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써야 한다! 쓰기를 향해 방향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구경꾼이 아닌 생산자가 된다. 들으면 전하고, 말하면 듣고, 읽으면 쓴다!
무엇보다 글쓰기의 원리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사람은 왜 쓰는가? 쓴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본성과 쓰기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등.
무엇보다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이생에도 좋고 다음 생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결정적으로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박사실업자? 교수가 되지 못했다는 건 전공을 중심으로 글쓰기를 생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럼 뭘 쓰지? 아니 그 이전에 뭘 공부하지? 당연히 인생과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면 된다. 쉽게 말해, 그냥 끌리는 대로 하면 된다! 그때부터 내 공부의 영역은 무한확장되었다. 서양철학, 포스트모더니즘, 뇌과학, 동양의학, 불교, 자연과학 등등…한편 나의 내면에서는 질문이 깊어졌다…나의 유일한 자부심은 길을 제대로 들어섰다는 사실뿐이다.
비평가. 독설. 논쟁적 글쓰기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정말 공격적이면서 독한 언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연암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이런 식의 글쓰기를 그만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는 말한다. 타인을 비판하는 것으로 명예를 얻는 것은 떳떳한 일이 못된다고. 그 말이 뇌리에 박히면서 비평이 딱 재미없어졌다. (단순한 충고나 비난으론 상대방이 바뀌지 않는다! 애정 어린 충고로도 바꾸기 힘든 게 사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인간, ‘사이’의 존재…선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 하늘은 무형이고 땅은 유형이다…두 발로 서게 되면 시선은 하늘, 곧 무형의 세계를 바라보되 두 다리는 땅에 안착해야 한다. 땅을 디딘 채 하늘을 응시하는 존재. 이것이 인간이다.
땅은 구체적이고 리얼하다. 이것이 생활의 원리다. 생활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하늘은 무한하고 무상하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일상은 튼실하되, 시선은 고귀하게! 현실은 명료하되, 비전은 거룩하게!-이것이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길이다…이렇듯 선다는 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두 발로 서는 순간 걷기 시작한다. 발은 모든 땅과 안착되기를 열망하고 시선은 하늘 끝까지 가닿고 싶기 때문이다.
‘슈돌‘의 승재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대성통곡한다…교감이 아닌 분별, 공감이 아닌 대립이 더 우세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분별과 대립이 강화될수록 몸은 뻣뻣해진다…예수, 니체, 이탁오 등 동서양의 현자들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라고 외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동심설!)
글쓰기의 원리도 그러하다. 사물을 ’처음처럼’ 만나고, 매 순간 차이를 발명해 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동력이다. 인류가 처음 천지 ‘사이에‘ 우뚝 섰던 태초의 신비로 돌아가는 길이자 갓난아기가 처음 세상과 만나는 그 순간을 일깨우는 길이기도 하다.
46 길을 찾으려면 지도가 있어야 한다. 앎이 바로 지도다….위험한 곳이라서 두려운 게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49 태초의 인류에게 소리는 늘 신성한 것이었다…경전에 담긴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성스러운 홀림”으로 경험되었다…
50 말의 신성함이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라면, 그 신성함을 잃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세상을 단절시킨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물건 등 모든 관계는 어그러지고 분열한다. 말 한마디에 타자를 파괴하고 자신을 무너뜨린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말은 디바(신)가 아니라 다이몬(악령)에 가깝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말을 줄이려 한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엔 더더욱 말이 사라지고 있다. 실어증의 일상화!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말의 신성함을 복원하는 일이다. 신성함이란 특별하고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적당한 때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가르침을 말하고, 계율을 말하고, 새길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고, 신중하고 이익을 가져오는 말을 때에 맞춰”하는 것이다. 왜? 그런 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어 주기 때문이다…모든 것이 존재의 깊은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을 할 것인가? 아닌가?‘ 혹은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다. 그 전에 말이란 본디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것이었음을. 그 고귀함이란 세상 모두를 연결해 주는 것이었음을 깊이 환기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인간, 사이, 하늘과 땅, 말을 통해 연결, 인간은 말이다-인문학의 핵심?! 결국 말로써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우주만물로 이어주고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말과 글..)
