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바드 기타. 한혜정 풀어씀. 150-153쪽
<기타>의 배경은 전쟁이다. 전쟁 배경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기타>의 전체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기타>의 전쟁 배경에서 아르주나가 당면한 상황을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가족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도덕적 딜레마 상황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싸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삶 자체’ 즉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인간의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결정된 상태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개인은 어떤 국가, 어떤 지역, 어떤 가정에 태어날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으며, 외모, 건강, 성향 등 신체적·정신적 조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들어 죽는 것도 피할 수 없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조차 극히 드물고 오히려 온갖 억업과 부조리를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가난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도 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책임과 의무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전쟁 상황과 매우 닮아 있다.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전쟁은 한번 시작되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은 전쟁을 스스로 끝낼 수 없고 싫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군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어진 임무대로 열심히 싸우는 것뿐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 같은 삶’에 구속되어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듯 살고 있다. <기타>에서 친족과의 전쟁을 앞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르주나가 당면한 상황은, 인간이 전쟁 같은 삶에 지쳐 절망에 빠진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아르주나에게 크리슈나는 “힘을 다해 나가서 싸워라!”라고 명령한다. 이는 삶이 말 그대로 불합리하며 잔인하기까지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라는 의미이다. 전쟁에서 있는 힘을 다해 싸우되 왜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하여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대의 말을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대는 슬퍼할 이유가 없는 것을 슬퍼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산 자를 위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대와 나와 여기 모여 있는 왕들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인간은 유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몸을 차례로 거치고, 죽은 다음에는 죽은 다음의 몸을 입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변화에 현혹되지 않는다.
사람은 감각 기관과 감각 대상의 접촉에 의해 차가움과 뜨거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지만, 이런 경험은 흘러가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왔다 갈 뿐이니 참고 견뎌야 한다. 이런 변화에 동요하지 않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다.
자기가 누군가를 죽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누군가가 자기를 죽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둘 다 무지한 사람이다. 죽는 것도 죽임을 당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지. 그대는 태어난 적도 없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대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태어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태고부터 존재한 영원한 그것은 육체가 죽는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자기가 태어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 영원한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육체 속에 있는 참자아는 육신이 낡으며 낡은 몸을 벗어 버리고 새 몸으로 갈아입는다.
참자아는 칼로 벨 수 없고 불에 타지 않으며 물에도 젖지 않고 바람으로 말릴 수도 없다. 참자아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움직이지 않고 영속한다. 참자아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으며 변하지도 않는다. 그대는 이런 사실을 깨닫고 슬픔에서 벗어나도록 하라.
다시 말해 크리슈나는 인간이 살면서 겪는 육체적 죽음이든 그 밖의 어떤 일이든,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인데 그로 인해 슬퍼하고 절망하는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가짜 모습’에 속박되는 것일뿐임을 강조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그리고 공의 깨달음, ‘없음’이 아니라 집착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상실이 아닌 해방, 집착이 아닌 자유, 허무가 아닌 충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