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331쪽

뜻은 맨 처음부터 있는 뜻이요, 삶은 나중 끝까지 있는 삶이다…네가 처음 속에 나중을 보며, 나중 속에 처음을 보고, 껍데기 속에 속을 읽으며, 속 속에 껍데기를 읽는다면, 알지 못해도 안 것이요, 풀지 않아도 푼 것이다…나더러 말이 곱다 밉다 말라. 글에 조리가 있느니 없느니 말라. 이 부조리를 깨치고, 이 짙은 어둠을 뚫으며, 이 수수께끼를 풀 때까지 나는 미친듯이 아우성을 치며 회오리바람을 돌지 않을 수 없느니라. #부조리 #말끄트머리
나는 대학을 다녀보지 못했다…이 20세기에 대학을 못 가본 것은 확실히 부끄러움이요, 불행이다…이제 사는 형편이 허락이 아니 되는 점도 있으나, 그보다도 대학이 어디 있느냐? 저기 다방과, 댄스홀과 미장원과, 사창 하숙과 그 수를 다투려는 듯 수두룩이 있는 것이 어디 대학이더냐? 장삿집이요, 도둑의 둥지요, 갈보굴이지…그러니 늙은이 대학 하나 있기를 바란단 말이다…이 다음에 지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일 있다면 가장 심한 형벌을 받을 놈은, 나무 작두에 모가지를 잘리울 놈은 고등학교•대학교를 자꾸 세우고 저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준 학자들일 것이다…이 나라가 잘못된 것은, 늙어서 욕심 버리고 앉아 얼굴로 다스렸을 늙은 것들은 철없이 해먹고 더 해먹겠다고 서둘고, 일을 시켰어야 할 젊은이는 자루 없는 칼 같은 잘못된 지식만 받았기 때문이다.
늙은이를 대학으로 보내고 젊은이를 일터로 보내라. #한배움 #자루없는칼 #대학 #학교교육
“너도 사범(死凡)이 됐니?”
거기는 생명이 사는 곳이 아니라 죽는 것이요. 위대해지는 곳이 아니라 못난이가 돼버리는 곳이다. 같은 지식도 거기서는 벌써 팔아먹을 것을 생각하고 배우는데 고린내 나는 것이 있다…사범이 정말 사범이 되려면 사범(죽음의본)이어야 할 것이다. 죽기를 바로 죽도록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이 정말 배울 것은 사는 법이 아니고 죽는 법이다. #궁감투 #훈장 #사범 #참교육
모든 것을 보이는 것으로만 하는 세속 사람은 거기를 옥이라 하지만, 뵈는 것보다 뵈지 않는 뜻을 말하는 사람은 거기를 대학이라 한다. 이 세상 대학에서는 지식은 점점 늘어가나 사람의 참 속 바탈은 갈수록 줄고 병신이 되고 없어지는 곳이요, 감옥에서는 집을 빼앗기고 살이 빠지고 징역살이를 하나 속은 깊어가고 넓어가고 높아가는 곳이다. 다만, 생각이 있는 자에게는 말이다.
생각이 있으면 잃음이 얻음이요 생각이 없으면 얻음이 잃음인데, 감옥이란 곳은 생각을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대학이다. #인생대학#감옥#생각하는백성이라야산다
인간의 심정에 비친 사실로 볼 때 법은 당파의 형태를 쓰는 인간의 이기심이 제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을 없애려 할 때 제 속 깊은 데서 항의하는 양심을 속이고 누르기 위해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은 함정일 뿐이다. 인정으로 사는 가정에는 법이 없다….폭력주의를 제하라! 그러기 전엔 다 거짓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것을 인생대학에서 배웠다.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도 석가의 가르침도 거기 거기 전엔 몰랐다. 아노라 했어도 몰랐다. #감옥 #법 #정치범 #인정 #문명의감옥
순전히 정치가의 책임이다. 민중아, 너처럼 착한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나 너처럼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느냐?
