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459쪽

앞을 못 보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책 읽어 주는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더 분명하게 들으려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이들 모두가 독서가다. 그들의 몸짓, 기술, 독서를 통해 얻는 기쁨과 책임감과 지식은 나의 그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나는 외롭지 않다.
가장 호적하고 안전한 독서 공간이 되어 중 곳은 바로 나의 침대였다. 그때 내가 외로움을 느꼈다는 기억은 전혀 없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도 책에서 읽던 모험이나 대화에 비해 그 아이들의 놀이나 대화가 형편없이 재미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종종 그는 우리가 읽던 책의 맨 뒷부분 백지장에 뭔가를 적도록 지시했다…책에 대해 논평하는 습관은 그 이후 그대로 나의 것이 되었다.
독서는 누적이어서 등비 급수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나는 재빨리 깨달았다.
전체주의 통치 집단은 국민들에게 사고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책을 금지시키고, 위협하고, 검열한다…그런 상황에서 독서가들은 오로지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글자로 쓰여진 텍스트는 지금 눈앞에 없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할말을 언젠가는 발음할 수 있도록 종이에 쓴 대화였다.
167 근로자 중에서 한 사람을 책 읽는 사람으로, 다시말해 공식적인 독사로 선택하고 다른 근로자들은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그의 노고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이런 공동 독서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는지 매우 짧은 시간에 ‘체제 전복 행위’라는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에서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181 ‘병’을 치유한 일화. “나는 마무리는 위해 기꺼이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이 되었다….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마누라가 자신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내가 방금 들려 주었던 이야기를 되풀이한다는 사실인데. 그런 식의 대화가 치료 효과를 배가했다. 그때까지 나는 소설에 대해서는 늘상 시시한 작품이라고 떠벌렸지만 마침내 소설도 망상을 치유하는 데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82 (기억과 기록의 차이)우리가 마음에 새기는 이미지가 제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그것들은 우리를 악용하고 속이려 드는 과거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어쩌다가 생각하는 바를 글로 남기게 되면 훗날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영원 같은 시간들 속으로,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그 사건들을 헤집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383 (번역가 릴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니면서도, 바로 그 언어로 시까지 창작할 수 있을 만큼 유창했던 외국어로 씌여진 텍스트를 해독하면서, 그는 감각까지 읽고 있었다.(서삼독, 저자를 읽어라)
384 릴케는 또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번역은 이해의 최고 경지에서 이뤄지는 행위이다. 릴케는 번역을 목적으로 책을 읽는 독자야말로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문학적 의미까지도 캐내는, 질문과 대답의 ‘가장 순수한 행위’에 몰두하는 사람으로 보았다.
385 모든 독서가들과 마찬가지로 릴케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라베가 펜으로 옮긴 단어에서 릴케가 캐낼 수 있었던 것이라곤 그 자신의 고독이 전부였다.
387 라베는 뛰어난 류트 연주자로서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어려운 음악 용어를 동원하고 있다…이를 이해하기 위해 현대의 독자들은 라베에게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통했던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하며, 단순히 당시의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라베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 물론 이런 노력도 라베의 청중이 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녀의 시가 의도했던 독자는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릴케는 읽는다.
397 (제임스 왕 번역 성경)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제임스 왕의 번역자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번역, 그것은 창문을 열어젖히고 빛을 들이는 것이요,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먹게 하는 일이요, 장막을 걷고 가장 성스런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요, 우물 뚜껑을 열고 물을 얻게 하는 일이다.”

404 (금지된 책 읽기) 남부 전역에서 노예가 다른 노예에게 글을 쓰는 것을 가르치려다 들키면 플랜테이션 소유자들에게 교수형을 당하는 게 보통이었다…노예 소유자들은 문자의 힘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글 읽기야말로 처음 몇 단어만 알면 금방 맞서기 어려운 힘이 된다는 사실을 그 어느 독서가들보다 잘 알고 있었다…더욱 중요한 점은 독서가는 그 문장을 반추하고 그 문장에 따라서 행동하고 그 문장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다…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독재자들이 잘 알고 있었다시피 대중은 문맹일 때 가장 다스리기 쉬운 집단으로 남는다. 책 읽기 기술의 경우 한 번 익혔다 하면 절대로 원위치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차선책은 읽기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창조한 다른 어떤 물건들과는 달리 책은 맹독으로 작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