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의 삶 이야기. 61-63쪽
‘불은 나무에서 생겨나 도리어 나무를 불사른다(火從木出還燒木)’는 말이 있다. <직지심체요절>에 나오는 고승 대덕의 말이다.
사람들은 처음에 나무에 막대를 비벼 불을 얻었다. 나무에서 불을 얻었으니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른 나무를 꺽어다 계속 불에 얹었고, 그 불로 몸을 덥히고 먹을 것을 만들었다. 나무 처지에서 보면 나무에서 불이 생겼으나 그 불 때문에 모든 나무들이 땔감이 되고 수없이 불태워지게 된 것이다.
녹은 쇠에서 생겨나 쇠를 갉아먹는다. 쇠로 만들어진 것은 비길 데 없이 단단하지만 쇠를 못 쓰게 만들고 마는 것은 결국 쇠 자신에게서 생겨난다. 쇠로 만든 연모응 모든 것을 베고 쓰러뜨리고 갈아엎지만 그 자신은 정작 그의 내부에서 생긴 녹으로 스러지고 만다.
내 몸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의 내부에서 움튼다. 외부의 자극과 시련에는 꿈쩍도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나를 녹슬게 만드는 것들로 끝내는 무너지고 만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언제나 나의 내부에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좋아서 시작한다. 그 일을 하며 기뻐하고 삶이 기쁨과 보람도 거기서 느꼈는데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로 결국은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때가 온다.
사람마다 자신의 몸에 자신 있어 하는 곳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부분이 나이 들면 제일 먼저 고장 나고 병들게 된다.
사슴이 노루나 다른 짐승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뿔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슴도 그렇게 크고 멋진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맹수가 나타나 도망쳐야 할 때 넝쿨과 나뭇가지에 가장 걸리기 쉬운 것 또한 그 뿔이다. 사슴은 알고 있을까, 사냥꾼들이 그 뿔 때문에 추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명예를 얻고자 갖는 고초를 다 겪지만 명예를 얻고 나면 그 명예 때문에 늘 가파른 벼랑 끝에 서 있어야 한다. 권력을 얻고자 뼈가 부스러지고 살이 짓뭉개지도록 고생을 하면서고 참지만, 권력을 지키는 과정 역시 뼈를 깍고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삶이어서, 제 살과 남의 살로 깍아 만든 권력의 꼭대기에서의 외줄을 타듯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는 데 돈이 가장 전지전능한 물건인 것 같아서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친다 돈 때문에 군데군데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해지는 날이 있다.
사랑의 따뜻한 온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사랑의 불길이 제 몸을 태우고 사랑하던 사람의 삶도 다 태워 결국 재밖에 남기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겪어서 안다.
그러나 또 자신을 태우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저를 태우는 것이 늘 저에게서 비롯되고 저를 녹슬게 하는 것이 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도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부른다.
그 바다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집착없는 공,무위의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