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 최재천.
미래 도서관…책만 읽는 공간 탈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연결성..미래사회에서 중요한 요소! 연결과 공유. 독서토론 등…새로운 도서관의 모습!!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 세계에도 배움은 넘쳐난다. 그러나 가르침teaching는 거의 없거나 매우 드물다.(가르침을 전달할 소통수단, 언어, 말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 교육은 혁명적 변화가 필요할 만큼 고질적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 모두를 가르치려 들다보니 획일화와 표준화가 배움의 본연을 망쳐버렸다.
1980년대 내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곳의 거의 모든 수업에는 기본적으로 학생 중심 토론이 포함돼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이 안고 있는 온갖 문제점은 물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도 상당 부분 토론 부재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토론 문화가 사라진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역시 일제강점기의 교육이 제공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학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식민화를 위한 획일적인 교육에 집중하는 가운데 토론 학습은 애당초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wha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
22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모든 학습을 토론으로 하는 서양과 달리 우리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받아본 사람이 거의 없다. 배워본 적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학교에서 가르치면 능히 잘할 수 있다.
토론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차고 넘친다. 나는 좀 다른 각도의 책을 쓰기로 했다. 지금은 토론을 잘 이끄는 방법에 관한 책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탁월한 사회자moderator 혹은 진행중재자facilitator가 훌륭한 토론자를 길러낸다.
미래사회의 키워드? 연결성! 그동안 우리가 개발해온 거의 모든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변화가 어떤 분야로부터 촉발될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어디로 번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통섭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늘 추구해온 ‘선택과 집중‘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창발성의 근원? 연결!)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잘되면 신기한 일이다. 소통이 당연히 잘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불통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가 있다…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한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오랫동안 편견의 원인과 예방에 관한 연구 끝에 기적적인 치유법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놀라운 치유법은 다름 아닌 접촉contact이었다...알면 사랑한다. 알면 용서한다.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 자연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착취하고 파괴한다…접촉 이론. 올포트가 말하는 접촉이 바로 앎의 시작이다. 접촉으로 촉발된 앎의 과정이 사회적 움직임으로 이어지려면 시민들이 한데 모여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1962년에 펴낸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독서대중reading public’이 살롱이나 커피하우스에 모여 독서토론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근대의 서막을 여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