궁리하면서 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하지만 농사꾼이 없다면 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평생 농사짓자고 결심했지요. 그 후로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거나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농사는 내 땅이 있건 없건 어디에서든 할 수 있습니다. 그날 이후 아직까지 손에서 흙을 놔논 적이 없습니다.
내 가족과 네 가족을 분리하는 것은 진짜 공동체가 아닙니다.
11시부터 1시까지 2시간은 자야 생명에 지장 없습니다.
젊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 경서, 경서는 어려워도 다 보아야 합니다. 원문을 몰라도 됩니다. 번역본 보면 됩니다.
귀농하려면 부부가 같이 하지 말라? 먼저 혼자 농사 지어보고 나중에 사표내면 된다
귀농한 사람들에세 강력하게 얘기하는 것? 풀밭 만들지 말라! 풀이 모이면 벌레가 모이고, 벌레가 모이면 개구리가, 개구리가 모이면 뱀이..풀이 나기 전에 호미로 긁으면 됩니다. 풀 나오기 전에 긁어버리면 편해요.
농사지어 아이들 높은 학교에 보내고 학비 대주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학교는 안 보낼 생각해야 합니다…학교에 갖다 줄 돈 모아서 차라리 시골에 땅 사면 부자 됩니다.
농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농외소득이 있어야 하고, 귀농하더라도 부부 중 한 사람은 월급을 받아야 합니다…그래서 나는 양봉을 했습니다.
비료를 안 하면 농약을 안 해도 됩니다.
비싼 유기농? 돈 많이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드은 농약 듬뿍 친 농산물 많이 드십시오. 값 싸고, 때깔 좋고, 크고, 탑스럽습니다. 그러면 생산자들도 농사짓기 쉬워집니다. 돈도 되고요. 같이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지요. 또한 같이 빨리 죽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촌놈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격이 까다롭습니다. 먼저 지게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한 80kg은 져야지요. 멍석과 새끼, 용마루도 틀 줄 알아야 하고, 짚신도 삼을 수 알아야 합니다. 쟁기질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촌놈이지요.
잘못된 동요 가사? 책상에만 앉아서 노래를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 삶과 자연으로 나와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면 그렇게 잘못된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해박한 민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지요.
사람은 섞여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은 다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철들면 철학이겠지요. 심각한 것도 철학이지만 몸을 부쳐 사는 것도 철학입니다.
#인간에겐 소유권이 없다, 다만 관리권이 있을 뿐_칫다다
#무소유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_서영남
민들레 국수집
[인생이 학교다] 신부님이 방식? 잘 살라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
선착순이 항상 올바른 방법일까요? 먼저 온 사람은 무조건 1등이어야 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힘없고 아프고 나이 들어 걷기조차 힘든 약자들이 1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손님들을 설득했습니다..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중에 온 사람에게 양보를 하면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보다 약자이면 기쁜 마음이 듭니다. 또 늦게 와서 먼저 먹게 된 사람은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해지고, 동시에 다른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식사를 빨리 합니다. 그야말로 1석 3조입니다.
우리는 인간답게 사는 것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 알고 있습니다. 1등부터 주지 않고 약한 자부터 먼저 주면 세상은 행복해집니다.
함께 꿈꾸고 이뤄낸 1만원의 기적
그냥 하니까 되더라구요? 국수집을 하면서도 늘 신기한 일이, 아슬아슬한 순간에 간절하게 꿈을 꾸도 기도하면 저절로 자연스럽게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겁니다. 그런 경험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것을 다 내놓아도 아깝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