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박태원.한길사. 327쪽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기에 온갖 차별 현상들이 생겨나고,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토감과 고분이 별개의 것이 아니구나. 모든 세계가 오직 분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요, 모든 차별 현상들이 오직 마음 헤아림의 산물이로다. 마음의 분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이니, 어찌 마음 밖에서 따로 구하리.” #무차별지 #일체유심조

입으로만 전해지는 신비의 명산…올라본 사람들은 침이 마르게 찬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오르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산밑에서 서성이거나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원효의 언어…원효와 대화하는 일은 아직도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로 남아 있다. 한글로 번역된 원효의 저서을 읽는다 해도 원효와 대화하기는 어렵다. 원효가 구사하는 언어를 다루는 전문 소양을 지니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글로 대하는 원효의 언어도 해독하기 힘든 낯선 부호의 배열일 뿐이다…원효의 언어를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즐기는 생활 스포츠 같은 것이 될 수 있게, 널리 통용되는 언어에 담아 풀어내는 것은 학인들의 해묵은 과업이다. #원효가남긴보물창고열기 #고전읽기 #원효
원효는 어떤 사상가인가…원효가 만난 세상…인간은 싸운다…전쟁은 인간이 인간을 향해 세우는 거대한 절망의 벽이다. 무한히 부풀려진 관념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간은 필요한 정치를 고안해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분의 차별화 전략이다…발달한 지능으로 형성하는 문화와 문명들이, 무한히 부풀려진 욕망의 배타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될 때, 인간이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생태 체계는 인간을 부담스러워하고…인간에게 전하는 생태적 요구와 경고를 읽어낸다…인류 문명의 유사한 정황에서 등장한 부처와 노자, 장자가 그들이다. 그들은, 근거없이 강화된 인간의 허구적 ‘자아 관념’과 그에 의거하여 왜곡되고 부풀려진 욕망을 통렬하게 들추어낸다…그로부터 약 1200년이 지난 한반도. ‘나’ ‘나의 것’에 관한 존재 환각과 왜곡되고 부풀려진 욕망은 한반도의 인간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원효가 대면해야 했던 세상은 또한 전쟁의 세월이었다…환각적 무지와 왜곡된 욕망이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던 시대였다…당시 신라의 청년들은 분열된 시대에 대한 정치/군사적 해법에 골몰했다…그러나 정치적 해법이 추구하는 통합은 승패를 가르는 독점적 통합이어서 배제와 정복의 폭력성을 안고 있다. 이 본질적 한계를 인지하는 철학적 영성은 정치적 해법에 만족할 수가 없다. 존재들이 깊이 화해할 수 있는 궁극적인 해법으로 시선을 두게 된다. 원효는 그 차원 높은 해법을 불교라는 지혜 속에서 확보하여 열정적으로 실천한 인간이었다. #화엄 #사상가원효 #원효는어떤사상가인가

원효와 의상. 무덤 속 해골 물…이 때 원효는 ‘모든 존재와 일이 결국 마음의 구성이다’라는 도리를 직접 확연하게 깨쳤다고 한다…더 이상 밖으로 구할 필요가 없었기에 원효는 발길을 돌렸고, 의상은 원효와 헤어져 홀로 유학길에 오른다. #원효와의상 #해골물깨달음
타향살이 힘겨움을 초래하는 무지의 내용은 무엇일까?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그 핵심이다…변화와 관계 이면에 불변의 실체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근거 없는 망상이다. 이 착각과 망상이 생명으로 하여금 ‘고향을 망각한 타향살이 힘든 존재(중생)’로 전락케 한다. #존재고향 #존재타향 #실체관념
원효가 겨낭하여 성취하고 실천한 일심의 지평은, 실체 관념이라는 무지가 제거되어 실체 관념이 구축했던 허구들이 해체된 세상이다.
부당한 세상…원효는 아수라장에 끼어들어 승자가 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다.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보고 풀어가는 길을 모색했다…그리하여 마음의 비밀을 풀어주는 부처의 지혜를 치열하게 탐구했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다…억지로나마 ‘하나가 된 마음(일심)’이라 불러보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대승기신론>이 설하는 일심의 경지가 그것이었다. #일심 #대승기신론
“전날 모르고 잘 때는 편했는데, 무덤인 줄 알고 나니 꿈자리가 사납도다. 이 무슨 도리인고.” #화엄연기
20세기의 인류를 절망의 나락에 빠뜨린 것은 배타적 이데올로기 쟁론의 야만적인 얼굴이었고, 지금도 개인의 일상과 시대를 신음케 하고 있는 것은 편견과 선입견과 무지에 물든 갖가지 상호 부정적 쟁론들이다. #인간은다툰다 #화쟁
쟁론은 ‘언어에 의한 다툼’이다. 그리고 그 언어적 다툼을 치유하려는 것이 원효의 화쟁 사상이다. #원효 #화쟁사상
인간은 다툰다. 그 다툼은 ‘언어적’이다…다투는 수단이 언어에 국한된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곧 인간 존재라고 할 정도로 언어와 인간 존재의 모든 면모가 마치 한 몸처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인간은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언어에 담아 다투는 특이한 생명체다.
불교의 무아 사상은, 언어란 그에 해당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일상 용법에 불과하다는 점을 해명하고 있으며, 깨달은 자/해탈한 자는 언어 환각에 지배되는 희론에 물들지 않게 된 자이기도 하다. #언어환각 #희론분열 #무아 #언어#깨달음
집착이나 자만심, 독점적 승부욕, 배타적 독선…모든 부처님들은 번뇌가 없으므로 단정하는 바가 없다. 이런 까닭에…여래는 다툼이 없다…언어 세계를 무아적으로 이해/경험하여 희론에 빠져들지 않는 성자…‘나의 견해’에 집착하게 하여 배타적 쟁론 태도를 초래하는 것이 희론…따라서 희론의 극복은 화쟁의 핵심 과제가 된다. #화쟁 #희론 #번뇌가없으면단정하는바가없다 #집착

만일 고정된 집착을 아니하면 두 사람의 주장이 모두 맞는다….집착을 떠나 말하면 합당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집착하는 자는 말대로만 받아들여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집착 #희론 #화쟁 #언어의방편적성격 #무아
진경 vs 위경? 계시종교가 아닌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에서는, 부처에 의해 확인되고 제시된 깨달음의 경지와 그 경지에 이르는 길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 누구의 체험이나 가르침, 주장이라도 모두 ‘깨달음의 성전’(불경)에 올리는 것이 허용된다…대장경이라는 불교 문헌 체계는 계시종교의 성전처럼 그 어떤 변화도 용납할 수 없는 ‘닫혀 있는 완결형’이 아니라, 검증에 열려 있는 깨달음의 개방성으로 인해 모든 사람의 참여를 허용하는 ‘열려 있는 진행형’인 것이다. 역사를 통해 대장경의 양적 증대가 꾸준히 진행되고 불교계가 그러한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강삼매경 #진경위경 #열린경전 #대장경
언제부터 오염되기 시작한 것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인간이 자랑하는 고도의 언어와 사유 능력은 이미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개인적 고통과 집단적 재앙의 인위적 원천은 결국 탐욕/성냄/무지로 압축된다는 것이 부처 이래 불교의 일관된 통찰이다. #탐진치 #격노 #일미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