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월 키머러.
20 하늘여인의 텃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게 내 일이다…인간과 땅의 긍정적 상호 작용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내놓은 평가의 중간값은 ‘없음’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20년간 교육을 받고도 어떻게 인간과 환경 사이의 이로운 관계를 하나도 생각해내지 못할 수 있을까? 오염된 폐허, 공장식 축사, 문어발식 교외 확장과 같은 부정적 사례를 매일같이 접한 탓에 인간과 대지의 관계에서 좋은 것을 보는 능력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땅이 황폐해지면 우리의 시야도 황폐해진다. 수업이 끝나고 대화를 나누다가 학생들이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이로운 관계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태적•문화적 지속 가능성에 이르는 길을 상상조차 못한다면, 기러기의 너그러움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학생들은 하늘여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지 못했다.
24 우리 모두는 하늘여인 이야기를 과거에서 온 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서구 전통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열이 있다고 믿는다. 당연히 진화의 정점이자 창조의 총아인 인간이 꼭대기에 있고 식물은 밑바닥에 있다. 하지만 토박이 지식에서는 인간은 곧잘 ‘창조의 동생’으로 일컫는다. 우리는 말한다. 인간은 삶의 경험이 가장 적기 때문에 배울 것이 가장 많다고. 우리는 다른 종들에게서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 그들의 지혜는 살아가는 방식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들은 본보기로 우리를 가르친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대지에 머물렀으며 세상을 파악할 시간이 있었다. 그들은 땅 위와 아래에서 살며 하늘세상을 대지와 연결한다. 식물은 빛과 물로 식량과 약을 만드는 법을 알며 그랗게 만든 것을 대가 없이 내어준다.
36 땅은 상품이 아니라 선물이므로 사고팔 수 없다.
37 유일한 조건은 공동 소유를 포기하고 사적 소유에 동의하라는 것이었다.
40 우리의 제한된 능력으로는 아직 감지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나무의 대화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60 어떤 장소를 이름으로 부르면 그곳은 황무지에서 고장으로 바뀐다.
카누 야영장…“올 때보다 갈 때 더 좋은 곳이 되게 하렴.”
64 제의는 속함의 매체다. 우리가 가족에게, 부족에게, 땅에 속해 있음을 일깨워주는.
65 그것 말고 무엇을 바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가진 대지에게. 여러분 자신의 무언가 말고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바칠 수 있는 것은 손수 만든 제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제의뿐이다.
70 “그건 과학이 아니에요.”….어린 시절의 숲에서 나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세계관이 달라졌다.
83 “사라지는 것은 말만이 아니에요. 언어는 우리 문화의 심장이에요. 우리의 생각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언어에 담겨 있죠. 그것은 영어로 말하기엔 너무 아름다워요.” 퍼퍼위.
나무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풍나무를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벽을 세우고는 도덕적 책임을 방기하고 착취의 문을 연다. 살아 있는 땅을 ‘그것’이라고 말하면 땅은 ‘천연자원’이 된다. 단풍나무가 ‘그것’이면 우리는 사슬톱을 들이댈 수 있다. 하지만 단풍나무가 ‘그녀’라면 한 번 더 생각할 것이다. (언어의 유정성)
하지만 가능성을 상상해보라. 다른 관점을 가지는 방법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들을, 우리를 둘러싼 지혜를 상상해보라. 모든 것을 스스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 말고도 지성이 있다. 어디에나 스승이 있다. 그러면 세상이 얼마나 덜 외로울지 상상해보라.
102 “나무들은 온도계도 안 보고서 어떻게 때가 된 걸 알아?”
114 “…훌륭한 이웃보다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
144 우리 포타와토미 부족에서 여성은 물의 수호자다…우리는 몸속 연못에 아기를 품지. 아기는 물결을 타고 세상에 나와. 우리와 모든 관계를 위해 물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임무야.“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물을 보살피는 것도 포함된다.
144 균형은 움직이는 표적이다. 균형은 수동적인 안식처가 아니다. 균형은 일을 필요로 한다.(균형은 동적이다)
사과나무는 좋은 엄마다. 해마다 세상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모아들였다가 자식에게 전달하여 열매를 맺는다. 자식을 세상에 내보낼 때는 세상과 나눌 수 있도록 단맛이라는 여장을 단단히 챙겨 보낸다.
