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엔트로피.엔트로피를 생각하는 사람들.p161
지구를 구하기 위한 21세기의 새 세계관
젊은 시절에는 과학이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올바로 이끄는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의 진보로 얻은 결과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는 피폐하여 근대과학으로 대치되었지만, 과학은 차가운 암흑이 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승리, 승자가 있으면 패배자가 있다. 패배자는? 농민!
농촌이 도시에 압도당하여 농민들이 농촌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복당한 것은 자연입니다. 문제는 지금 인간이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는 데 있습니다. 분명히 사람들은 선생님의 시대보다는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그들은 숲을 죽이고 토양을 황폐화시키고 자연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진짜 문제입니까?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술개발에만 매달려 그것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학은 진보만을 목표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엔트로피입니다.
#엔트로피? 더 이상 ‘일’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 양의 척도,
엔트로피의 증가는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감소를 뜻한다
우리에게 열역학 제1법칙만 있다면 에너지를 무한정 하더라도 바닥나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예컨대 휘발유를 태운다고 할 때 그 에너지 총량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에너지는 탄산가스와 그밖의 기체로 변화하여 공기중에 흩어져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미래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손실되는 벌을 가져다 주는 것이지요.
“엔트로피는 시간의 화살이다”-에딩턴,
#시간의 화살? 시간의 비가역성!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에너지는 되돌이킬 수 없는 분산과정을 밟고 있다는 엔트로피의 법칙과 일치하여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결정이 되어 있는 우리들의 한계?!
#인간과 엔트로피
“모든 생물은 주위로부터 음의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를 계속 취함으로써 살아가며 유기체가 먹고 사는 것은 음의 엔트로피다”-슈뢰딩거, 노벨상 물리학자
모든 생명체는 적어도 일부분의 에너지를 앞으로 사용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분산시킵니다(살아가기 위한 엔트로피 배설? 전체 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질서를 유지한다)
폐기물 처리? 엔트로피 방출!
생물순환? 물의 엔트로피성, 물의 순환이 중요한 역할!
#기계적 세계관과 엔트로피 세계관
마찰이 없는 뉴턴의 세계? 역학과 열학의 차이! 열역학
‘마찰이 없는 완전한 평면’? 마찰과 저항은 열을 발생시킵니다!
역학이란 열의 발생을 무시해야 성립하는 학문!
‘마찰이 없다면’ 이라고 뉴턴은 아무렇지 않은듯이 서두를 뗐습니다만 그런 세계는 상상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세계입니다.
저항이 없다면 운동은 대칭적(가역적)인 과정? 열의 발생을 동반하는 현상은 시간의 역전이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관계의 관계? 저항이나 마찰이 있는 열현상은 관계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습니다
#갈릴레오의 변절
‘관계’를 배제한 근대 과학? 뉴턴의 역학 성립시기
갈릴레오의 굴복 때문에 과학의 의미가 달라졌다? 다시 과학을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한 죄!
석유문명은 오염문명? 석유문명의 총체로서의 엔트로피! 그것이야말로 현대 최대의 엔트로피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능률과 효율
능률을 올리면 효율이 떨어진다? 같은 거이를 이동하는 경우 빨리 가려고 하면할수록 에너지 소비가 커집니다. 결국 능률을 올리면 효율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 현대문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자력과 엔트로피
원자력의 에너지 효율? 30%
물건을 만드는 데도 옛사람들의 생각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오래된 미래)
#문명과 문화
문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을 주었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일을 찾아 농촌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 인구의 도시집중을 가져오고 지구를 오염된 별로 만들어 버렸지요. 우리 마을에서는 “문명보다 문화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문명은 ‘이동’이고 문화는 ‘정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도 무리하지 않는다? 이 복잡한 시대에 완전한 자급자족 생활을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고 효율도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급자족한다는 것은 무리일 겁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자세입니다. 가능한 곳에서 조금씩 해나간다는 것이 우리들의 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우리는 원자력발전에서 배웠습니다(원자력 안정성 확보 3원칙? 다중성, 독립성, 건전성)
자원을 시키더라도 최대한 생산을 끌어올리는 성장위주의 경제정책과 경제발전? 달리 생각해보면 자원을 경제상품으로 빨리 전환시켜 자연의 저장고로부터 미래의 세대를 위한 자원을 빼앗아 빠르게 소모시키는 것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정말로 참다운 행복이란 무엇인가, 올바른 문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물어야 할 때를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형이상학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시급해지고 있어요. 인간은 무엇인가, 어디서 왔나? 그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뿌리 깊이 다시 묻고 대답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소비는 더 이상 인간의 존재목적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본래의 생물학적 기능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새 시대에는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끝을 모르는 소유와 소비, 즉 끝없는 욕망의 추구는 결국 덧없는 것이며 끝내 우리의 삶을 망쳐 놓을 뿐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더욱 실감하고 있어요.
많이 소유할수록 우리는 그 소유물에 더 많이 소유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유에 매달립니다.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를 의도적으로,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있다”-간디
“the more we have, the less we own”
#새로운 세계관-엔트로피
우리는 세계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영구적인 물질적 성장으 믿는 기계적 세계관으로부터 한정된 자원을 보존하고 아껴쓰는 엔트로피 세계관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것도 빨리 바꿔야 합니다. 엔트로피 법칙은 절약해 쓰는 것, 쓴 것을 다시 재생해서 쓰는 것 이외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경제정책? 참다운 발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끝도 없이 자원을 소모하고 낭비하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쉽게 읽는 엔트로피 | 지구를 구하기 위한 21세기의 새 세계관”에 대한 2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