61 한 독자가 말했다. 책을 읽으면 물욕이 사라진다고. 그래서 곰곰이 살펴봤더니 모든 책이 욕망을 절제하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음을 알았다고. 그렇다! 그것이 책이다. 책을 읽었는데 성욕이 항진된다든가 남을 속이고 싶다든가 망상에 빠진다든가 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책이 아니다!
70 절망은 금물이다.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천지라는 텍스트를 내팽개친 덕분에 사람의 길이 너무 협소해졌다는 것, 그것만 ‘알면’ 된다, 여기서도 핵심은 아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러 왜 길이 막혔는지를 아는 것, 그러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린다. 아니,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처지인의 삼중주를 회복하는 것이 그것이다.
천지는 자신의 지혜를 책에 실었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서 책은 가장 소중하고 가장 위대했다…당연히 읽어라! 삶을 고귀하게 해주는 모든 행위는 단언컨대 책으로 연결된다…단언컨대 무지가 삶을 충만하게 하는 법은 없다.
75 신분제와 성차별. 이것이 거의 모든 문명의 구조적 패턴이다.(전쟁과 제국주의 시대의 당연한 귀결! 문명의 역설이자 야만성! 인문학과 문명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프랑스 혁명?! 정치혁명에서 기술혁명의 시대로…다시 정치혁명이 필요한 시대로…)
102 사제의 길이 없으면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인간성의 극치가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부모자식은 있어도 사제는 없습니다. 사제는 인간에게만 있는 관계입니다. 사제가 있기 때문에 인간성을 꽃피울 수 있고, 인간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이가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면 누구도 쾌락과 폭력, 소유와 약탈에 몰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이 곧 평화요 혁명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굳게 믿는다. 천하의 모든 이들이 책을 읽는다면 천하가 패평해질 것이라는 연암의 말을.
119 새로움, 자연스러움, 경이야말로 우리가 아기에게서 찬양하는 것이다.
122 혁명의 전략은 간단하다. 먼저 생명을 창조하는 것의 위대함을 자각할 것.(생각, 인식의 전환 자체가 바로 혁명이다!)
127 노후대책에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소유가 아니라 활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관계와 현장, 이 두 가지가 노후대책의 핵심이다.
129 서른두 살때 사업에 실패해 파산. 간신히 회생하지만 보잘것없는 무명인으로 지내던 중 쉰아홉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그것이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쓴 것은 쉰셋,…공자, 노자, 주자, 양명 등은 아예 나이를 연상하기도 어렵다. 왜 그런가? 지혜를 연마하는 글쓰기엔 나이 자체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134 웃음이야말로 삶의 척도구나! 그대 하루 종일 몇 번이나 웃는가? 혹은 남을 몇 번이나 웃게 만드는가? 아기들은 그래서 존재 자체가 축복이다. 아기가 들어오는 순간 모두가 웃는다. 찡얼거려도 웃고, 옹알이를 해도 웃고, 낯가림을 해도, 모두를 웃게 만든다. 아마 인생에서 최고의 공덕을 쌓는 시간이 저때가 아닐까. 저 공덕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146 화이재지(化而裁之), 미언대의(微言大義)…이 두 문장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하고 무릎을 쳤다.
‘화이재지‘란 내용에서건 표현에서건 충분히 소화를 한 다음엔 과감하게 잘라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글쓰기의 핵심은 군더더기를 잘라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논리를 구축할 때 쓰는 방편이라면, 미언대의는 수사학과 관련된 비결이다. ’사소해 보이는 말들 속에 큰 뜻이 담겨 있다’는 의미다.
155 스티븐 호킹..빅뱅의 순간을 향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는 점점 더 작아지고 더 작아져 마침내는 하나의 점이 될 것이며, 우주 전체는 작고 작은 공간이 되어 사실상 무한히 작고 무한히 밀도가 높은 하나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여기에서도 시간 그 자체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아무리 거슬러올라가도 빅뱅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침내 원인이 없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원인이 존재할 시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것은 창조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162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시대…이제 혁명은 오직 기술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정신과 가치의 영역에선 더 이상 혁명은 가능하지 않은 건가?…정신이 기술혁명을 따라잡지 못할 때 그 결과는 늘 갈등과 충돌이었다(종교는 정신적 혁명?!)
