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p 319
화이트버드 호(문명)의 구조를 포기하고 스스로 섬(자연)에 남은 로빈슨 크루소
내가 볼 때 한마디로 말해서 타자의 존재야말로 인식 주체와 피인식체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혼란과 애매함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대니얼 디포의 소설 속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물질문명과 절연된 무인도에 표류하여 뜻하지 않은 경험을 겪는다. 그러나 그는 등 뒤에 두고 떠나온 과거의 세계, 즉 대영 제국의 체계에 근거한 하나의 세계를 무인도에 재현하려고 애쓴다. 오로지 그가 백인이고 서구인이고 영국인이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로빈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모두가 진리라는 전제하에 서술된 그 작품을 읽으며 투르니에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전혀 다른 로빈슨을 창조하려고 마음먹었다. 과거의 가치들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무인도에서는 전혀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로빈슨을 말이다.
그러니까 로빈슨은 오직 과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잃어버린 것을 복원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죠. 나는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로빈슨 스스로 깨닫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다시 쓰는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2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