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최인호.

말없음으로써 말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 선이고, 말로써 말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 교이다.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교법이다.법은 비록 한 맛이라도 뜻은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멀리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선과 교의 두 길을 가려놓은 것이다.

부처의 말은 내 마음에 전하여졌다 하더라도 부처의 마음은 내 마음에 아직 전하여지지 않았음이다.
“본마음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법을 배워도 유익할 것이 없느니라….” #견성
무엇인가를 목표로 하여 구하려고 하면 그 순간에 길을 벗어나 버린다…만일 참으로 목표하는 일이 없는 ‘길 없는 길’에 도달한다면 마침 허공과 같이 말끔하게 공한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물질과, 탐욕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물질과 욕망의 대리인생을 사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남의 일생을 대신 살아 주고 있는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온갖 현묘한 말재주를 다 부려도 터럭 하나를 허공에 날린 것 같고 세상의 온갖 재간 다 부려도 한 방울 물을 바다에 던진 것 같다.” #선화 #덕산방
지금까지 선종에서는 따로 사찰을 갖지 않고 율종 절에 의지하여 별채를 세우고 거처하곤 하였는데 백장 스님에 이르러 비로소 선찰을 독립시켜 세웠으며 법당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았다…그러나 무엇보다 백장이 확립한 선원제도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노동과 경작의 의무’에 관한 규정이었다. 지금껏 승려들은 전혀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신도들의 시주나 걸식에만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백장은 이러한 행위를 기생충의 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승려들이 낫과 호미를 들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밭을 갈아 자신의 노동력으로 살아가도록 하였다. #백장

