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
한글날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라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례본을 읽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원문이 한문이고, 한글 번역도 대개 전문가용 문체라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학과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도대체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꾼 책을 옆에 두고도 왜 가르치고, 배우려하지 않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49 제자해(글자 만든 풀이)

하늘과 땅 사이에 변하지 않는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 하나뿐이다…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 있는 것들이 음양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말소리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 것인데,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정음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애초부터 지혜를 굴리고 힘들여 찾은 것이 아니고, 단지 말소리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었을 뿐이다.

그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자연의 혼령과 신령스러운 정령과 함께 정음을 쓰지 않겠는가?
정음 스물여덟 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첫소리글자는 모두 열일곱 자다. 어금닛소리글자 ㄱ(기)는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떴다. 혓소리글자 ㄴ(니)는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떴다. 입술소리글자 ㅁ(미)는 입 모양을 본떴다. 잇소리글자 ㅅ(시)는 이 모양을 본떴다. 목구멍소리글자 ㅇ(이)는 목구멍 모양을 본떴다.
”해례란 훈민정음을 제작한 그분의 이론이다.“
#정음해례3ㄱ

물은 만물을 낳는 근원이요, 불은 만물을 이루어지게 하는 작용이므로 오행 가운데서 물•불이 으뜸이다.

목구멍은 소리가 나오는 문이요, 혀는 소리를 가려내는 악기이므로 오음 가운데서 목구멍소리와 혓소리가 으뜸이 된다.

목구멍은 안쪽에 있고 어금니는 그 앞에 있으므로 북쪽과 동쪽의 방위다. 혀와 이가 그다음에 있으니 남쪽과 서쪽의 방위다. 입술은 끝에 있으니, 오행의 흙이 일정한 방위가 없이 네 계절에 기대어 네 계절을 완성하게 함을 뜻한다. 이런즉 첫소리 속에도 자체의 음양오행과 방위의 수가 있는 것이다.

#정음해례4ㄴ
가운뎃소리글자는 모두 열한 자다.
•는 혀가 오그라드니 소리가 깊어서, 하늘이 자시(밤11시~오전1시)에서 열리는 것과 같다. 둥근 글꼴은 하늘을 본떴다.
#정음해례6ㄱ
가운뎃소리글자들은 하늘(•), 땅(ㅡ), 사람(ㅣ)을 본뜬 것을 가졌으니, 삼재(하늘•땅•사람) 이치가 갖추어졌다.
#정음해례7ㄴ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를 맞대어 말해 보자. 가운뎃소리의 음성과 양성은 하늘의 이치다. 첫소리의 단단함과 부드러움은 땅의 이치다. 가운뎃소리는 어떤 것은 깊고 어떤 것은 얕고, 어떤 것은 오므리고 어떤 것은 벌리니, 이런즉 음양이 나뉘고, 오행의 기운이 갖추어지니 하늘의 작용이다.
#정음해례14ㄴ
정음 글자는 다만 스물여덟 자이지만
심오하고 복잡한 걸 탐구하여 근본 깊이가 어떠한가를 밝혀낼 수 있네.
뜻은 멀되 말은 가까워 백성을 깨우치기 쉬으니
하늘이 주신 것이지 어찌 일찍이 슬기와 기교로 되었으리오.
#정음해례24ㄱ
우리말은 중국 말과 다 다르니
말소리는 있고 글자는 없어 글로 통하기 어려웠네.
하루아침에 신과 같은 솜씨로 정음을 지어내시니
우리 겨레 오랜 역사의 어둠을 비로소 밝혀 주셨네.
#정음해례27ㄴ
옛날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처음 만들어서 관청과 민가에서 지금도 쓰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이어서 매끄럽지도 아니하고 막혀서 답답하다. 이두 사용은 오로지 몹시 속되고 일정한 규범이 없을 뿐이니, 실제 언어 사용에서는 그 만분의 일도 소통하지 못한다.
계해년 겨울(1443년 12월)에 우리 임금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여, 간략하게 설명한 ‘예의‘를 들어 보여 주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훈민정음은 꼴을 본떠 만들어 글꼴은 옛 ’전서체‘와 닮았지만, 말소리에 따라 만들어 그 소리는 음률의 일곱 가락에도 들어맞는다. 하늘•땅•사람의 세 바탕 뜻과 음양 기운의 신묘함을 두루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정음해례28ㄱ
스물여덟 자로 끝없이 바꿀 수 있어, 간결하면서도 요점을 잘 드러내고, 정밀한 뜻을 담으면서도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이 다 거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한문을 풀이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소송 사건을 기록하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글자 소리로는 맑고 흐린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음악노래로는 노랫가락을 어울리게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는 글자가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어디서든 뜻을 두루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비록 바람 소리, 두루미 울음소리, 닭 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한글, 훈민정음, 너무도 익숙해져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소중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유산! 이제는 모두가 함께 읽고 나눠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의 국어 교실에서 배워야 할 한글에 관한 이야기가 어려운 한문으로 쓰여졌다는 이유로 외면 받아왔겠지만, 이제는 쉬운 우리글, 한글로 다시 씌여진 훈민정음 해례본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니,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