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사람 얼. 함석헌, 91-92쪽
얼굴에도 빛이 있어야지만 마음은 더구나도 빛이 나야 한다. 속이 밝아야 밝은 사람이다. 그리고 속에 빛이 나는 것은 글읽기로야 된다. 아무리 닦은 거울도 닦지 않고 두면 흐려버린다. 공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많은 티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둘러싸는 분위기도 그렇다. 그러므로 그냥 두면 흐린다. 자주자주 닦아야 한다. 마음을 닦는 데는 글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옛 사람은 공부한다는 사람이 사흘만 글을 아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난다고 했다. 그 대신 부지런히 공부하면 사흘만 있다 만나도 눈을 비비고 봐야 알아볼 만큼 달라진다고 했다.
모색(茅塞: 길이 띠로 인하여 막힌다)이란 말이 있다. 산골짜기의 길이 끊지 않고 사람이 다니면 그 길이 호적이 있으나, 며칠만 사람의 발이 끊어지면 그만 풀이 자라 막혀벼려 길을 알 수 없어진다. 우리 마음에도 길, 정로(正路)가 있다. 그대로 사람이 자꾸 가면 그 길이 막히지 않고 훤하지만, 그만 며칠이라고 다니는 사람이 없으면 좌우의 풀 같은 욕심이 우거져 길이 막히게 된다. 욕심은 풀처럼 퍼지는 힘이 강하므로 쉬지 않고 다녀서만 금할 수 있다. 길은 발길로야 낸다. 이따금 낫으로 베는 것보다 날마다 한 번씩이라도 다니는 것이 낫다.
산길로 가는 것은 나무꾼이거니와 마음길로 다니는 것은 누군가? 친구들이다. 살아 있는 친구, 또 책 속에 있는 옛 친구, 친구 오기 끊어지면 사람은 버린다. 살아 있는 친구는 세상 일에 걸리고 먼 거리가 있으니 뜻대로 아니 되지만 옛 친구는 책만 펼치면 곧 온다. 내 마음속을 꼭 바른 길만 걷는 옛 어진 이들, 공자·맹자·노자·장자·석가·예수·피타고라스·소크라테스 하는 이들이 날마다 찾아오면, 와서 큰일 없이 그저 한번 왔다만 가도 그 길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글로 마음 닦는 것이다.
글은 날마다 끊지 않고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빠도 “이따가 틈을 내어 잘 하지” 하는 생각 말고 부족한 대로 날마다 끊지 않고 하여야 한다. 집안 청소를 이따가 잘한다고 미루는 집은 늘 더럽고 지저분한 법이고, 대강대강이라도 날마다 털고 쓰는 집이 언제나 깨끗하다. 그러므로 많이 읽을 필요 없다. 마음의 양식도 몸의 양식 모양으로 잘 씹는 것이 중요하다. 씹지 않은 밥보다는 씹지 않고 통으로 삼킨 글은 더 손해다. 소화불량되면 관격이 되어 당장 죽든지 설사가 나서 있던 것까지 훑어 나가든지 한다. 조금 먹고 잘 소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밥에 체한 사람은 먹어도 살은 찌지 않고 파리하기만 하고 글에 체해 하는 체하는 사람, 읽기는 많이 읽어도 아무것도 모른다.
산 벗을 택해 사귀듯 글 속의 벗도 택해야 한다. 책은 골라 읽어야 한다. 책은 고르고 고른 책 중에서도 골라 읽어야 한다. “진신서불여무서(盡信書不如無書)”, 책을 다 읽는다면 책 없는 이만 못하다, 맹자의 말이다.[맹자,진심] 책을 고르는 데에는 독창성을 표준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 사람 제가 본, 제 소리가 있는 책, 스스로 얻은 것이 있는 책이다. 남의 것을 빌려서 설명한 것은 아니 봐도 좋다. 그러므로 책은 고금(古今)으로 택해야 한다. 옛 고전과 현실 문제를 다룬 책이다. 중간의 것은 뽑아도 좋다. 박학(博學) 연구는 별문제, 이것은 마음의 양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