세속과 청산 그 어디가 옳은가
봄볕 있는 곳에 꽃 피지 않은 곳이 없구나. #경허 #무이당

갱진일보.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 발자국 나아간다.
“옛 어른들이 말하기를 백 척이나 높은 작대기에 올라가서 능히 앉을 수 있는 사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아직 진리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참 진에 이르기 위해서는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걸어 보라. 그렇게 되면 시방세계의 모든 진리를 보게 되리라. #갱진일보 #거문고의비밀
‘나귀의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의 일이 닥쳐왔도다’
살고 죽는 문제 하나 해결할 줄 모르면서 남을 가르치는 돌중 노릇이나 하고 있다니 교리문자가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나는 모든 문자를 버리고 생사를 영단하는 구도의 길로 정진하리라.
갖가지 다른 이름을 여기에 모두 다 기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마음을 통달하면 모든 이름을 다 알 수가 있고, 참마음에 어두우면 그 어떤 이름에도 모두 다 막히게 될 것이다. #진심직설 #보조 #지눌
“그대가 얻은 바를 읊은 노래가 있는가, 있다면 한 수 읊어 보기 바라네.”
내가 머무르는 이 암자 나도 몰라라
깊고도 총총하나 막힘이 없네
하늘과 땅이 꼭 맞아 앞뒤가 없고
동서남북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네.
주루옥전 좋은 집도 견줄 수 없고
소림굴의 높은 풍규 본받지 않아도
팔만사천 법문을 모두 부수어
구름 밖 저 청산이 마냥 푸르네.
산 위의 흰구름은 희고 또 흰데
산중의 옹달샘 물 졸졸 흐르네
뉘라서 흰구름을 볼 줄 아는가
개었다 비오다가 번개치는 것을
뉘라서 샘물 소리를 들을 줄 아는가
천 굽이 만 굽이를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을.
생각이 있기 전에 이미 그르쳤거니
다시 입을 열려 한다면 상처투성이
봄비와 가을 서리 몇 해나 지내었던가
부질없는 일인 것을 이제야 알겠네. #태고암가
예로부터 선의 삼매에 이르러..그 모든 행위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몸과 마음이 화두 하나로 순일하게 잡혀 있으면 전혀 엉뚱한 작략에도 단박에 깨우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 세계가 다 내 집이로구나. #경허 #오도가
사람들은 이 천지 사이에 무궁한 도가 있음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무궁한 무엇을 말해 보아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대소를 구별하려는 것은 아직 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곧 물량은 무궁하고 시간은 끝이 없으며 득실은 무상하고 기한은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장자 #추수
깨달음의 경지는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꽃은 그 꽃을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꽃을 보는 것과 꽃을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꽃을 설명으로 보여주거나 보려 하면, 설명하면 할수록 꽃의 실체와는 멀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성한 사람만이 실제의 성품을 보아 견성한 사람의 경지를 알아낼 수 있음이다. #선문답 #경허스님 #길없는길 #최인호 #아는자는말하지않고말하는자는알지못한다
여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과 여인에게 빠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파의소암 #경허스님
이심전심의 극치…만공이 원하였던 것은 수박을 먹기 위함이었지 매미를 잡아오기를 원함이 아니었다. 만공의 의중을 알 수 없었던 제자들은 ‘매미’라는 언구에 걸려들었을 뿐 만공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만공과 애제자 보월과의 얽힌 선화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모두 서로 말에만 얽매여 있을 뿐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우인임을 깨닫게 된다. #만공스님 #이심전심
나는 더 이상 차를 타고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듣기에는 산문에서부터 해인사에 이르는 길이 10여 리라 하였는데 이 비경을 차를 타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해인사가는길
애닯다.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 성품이 참 법인 줄을 모르고 있다. 법을 구하고자 하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고,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 #보조국사 #수심결 #한암
약산은 주위의 수죄들에게 문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불경을 보는 것을 엄격히 금하면서도 자신은 <법화경>, <화엄경>과 같은 경전들을 끊임없이 보고 있었다…“그러먼 저희들도 스님과 같이 불경을 눈앞에 놓고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안 된다. 나는 불경을 눈앞에 놓았을 뿐이지만 너희들은 눈앞에 놓으면 문자가 너희들을 보는 것은 어찌 막을 수가 있겠느냐.” #문자의노예 #약산 #선종
한 지팡이로 구름 위에 솟아 서너 걸음 걸어보니
푸른 산 흰 돌 사이마다 기이한 꽃들
만약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는 그릴 수 있겠지만
저 숲속에서 우는 새소리는 어찌할 것인가
산과 구름 함께 희니
구름과 산 모양 가려낼 수 없구나
구름은 흘러 돌아가고 산만 홀로 남았으니
아름다운 일만이천봉. #금강산 #경허스님
학문을 하면 날로 지식이 더해 가지만 도를 하면 날로 지식이 줄어든다. 이것이 줄고 줄어 마침내 무위에 이른다. 무위가 되면 하지 않은 일도 없게 되는 것이다. #도덕경 #무위
백문이불여일견. 선지식은 견성한 사람이니 견성하지 못했으면 선지식이라 할 수 없다…널리 배우고 아는 것이 많으면 오히려 자성이 어두워진다…부처의 마음을 보자 못해 부처를 이룰 수 없다면 저 8만 대장경은 모두 헛된 우상이 아닐 것인가. 그렇다면 저 모든 대장경을 불로 태워 없애야 한다. #선지식 #견성 #깨달음
마음은 형체가 없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고 인식할 수도 없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것이다. 마음은 어떠한 여래도 일찍이 본 일이 없고 지금도 보지 못하고 장차도 볼 수 없을 것이다…마음은 환상과 같아 허망한 분별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마음은 바람과 같아 멀리 가고 붙잡히지 않으며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멈추는 일 없이 나타나자마자 곧 사라진다. 마음은 등불의 꽃과 같아 인이 있어 연이 닿으면 불이 붙어 비춘다. 마음은 번개와 같아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순간에 소멸한다.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 잠시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움직인다…이제까지 부처님께서 우리들이 흔히 마음이라고 믿고 ㅆ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거짓마음에 대해 설법하셨습니다. #마음
걸림. 마음에 있어 걸림은 마음의 동맥경화를 초래한다. 흐르지 않고 괸 물이 썩어 버리듯 마음의 흐름을 방해하는 머무룸과 걸림은 마음을 썩게 하여 방일과 게으름, 그리고 집착을 초래한다. 마음의 장애물을 뛰어넘어야만 비로소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대자유인이 될 것이다….경허의 이러한 무애사상을 천년이나 앞서 몸소 실천해 보안,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성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원효. #무애 #무애행 #무애인 #원효
“구제받을 중생이 한 사람도 없어야 이를 일러 최상의 보리심이라 한다.”
원효의 이런 철저한 무애행을 본받은 사람이 바로 경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효 #무애행
뜻 맞는 세 사람이 백의 벗보다 훨씬 나으리라
우리 서로 마주앉아 술취해 노래를 부른들 누가 방해할 것인가
안회의 즐거움은 항상 가난함이었고
쓸데없는 걱정 또한 간절하나 노장인들 어떠리요…-김담여에게 화답함
시비를 말라 구별하지 말라
누가 옳고 그른가
모두가 꿈속의 일이로다누가 너이고 누가 나이더냐
평생에 탐욕과 어리석음 너와 나의 싸움뿐. – 경허법사영찬_만공스님
빈 거울에는 본래 거울이 없고
깨친 소는 일찍이 소가 아니다
거울도 없고 소도 아닌 곳곳 길머리에
살아있는 눈 자유로운 술 더불어 색이로다.
문수보살과 무착.
견성! 한평생을 함께 산 부부도 서로를 본 것은 아니다. 보는 것은 한순간이다. 찰나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한평생을 함께 지냈다 하더라도 둘은 다만 함께 살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밥을 제대로 본 사람은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잠도 점다운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며, 꽃도 있는 그대로의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놈아, 너무 정직하기만 한 것도 못쓰는 법이다. 정직한 것과 정직한 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나는 기쁘면 웃고, 화가 나면 펄펄 뛰고, 술을 보면 참을 수 없고, 고기를 보면 혀가 동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마음이 동한다. 내가 청정하다는 것과 네가 보기에 청청하게 보여야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 거룩함을 꾸미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거짓이다. 정직하게 보이기 위해 꾸미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도둑질인 것이다.
보왕삼매론.
2.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쓸하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10.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본분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에 통하는 곡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그래서 부처께서는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
경허 스님을 좇아 만나게 된 최인호 작가님의 ‘길 없는 길’, 길은 다시 원효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