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p236
LINGUA FUNDAMENTUM SANCTI SILENTII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
침묵? 그 무엇의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능동적인 그 무엇!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하이데거
침묵은, 특히 명상의 침묵은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만든다.
침묵은 “일체의 지성을 초월하는 평화” 바로 그것이다.
말이 그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된다. 그러나 말이 그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뿐이다.
침묵은 인간의 근본 구조에 속하는 것이다.
침묵은 “존재”이며 하나의 실체이며, 그리고 말이란 그 어떤 실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말과 침묵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오직 말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지만, 오직 침묵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아마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은 자기자신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침묵은 발전되지 않는다.(시간은 침묵 속에서 성장한다)
침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하게 현존한다.
***성스러운 무용성? 침묵은 오늘날 유일하게도 아무런 효용성도 없는 현상이다. 오늘날의 효용성의 세계에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모든 것들보다는 침묵에서 더 많은 도움과 치유력이 나온다!
침묵은 그 존재와 활동이 하나이다.
***침묵은 하나의 원현상이다!
침묵은 원현상들 중에서 가장 먼저 태어났다.
침묵을 통해서 인간은 과거의 세대들과 그리고 미래의 세대들과 결합된다.
침묵의 원현상은 오늘날 파괴되어버린 까닭에 인간은 너무도 지나치게 성의 원현상에 매달린다.
오늘날의 모든 소음은 다만 그 태고의 짐승, 즉 침묵의 드넓은 등에 붙은 벌레들의 울음소리에 불과한 것 같다.
***말은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
말이란 다만 침묵을 뒤집어 놓은 것, 침묵의 이면일 뿐이다!(침묵의 반향)
침묵하는 실체를 가지지 못한 인간은 오늘날 매순간마다 그 앞에 제공되는 지나치게 많은 사물들로 인해서 압박을 받게 된다.
침묵이 없다면 변화는 실현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변화할 때 모든 과거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지나간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침묵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이 결여된 오늘날의 인간은 더 이상 변신할 수가 없다. 다만 발전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발전이란 것이 오늘날 그렇게 중요시되는 것이다.
존재와 침묵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
형상(image)은 말하는 침묵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침묵은 속박당하고 말았다.
*꿈 역시 침묵으로 가득 차 있는 형상이다!
사랑 속에는 말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더 많이 있다
“사랑은 말할 때보다 침묵할 때 비할 데 없이 더 쉽다. 말을 찾는 것은 마음의 감동을 크게 해친다.”-브레몽의 [신비주의와 시]
인간의 얼굴은 침묵과 말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이다.
인간은 다른 그 어느 것에 의해서보다도 말에 의해서 더 많이 규정된다.
침묵이 결여된 얼굴!
“오늘날 인간의 얼굴에는 어떠한 바다도 어떠한 산도 없다. 얼굴이 더 이상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밀어내버린다…얼굴에서 나무들이 베어져 나가고, 산은 파여 없어지고, 바다는 말라붙었다. 그리고 그러한 텅빈 얼굴 속에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인간의 얼굴, 피카르트]
“말하라! 내가 그대를 볼 수 있도록!”-소크라테스
인간의 본질은 인간의 형상보다는 인간의 말 속에서 더 잘 보인다.
동물의 완벽함? 인간과 달리 동물에게는 (자신의 형상과) 불일치가 전혀 없다!
시간 속에 깃든 침묵이 없다면 망각도 용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농부의 생활은 침묵 속의 생활이다! 말들은 떠돌다가 도로 인간의 말 없는 움직임 속으로 돌아왔다. 농부들의 움직임이 말을 대신한다.
농부의 생활은 인간 하늘의 궁륭에 붙어 있는 성좌와도 같다.
행복한 내적 자유!
오늘날 대도시는 그와 반대이다.
전원생활? 반대로 인간은 거대한 도시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부의 소음을 시골로 가지고 갈 뿐이다!
숲은 거대한 침묵의 저수지 같다
***잡음은 소리 없는 공허를 덮어버리는 ‘소리 나는 공허’이다. 그와 반대로 참된 말은 고요한 침묵의 표면 위에 드리워진 ‘소리 나는 충만함’이다!
라디오(TV,모바일 멀티미디어)? 단순히 잡음어를 생산하는 기계 장치! (자동 잡음 그 자체!)
대도시는 거대한 소음의 저수지이다!!!
도시는 죽음을 찾고 있다. 살아 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서 침묵을 찾는다.
오늘날 인간에게 잠이 없는 것은 인간에게 침묵이 없기 때문이다(잠들지 않는 도시!)
***침묵이 없는 세계!
침묵의 상실만큼 인간을 크게 변모시킨 것은 없다! (한 특성만이 아니라 자신의 전체적인 구조까지 변해버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었다.
잃어버린 침묵? 침묵은 고립된 수도원 밀실 안에서만 존재한다!
대도시의 주택들은 침묵을 막기 위한 요새를 같다. 마치 총구처럼 그 창문들에서 침묵을 향해 사격이 가해지는 것 같다!
***침묵을 창조하라!!!
“세계의 현상태, 생활 전체가 병들어 있다. 만일 내가 의사이고 그래서 당신은 무슨 충고를 해주겠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침묵을 창조하라! 인간을 침묵에게로 데려가라. 이렇게는 신의 말씀이 들릴 수 없다.”
*세계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소음 기계 장치로 변해버린 듯한 시대?
현대는 모든 것이 스스로 요란한 소리를 냄으로써만이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확인받으려고 하는 소음 대량 생산의 시대이다. 그리고 그 소음이 이번에는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고 획일화된 사고를 강요하면서 끊임없이 거짓 진실들을 생산한다.
#침묵은 채움을 위한 ‘소리 없는 충만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