175 그렇다. <주역>의 원리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간과 이. 간단하고 쉬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주의 법칙에 부합한다. 그래야 뭇생명을 낫고 기를 수 있다. 그래야 무수한 변이와 생성이 가능하다. 복잡하고 화려한 건 지엽말단이다.
241 <동의보감> 배우고서 처음에 느낀 건 우주가 순환하니까 역사도 순환을 할 텐데 자본주의는 왜 역사를 직선적으로 사유할까? 그런 생각을 했죠. 직선이라고 간주하니까 계속 고고고~하는 거죠. 그래서 저성장, 불황, 이런 걸 못 견디는 거죠. 발전에 대한 환상이 거기서 나오는 거구요. 농업문명시대에는 성장론이라는 게 없었겠죠? 우주가 봄-여름-가을-겨울로 순환하는데 역사가 어떻게 성장, 발전만 할 수 있겠나,…
246 세계를 보는 눈을 바꿔야 행동이 나오니까요. 감정이나 유행에 휩쓸려서 뭘 하게 되면 금방 식어 버려요. 오래갈 수가 없어요. 세상이든 인생이든 뭔가를 바꾸려면, 관점이나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해요…그러니까 인식을 바꾸는 거부터가 혁명인 거죠.
251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가장 일차적인 기준? 행동이죠.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체크해 보면 됩니다…욕망과 행동, 그게 나의 존재론..자기를 알고 싶다, 그러면 이걸 먼저 체크하시면 됩니다. 또 자기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이걸 바꾸면 돼요. 예를 들면, 클럽에 가다가 이젠 세미나를 한다, 이러면 일단 내 인생의 노선이 바뀐 거죠. 참 쉽죠. 근데, 왜 안 하지? 쉬운데 왜 안 할까요? 철학이 없기 때문이에요. 더 정확히는 철학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안식과 사유라는 정신활동을 하지 않으면 행동의 패턴이 절대 안 바뀝니다.(관행농? 유기농, 생태농을 위해선 먼저 철학이 필요한 이유!)
235 그럼 철학이란 무엇이냐? 내 욕망의 심연을 탐구해서 행동의 리듬을 바꾸는 것, 욕망과 행동의 조화로운 일치를 시도하는 것,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248 철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막 깝깝하고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연상하는데, 와~ 마르크스의 문체는 정말 싱싱하게 설아 숨쉬고 있었어요. 특히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이 그랬던 거 같아요.
249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부제는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정치경제학의 기준을 발전과 성장이 아닌 생명과 자연으로 이동하자는 취지가 담고 있죠
256 공동체…제도권 밖이니까 자유롭고 편안할 거 같지만 사실은 제도권보다 더 지지고 볶는 일이 날마다 일어납니다. 이걸 어떻게 조정하죠? 사랑으로? 희생으로? 다수결로? 천만에 말씀이죠. 그야말로 근원적인 차원에서 기준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동의할뿐더러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어요. 그럼 점에서 철학적 원리나 영적인 비전이 없이는 공동체 운영은 불가능합니다. 무슨 대단한 사업을 한다거나 가사적이고 물질적인 목표를 설정한 채 나아가는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존재의 심연을 계속 파들어 가면서 지금 하는 행동에 방향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건 부차적인 문제예요. 지금 하는 행동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게 중요해요.(비즈니스에선 도달 여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기승전결, 봄-여름-가을-겨울!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고, 이생에도 좋고 다음 생에도 좋고,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무엇이 있을까?’란 고미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며 찬찬히 읽어보게 된 글쓰기 강의록.
‘글을 쓴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생각해 보아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써야 한다!’는 그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 옵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쓴다는 건 지난 날을 되돌아 볼 수 있고, 나아가 성찰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