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최종규.

책 읽는 시골 아저씨? 지식을 쌓으려는 뜻이 아니라 살림을 지으려는 길에 동무로 삼을 책을 살펴서 읽습니다. 장서를 갖추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을 가꾸려는 마음에 벗님으로 여길 책을 헤아려서 읽습니다.
책숲집? 도서관!
17 우리 식구는 집 둘레에서 저절로 돋는 풀을 뜯어서 먹습니다. 십이월부터 이월까지 유채잎을 뜯어서 먹고, 이월부터 갈퀴덩굴을, 삼월부터 봄까치꽃•코딱지나물•곰밤부리•갓잎을, 사월부터 민들레•꽃마리•돌나물•솔(부추)•쑥•제비꽃•쇠별꽃•돌미나리•소리쟁이를 뜯습니다. 요즘에는 살갈퀴도 뜯습니다. 모두 맛나며 싱그러운 풀입니다.

86 김기찬…이 분이 낸 사진책. <골목안 풍경> <잃어버린 풍경> <역전 풍경> <개가 있는 따뜻한 풍경>..사진책에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구경하는 사진’은 아닙니다. 그럼 무슨 사진인가 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사진입니다…“내가 이 돌담 마을에 애정을 갖는 것은 우선 돌담은 성벽보다 소박하고 예쁘기 때문이다. 성벽은 우람하지만 강제로 쌓여졌고 돌담은 우직한 농부들이 밭을 일구다 주워 놓은 돌로 내 집, 내 터 둘레에 바람을 막고 오붓한 내 살림을 꾸미기 위해 쌓았기 때문이다…”…이른바 ‘멋진’ 사진이나 ‘잘 찍은’ 사진이나 ‘놀라운’ 사진을 찍지 않은 김기찬 님인데, 이분은 ‘수수한 이웃’이 그야말로 수수하게 삶을 짓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짓는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따가롭게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88 기계가 하는 가실(벼베기)에는 기곗소리만 있습니다…손으로 낫을 쥐어 가실을 한다면, 한쪽에서는 노래하는 소리가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꾼을 북돋우는 소리가 있을 테며, 또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있겠지요…(기계가) 품을 줄이는 만큼 우리한테 널널한 겨를이나 말미가 생길 듯하지만, 품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외려 더 바쁩니다…단추를 눌러 텔레비전을 켜거나 손전화를 열면 온갖 정보와 영상이 넘칩니다. 그렇지만 텔레비전이나 손전화를 앞에 두고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도시 이웃은 엄청난 문명과 기계와 건물과 정보에 휩싸여서 ‘말’을 잊습니다. 시골지기도 온갖 기계를 곁에 두고 이 일도 저 일도 기계에 맡기는 사이 어느새 ‘말’을 잃어요.
141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있고, 원치 않는 환경을 불러들이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말이나 행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148 해맑게 읽는 책
무엇이 남는가.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부자들에게 돈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성직자에게 직위를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빼 버리고 남는 그것이 바로 그다/ 그리하여 다시/ 나에게 영혼을 빼 보라/ 나에게 사랑을 빼 보라/ 나에게 정의를 빼 보라/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래도 태연히 내가 살아간다면/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171 포근한 보금자리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따스한 마을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부터 그리 살갑거나 따스하거나 사랑스럽지 않아요. 아이들은 대학입시에 발맞추어 시험공부를 할 뿐이에요…아이들은 대학교 아닌 대학원까지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와도 스스로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얼거리예요.
209 민방위훈련. 아무런 아름다움도 기쁨도 보람도 들려주지 못하는 ‘교육’은 우리한테 무엇일까요? 오늘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는 어른들(교사)은 참말 무엇을 말하는 셈일까요?
167 이 나라 거의 모든 사람이 흙에 기대어 흙을 누리며 살던 지난날에는, 어린이와 늙은이 모두 노래를 부르는 삶이었어요…시골이 차츰 줄고 서울이 커지고 도시가 늘어납니다. 젊은이가 몽땅 서울이나 도시로 빠져나가고 시골에서 노래가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서울이나 도시에 노래가 흐르는가 하면, 사람들 스스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는 찾아볼 수 없어요.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는 이쁘장한 사람들 대중노래만 판쳐요.
211 책을 읽는 사람은 늘 읽습니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늘 안 읽습니다…‘책을 읽을 겨를’은 스스로 냅니다…바빠서 책을 못 읽지 않습니다…사랑을 하려는 사람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랑을 합니다…모든 일은 사랑입니다…그러니까 ‘책을 읽을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책에 사랑을 쏟을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254 책이 사람을 기다립니다. 읽어줄 사람을 기다립니다. 책은 우리를 부르지 않아요. 책은 우리 손이나 발을 잡아끌지 않아요. 책은 늘 얌전히 우리를 지켜볼 뿐입니다…우리가 발길을 멈추고 책을 손에 쥘 적에 책은 그예 온몸을 열어젖혀서 이녁한테 깃든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런데 책은 우리한테 제 이야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만큼 우리 나름대로 책에서 읽을 뿐이에요.
244 배우려 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합니다. 배우려 하면 배웁니다. 배우려 하지 않으면 눈을 뜨지 못합니다. 배우려 하면 눈을 뜹니다. 배우려 하지 않으면 마음을 열지 못하고, 배우려 하면 마음을 엽니다…배우려 하지 않는 몸짓일 적에는 몸이며 마음이 함께 굳으면서 즐거움이 없어요. 그러니 웃음이나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배우려 하는 몸짓일 적에는 몸이며 마음이 함께 가벼우면서 즐거움이 흐릅니다. 남이 나를 즐겁게 하지 않아요. 배우려 하는 몸짓일 적에 스스로 즐겁습니다. 그러니 이때는 웃음이나 노래가 저절로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