역사 있은 이래 정치한다는 놈들이 갖은 죄악을 다하고는 국민이란 이름 아래, 너의 등에 다 떠넘겼지…민중은 어디서나 같은 단순한 인간들이다. 미운 것은 민중이 아니고, 그들을 속이고 선동하는, 거기도 있고 여기도 있는 지배주의자•폭력주의자들이다. #정치가 #민중
대학은 한 배움이다. ‘한’은 하나란 말이요, 또 크다는 말이다…하나란 하나, 둘의 하나가 아니다. 그 이상, 그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다. 이른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는 참이다…대학을 서양말로는 유니버시티라 하는데, 그것은 라틴말의 우니(Uni), 곧 하나라는 데서 나온 것이다. 우주를 유니버스라 하는데, 그것도 천지만물이 여러 가지지만 그것이 통일이 되어 산 하나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대학을 유니버시티라 하는 것은 각 부분이 제각기 전문을 하나 그것이 모두 서로 유기적인 통일을 하여 하나가 되도록 하는 곳이란 뜻에서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대학이란 뜻과 서로 통하는 말이다. 동서양을 물을 것 없이 대학의 본뜻은 바탈을 찾는 데 있다.
오늘날 대학 교육이 그러냐 하면 아니다. 점점 갈라져나가 서로 끄트머리로 나가는 것이 대학 교육이다. 지금은 제 전문하는 부분 이외에 대하여는 서로 무식쟁이다. 부분적으로 발달하는 것은 좋으나 전체로서의 종합, 하나됨은 잃었다. 지금 대학 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이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지혜를 조금도 갖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수한 부분적인 지식은 있건만 지혜는 없다. 이것은 본라 희랍의 학문이 그런데다가 문예부
흥 이래 발달하는 과학의 영향이 더해서 점점 그렇게 된 것이다…그러나 현상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늘어도 그것이 현상을 다스릴 수는 없다. 뵈는 것은 뵈지 않는 것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동양의 생각은 그 뵈는 것보다 뵈지 않는 것을 더 문제삼았다. 그러므로 과학은 발달 못하고 철학•종교가 그 문화의 주장이 됐다. 과학이 발달 못하고 현상의 세계를 경시한 죄로는 서구 나라의 식민지가 돼버리는 불행을 당했지만,…참 정신을 찾지 못하는 한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죽음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정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을 찾으면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모든 것이 정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배움 #대학 #지각과잉지혜부족시대 #정신 #과학 #현상 #동서양의차이
마음을 열면 하늘이 열린다.
하늘이 열리면 땅이 열린다. #38선을넘나들어
어느 웅변가도 듣는 자의 속에 이미 있는 소리 이외의 웅변을 하는 재주는 없다. #종살이에서올라와서
3•1운동은 그 잠자던 나라의 소리였다. 어째 그 나라가 깼나? 씨알의 가슴이 열렸기 때문이다. 왜 열렸나? 자기네를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민중이 제 대접을 받아본 것은 3•1운동이 처음이다… 갑신정변•갑오경장이 다 실패한 것은 민중이 부르짖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다. 힘은 민에 있는데 그 운동을 꾸미던 사람들은 아직 옛날 봉건식의 머리였다…정치가 겸손해서 민중에까지 내려가지 않고는 일은 못한다. #31운동 #민중 #겸손한정치
장담은 못하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걸이는 놓지 않으련다. 3•1운동이 몰아쳐 내세워준 이 걸음 늦추지 않을 것이다. 부자는 뚱뚱해 앉았을지 모르고 세력 있는 자는 자가용 안에서 파크서처럼 드러누워 갈는지 몰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걸으련다…영원히 영원히 빠르나 급하지는 않게, 뚜벅뚜벅 걸으나 느리지는 않게, 길이길이 걸었으면!
