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대담
일찍이 부처는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실체도 없는 ‘나’에 집착하면 항상 근심과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내가 있다면 내 것이 있을 것이고 내 것이 있다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와 내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너희 것이 아닌 나를 버려라. 그것을 버리면 영원한 평안을 느낄 것이다….

1천 회를 생각하면 숨 막혀서 못 써요. 침착하게 1회 1회 쓰다 보면 1천 회가 되는 거지요. 1회 쓸 때는 1회만 생각하고, 2회 쓸 때는 2회만 생각하고요….지금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버렸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산에 갑니다.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다면 10년이나 못 다니죠. #목적없음 #일상다반사
스님 말씀대로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30분만 달려가면 설악산 못잖은 멋진 산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나는 청계산 주지다. 청계산은 내 산이다 생각하며 산을 오르는데 참 행복합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글에 ‘별은 한낮에도 떠 있지만 강렬한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내용이 있지요. 밤이 되어야 별은 빛나듯이 물질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요즘 사람들은 행복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고 있어요. 행복과 쾌락은 전혀 다른 종류인데 착각을 하고 있지요. 진짜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소욕지족
인간관계의 기본은 신의와 예절이지요.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신의와 예절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가까울수록 예절을 차려야 하는데 서로 무례하고 예절이 생략되어 버렸기 때문에 공동체 유대에도 균열이 간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가족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밖에서는 소설가로 유명할지 몰라도 자식들에게 존경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가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른다는 거예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씁니까?(학교는 삶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저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나 자신이며 소중히 지녀야 할 것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소유, 내 편견, 내 지식, 내 위선…진짜 내가 아니라 나로 위장된, 본체가 아닌 나를 버려야 하지요…반면, 마지막까지 소중히 지녀야 할 것은 ‘진아’, 나의 진면목입니다.
제 집사람은 외출을 할 때나 집에 손님이 오면 화장부터 해야한다고 합니다…모든 사람이 남에게 보이는 자기 모습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보니 본래의 ‘나’가 상실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중국 선사 바보 스님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주인공아, 주인공아, 속지 마라, 속지 마라.”
우리나라의 교육은 한 사람의 ‘난사람’을 위한 교육입니다. 하지만 ‘된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 아닙니까?…1백 명 중의 한 사람을 난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99명이 들러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비인간적인 교육이 어디 있습니까?…된사람은 1백 명이 다 될 수 있거든요. 이게 교육의 철학이고요…그저 남을 짓밟고 뺏는 교육이 되어 버렸으니 무슨 교육 효과가 있고 스승에 대한 존경이 있겠습니까?
(소설)사실은 아니더라도 진실하면 됩니다. 사실과 진실은 조금 다르지요. 그런데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절절한 것입니다. 진실에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공감하는 것은 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고 자기들 일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 아니겠어요. 진실에는 메아리가 있어요. 역사와 예술 작품이 다른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창작 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입니다.
모든 글이 다 그렇지만, 소설의 경우도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닐 겁니다.
자에는 표준이 아니라 탄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글 쓸 때 볼펜도 사용하지 않는데, 볼펜은 빨리 나가기 때문에 생각이 함부로 손을 따라가거든요. 옛날엔 먹을 갈며 생각을 정리하고 한 획 한 획 붓을 놀리며 책임 있는 글들을 썼는데 요즘 사람들은 손가락이 빨라서 그런지 무책임한 글을 많이 씁니다.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늘 새롭게, 늘 똑같이‘? 농부가 되었든 대학 교수가 되었든 사람이란 탐구하는 노력이 끝나면 그때부터 늙음과 죽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