모래톱-바닷가에 있는 넓고 큰 모래벌판(모래사장)
159 우리는 매일 선물 세례를 받지만, 이 선물들은 우리에게 가지라고 준 것이 아니다. 선물의 생명은 움직임에, 공유된 숨의 들이쉼과 내쉼에 있다. 우리의 할 일은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요, 우리가 우주에 내놓은 것이 언제나 돌아올 것임을 믿는 것이며 거기에 기쁨이 있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혁명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비 사회에서 만족은 급진적 태도다. 희소성이 아니라 풍요를 인정하는 것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창조함으로써 번성하는 경제에 타격을 가한다.
183 선물의 소나기와 가르침의 큰비로.
202 옥수수 수염. 작은 수염 가닥 하나하나가 껍질 속의 알 하나하나를 바깥 세상과 연결한다.
옥수수자루는 기발한 형태의 꽃으로, 여기 달린 수염은 꽃의 암술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수염의 한쪽 끝은 바람에 흔들리며 꽃가루를 모으고 반대쪽 끝은 씨방에 붙어 있다. 수염은 포획된 꽃가루 알갱이에서 방출된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이며 물이 채워져 있다. 옥수수 정자는 수염 통로를 헤엄쳐 희멀건 알맹이인 씨방으로 향한다…옥수수자루는 수백 자녀의 엄마다.
205 토착 농업에서는 식물을 땅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 관행이다(다양한 토종!)…대형 엔진과 화석 연료를 쓰는 현대 농업은 정반대 접근법을 취하여 식물에 맞게 땅을 변형한다. 식물들은 오싹할 정도로 비슷한 클론들이다.
220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은 다른 존재의 삶이 낳은 결과이지만, 이 단순한 진실은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다…종이 한 장은 나무의 삶…우리는 종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허투루 쓴다…하지만 광고 우편물 더미 속에서 원래 모습인 나무를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곳에 존이 있어서 나무의 삶이 지닌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운다면 어떻게 될까?
250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걸려 있지 않으면 무관심하다.
산소…나무는 얼마나 많은 탄소를 대기 중에서 뽑아내어 저장할까? 이 과정을 생태학자들은 ‘생태계 서비스’라고 부른다. 이것은 생명을 가능케 하는 자연의 구조와 기능을 일컫는다. 단풍나무 목재나 시럽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지만 생태계 서비스는 그보다 훨씬 귀중하다. 그런데도 인간 경제에서는 이 서비스가 계산되지 않는다. 지방 정부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304 직선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나나보조의 이야기가 오래전 과거를 되새기며 세상의 내력을 밝히는, 역사의 신화적 전승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순환적 시간관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역사이자 예언이요,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이 회전하는 원이라면 역사와 예언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306 새로 이름을 만들면 내 작명이 옳은지 확인하려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 이 식물은 피케아 시트켄시스(시트카가문비나무)가 아니라 ‘이끼에 덮인 힘센 팔‘이다. 투야 플리카타(붉은개잎갈나무)가 아니라 ‘날개 같은 가지’다…이름은 우리 인간이 서로와 또한 생명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주위에 있는 식물과 동물의 이름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어떨지 상상해보려고 애쓴다…철학자들은 이런 고립과 단절의 상태를 ‘종 고독‘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름 지어지지 않는 깊은 슬픔으로, 나머지 창조 세계로부터 소외되고 관계를 상실했을 때 일어난다.
325 나는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줬다. 온갖 패턴과 과정이 너무 두껍게 쌓여 가장 중요한 진실을 가려버린 것이다. 나는 기회를 놓쳤다. 학생들을 모든 길로 인도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길을 빠뜨렸다. 세상을 선물로서 받아들이고 보답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들이 이끼거미의 운명을 애달파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부 가르쳤지만 그 의미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 임무는 단지 학생들을 생명 세계와 대면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귀를 열도록 하는 것이었다…스승는 당신이 준비되었을 때 찾아온다고. 당신이 그의 존재를 무시하면 그는 더 크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들으려면 침묵해야 한다.
383 호혜성이야말로 성공의 열쇠다. 향모를 보살피고 존중으로 대하면 번성하겠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향모도 사라진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생태 복원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식물과 사람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실험은 토양의 산도와 수문학, 즉 정신을 배제한 물질에 치중한다. 물질과 정신을 엮으려면 감사 연설을 길잡이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땅이 사람들에게 감사를 보내는 시절을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