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의 삶 이야기. 37-39쪽
꽃은 어떻게 필까. 꽃은 소리 없이 핀다. 꽃은 고요하게 핀다. 고요한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핀다. 꽃은 서두르지 않는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아우성치지 않으면서 핀다. 자기 자신으로 깊어져 가며 핀다. 자기의 본모습을 찾기 위해 언 땅속에서 깨어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도 눈감지 않고 뜨거움 속에서도 쉬지 않는다.
달이 소리 없이 떠올라 광활한 넓이의 어둠을 조금씩 지워 나가면서도 외롭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걸 보면서, 꽃도 그 어둠 속에서 자기가 피워야 할 꽃 자태를 배웠으리라.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지만 집착하지 않아서 꽃 한 송이를 이루었으리라.
무념무상의 그 깊은 고요 속에서 한 송이씩을 얻었을 것이다. 자아를 향해 올곧게 나아가지만 자아에 얽매이지 않고 무아의 상태에 머무를 줄 아는 동안 한 송이씩 피어올랐을 것이다.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다 말고 꽃 한송이를 보며 웃음 짓던 가섭의 심중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꽃 한 송이가 그렇게 무장무애한 마음의 상태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 하나를 그렇게 깨닫고 삶의 경계마다 화두 하나씩을 깨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진흙 속에 살고 진흙에서 출발하되 진흙이 묻어 있지 않은 새로운 탄생, 우리의 삶도 그런 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풀 한 포기도 그와 똑같이 피어난다. 그렇게 제 빛깔을 찾아 간다. 나무 한 그루도 그렇게 나뭇잎을 내민다. 가장 추운 바람과 싸우는 나무의 맨 바깥쪽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되 욕심부리지 않고, 욕심조차 버리고 아아가다 제 몸 곳곳에서 꽃눈 트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잎새를 가지 끝에 내밀며 비로소 겨울을 봄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봄도 그렇게 온다. 아주 작은 냉이꽃 한 송이, 꽃다지 한 포기도 그렇게 추위와 어둠 속에 그 추위와 어둠이 화두가 되어 제 빛깔의 꽃을 얻는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혹독한 제 운명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말한다.
발치 끝에 와 발목을 간질이는 어린 풀들을 보며 신호라도 하듯 푸른 잎을 내미는 나무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비로소 봄이 왔다고 말한다. 그 나뭇가지 위로 떠났던 새들이 돌아오는 반가운 목소리가 모여 와 쌓일 때 비로소 봄이라고 말한다.
추상명사인 봄은 풀과 나무와 꽃과 새라는 구체적인 생명들로 채워졌을 때 추상이라는 딱지를 떼고 우리의 살갗으로 따스하게 내려온다.
공은 없음이 아니다, 집착할 실체가 없음이다.
그렇다. 공을 깨달으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집착이 없으니 자유롭고,
분별이 없으니 평등하고,
경계가 없으니 자비롭다,
이것이 공의 진정한 의미이다.
매 순간 변화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붙잡으려해도 붙잡을 수 없다
여여! 모든 것을 온전히 순수하게 받아들여라
공은 무위가 아니라 무집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