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41 “나는 편지말고 다른 글을 쓸 거야”
“그러니까 작가가 되겠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다르게 태어나는 것 같던데?”
“다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
“네가 새를 찍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구.“
43 이제야 문체가 정해진다. 단문. 아주 단조롭게. 지나간 시간은 현재형으로, 지금의 시간은 과거형으로. 사진 찍듯. 선명하게. 외딴방이 다시 닫히지 않게. 그때 땅바닥을 쳐다보며 훈련원 대문을 향해 걸어가던 큰오빠의 고독을 문체 속에 끌어올 것.
242 “그건 소설이에요!”
”…그냥 본 대로 그대로 쓰라고…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리얼리티를 요구하고 있다고는 생각 마라. 무슨 말인지 알지?“….내 아무리 집착해도 소설은 삶의 자취를 따라갈 뿐이라는, 글쓰기로써는 삶을 앞서나갈 수도, 아니 삶과 나란히 걸어갈 수조차 없다는 내 빠른 체념을 그는 지적하고 있었다. 체념의 자리를 메워주던 장식과 연출과 과장들을.
전화를 끊고 저녁 반찬용으로 시금치를 삶았다. 싱싱한 시금치. 삶아지면서 시금치의 빛깔이 바래지 말라고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집어넣었다. 삶아진 시금치를 찬물에 두 번 헹궈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물기를 짰다. 그래, 나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것이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물기를 짰다, 라고밖에. 물기가 짜지기 전까지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시금치의 감촉이며 냄새며를 문장으로 표현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의 진실은 내가 표현해볼 도리가 없는 그 속에 잠겨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도. 시금치의 푸르스름한 빛깔이 성긴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253 “광주는 완전히 폐쇄됐어. 피바다야. 들어가지고 나오지도 못하게 해.”
“서울은 어쩌면 이렇게 조용하니.”
377 연일 비가 내리는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불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봤다.
385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되거든, 우리들 얘기도 쓰렴.“
389 어떤 일을 글로 옮기다 보면 많은 부분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을 드러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들이 간략하게 축소되어버리는가 하면 어렴풋했던 부분들이 방대해지고 길어진다. 내가 쓰는 글인데도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끊임없이 솟아오르거나 끊임없이 사라져버리는 순간들 때문에. 그래도 이제부터는 어떤 얘기를 하든 그 얘기가 오로지 나 자신만을 향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417 어린애의 모든 움직거림은 연민과 애정을 듬뿍 불러일으킨다. 부드러운 엉덩이, 반짝이는 눈동자, 앙증맞은 손가락, 그 유연함이 어린애의 생존방식 같다. 힘 있는 자로 하여금 지킬 수밖에 없게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 그 앤…가꾸지 않은 것, 움직이는 것들에게만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