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숨. 유경수. 164-169쪽.
재래식 논농사가 무논과 노동체계 간의 상승작용을 극대화하면서 재난에 대한 저항성과 지속가능성을 발전시켜왔다면, 녹색혁명 이후에는 벼 품종 개량과 질소비료 공급의 병향이 논농사의 근간이 되었다. 1960년대 아시아의 녹색혁명은 쌀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벽에 부딪히면서 초기에 좌절을 맛보았다. 재래종 벼들은 질소비료를 주면 더 많은 수확으로 반응하기는커녕 키만 웃자라 비바람이 불면 넘어졌다. 수천 년 내려온 습지 논 시스템의 질소 및 영양물질 순환은 재래 벼 품종과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었다…질소비료 사용으로 시작된 벼 생산량의 증가는 결국 다른 영양분의 추가 투입에 대한 필요로 이어지면서, 전통적으로 소농의 농업 시스템 안에서 유지되던 토양 비옥도를 외부로부터의 입력에 종속시켜버렸다.
현대의 벼농사는 지리적인 확장 또한 거듭했다. 그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인도다…펀자브의 벼농사에 영향을 미친 외부 요인에는 비료뿐 아니라 물도 있다. 1970년대 이후 가속화된 쌀과 밀의 이모작은 펀자브의 고온 기후대를 활용하는 탁월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지류에서 끌어오는 관개만으로는 물 수요가 높은 쌀과 밀의 생산을 맞출 수 없었다. 그들은 지하수 개발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지난 40년간 펀자브 전역에서 지하수면은 급속도로 낮아졌으며, 2023년까지 펀자브의 66퍼센트에서 지하수면이 20미터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물값도 공자에 양수기용 전기요금도 면제해준 정부 정책은 지하수를 앞다투어 퍼내도록 부추겼고, 경쟁의 승자는 강력한 모터 양수기를 돌릴 수 있는 부농들이었다. 소규모 영세농은 말라가는 땅을 보고만 있거나 공동으로 돈을 모아 양수기를 사들여야 했다.
지하수면이 낮아질수록 농가의 빈익빅 부익부는 심해졌다. 공유지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펀자브의 지하수는 인도의 범국가적 문제이면서, 보통의 가물이 재앙으로 이러지는 기후 온난화와 ‘보이지 않는 물’을 통해 전 세계과 연결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물’은 인도가 수출하는 수자원을 일컫는다. 인도가 무슨 수자원을 수출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인도의 물로 인도가 수출하는 쌀과 밀을 키웠음을 생각하면 인도는 물 부족 국가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물 수출국이다. 그렇게 해마다 수출되는 ‘보이지 않는 물’이 1300만 명의 인도인이 쓸 수 있는 양이다.
녹색혁명 또는 쌀 생산 증가에 초점을 맞춰야 했던 국가의 정책을 비난하거나 그 성과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식량 증상을 위해 빠르게 외부의 입력에 종속된 벼농사가 재난에 취약해지고 지구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음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또한 녹색혁명 이전의 논농사가 성취한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속에 담긴 미래의 가능성을 탐구하자는 것이다. 재래식 논농사와 현대 쌀 생산체계의 차이를 최대한 명확히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병에서 기안한 퇴행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엮이며 쌓아온 역사를 지난 벼농사를 아는 데 필요한 첫 조치이며,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과 토지 사용을 위한 기반 작업이다. 벼농사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 만들어온 가장 오래된 관계 중 하나이다. 아시아에서는 벼농사 자체가 사회외 문화, 성장을 만들어내 거푸집이다.
녹색혁명 이전의 쌀 생산이 습지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벼의 생리와 논에 물을 채우고 써레질하는 농부의 노동을 버팀목으로 만들어진 단층집이이었다면, 녹색혁명 이후의 쌀 생산은 새로운 벼 품종과 질소비료 등의 외부 입력을 재료로 세 층을 더 올린 사층집이다. 그렇게 식량 생산이 네 배로 늘었고, 덕분에 두 배 반으로 불어난 식구가 길바닥에 내쫓기지도 않고 오히려 풍족하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기후변화, 악화되는 지구 생태계, 변화하는 식량 수요에 맞서, 이 집이 무너질 조짐은 없는지 물어볼 때가 되었다. 사 층짜리 집이 덩치에 걸맞게 좋은 이웃인지, 즉 모든 이에게 고르게 양질의 영양을 제공하며, 작은 규묘에선 주변의 생태와 환경에 도움이 되고, 지구 규모에선 기후변화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지 물어볼 때가 되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계속해서 층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을 찾아가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래층에는 마법과도 같은 오래된 기술이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生)의 지혜야말로 더 나은 미래로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