나는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는 사람끼리 동탯국을 어떻게 끌여먹느냐 하는 것 때문에 싸우다가 간수한테 매를 맞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하나는 함경도 사람인데, 서울 놈들 동태를 밸도 따지 않고 그냥 끓여 먹더라 흉보는 거요, 또 하나는 서울 친군데, 함경도 놈들 몰라 그러지 동태는 그냥 끓여야 제 맛이 나는데 그걸 모른다고 깔보는 것이다. 감옥에서 콩밥에 소금국도 없어 못 먹는 놈들에게,…아무 소용없는 문제련만 그래도 제가 옳다, 제 고장이 좋다 내세우려다가 매를 맞고야 말았다. 나라를 망치는 당파 싸움이나 세계를 어지럽게 하는 전쟁은 이보다 나을까? 그것도 정말 건덕지를 따지고 올라가면 동태 밸인 경우가 많다. #동태밸싸움 #당파싸움 #전쟁
요새 사람에게서 고향을 빼앗아버린 것은 이 편리주의다. 편하게 위해 자동차를 타야 하고 자동차를 들여오기 위해 큰길을 내야 하고 큰길을 내기 위해서라면 선조가 심은 오래 늙은 나무도 찍어내야 하고 그들의 뼈가 묻힌 뒷산도 허리를 잘라야 하며, 돈을 벌려면 사업을 해야 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가재도 팔아넣고 금강산에도 광산을 파고 역사적 유물도 불도저로 밀어버려야 한다. 지금은 부산 가서 봐도 그 거리요 서울 와서 봐도 그 거리면, 대구 가서 먹어도 그 요리요 전주 가서 먹어도 그 요리다. 그래서 편한 점도 있겠지만, ㄷ그 대신 인간이 옅어져버린다. #고향이사라지는이유 #편리주의
“가르치지 않고 싸우는 것은 백성을 버리는 것” #공자 #뜻 #정신 #정치
나는 도산 선생의 모든 말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민족은 참 좋은 민족인데”하고 마지막까지 낙망을 아니한 그것이다…그는 지금 와도 “백성은 참 좋은 백성인데…” 할 것이다. 그렇다, 백성이야 참 좋은 백성이지, 정치가 나빠 그렇지. 그러나 참 나쁜 백성 아닌가. 그렇게 좋은 제 바탕을 찾지 못하고 그 정치에 늘 맡겨두니 그렇게 못난 백성이 어디 있을까? #도산안창호선생님 #깨어있는백성이이라야나라가산다 #참여정치
민중의 이름이 뭔가? ‘비겁’ 이것이 곧 그 이름이다. 민중처럼 비겁한 것이 어디 있나? 이날까지 역사는 비겁한 민중의 역사 아닌가? 일은 다른 데 있지 않고 그 비겁한 민중을 깨워 제 속에 있는 것을 찾아 용감하게 서도록 하는 데 있다.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할 일이 참 많지 않느냐? 남강이 만일 계셨다면 그저 있진 않을 거다!
우리를 정말 믿어주는 이를 보고 싶지 않느냐? 도산이 만일 계신다면 이렇지는 않을 거다!
“아니” 하는 사람이, 죽을 각오를 하고 그러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조 선생이 만일 오늘 계신다면 입을 닫고 있진 않을 거다! #민중#비겁#남강이승훈선생#도산안창호#고당조만식선생
세상에 어쩌면 그런 것들이 있습니까?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났다고 다 한국놈도 아니오, 이충무 소리를 한다고 더 이 충무도 아닙니다. #친일파
3•1운동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사람질을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깊은 깨달음은 그만두고라도, 인생과 역사에 대한 방향감각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내 실감에서 하는 말입니다. 나만 아니라 그 시대에 젊은이였던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믿습니다…시대의 정신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31운동 #시대정신
그러고 보면 참은 전체에만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지혜은 나를 부정하는 데 있습니다. #참은하나 #무분별지
죄 있는 것은…이른바 정치가라는 도둑들의 손에서 노는 국가라는 것입니다…권력을 숭배시키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힘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차마 못할 일이건만 정치는 그것을 했습니다. #내가겪은관동대지진 #정치주의 #국가권력 #권력 #근대국가 #폭력주의
땅이 흔들린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흔들린 인간성이 정말 놀랍습니다. #내가겪은관동대지진 #인간성 #민중
“잊지는 못하지만 용서는 한다”…그렇기 때문에 정말은 지나간 다음에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잊는 것이요 또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잊어버려야 하고 잊어버려서는 안 되기도 합니다…그러나 정말 또 다 잊어버렸다면 사람은 못 됐을 것입니다. #용서#과거사청산#역사청산#친일청산
일본은 과연 죄를 뉘우쳤을까…무죄한 조센징 왜 죽였습니까? 당시에 일어나던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킬까 두려워서 민심 수습책으로 한 것입니다.
사건을 일으킨 원흉은 누구냐?…일본인을 누가 그렇게 미치게 했던가, 지진? 아닙니다. 불? 아닙니다. 그들은 왜 그랬던가. 나라를 건지기 위해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란 무엇입니까…문제는 국가주의입니다…혁명으로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는 것은 정권입니다. 대일본제국은 전체 일본이 아닙니다. 어떤 수의 사람의 것입니다. 국가란 언제나 그렇습니다. 모든 도둑의 근거는 이 이른바 국가라는 것입니다. 국가라는 이름하에 나라를 도둑해 가지고 있는 소수의 지배자…그것이 제 권좌를 뺏길까봐 한 흉계가 조선인 학살입니다. #내가겪은관동대지진#조선인학살#역사청산#국가주의#도둑#정치권력
다같이 반성할 것은 우리를 속여 미치게 했던 이 원흉을 잡아내는 일입니다.
원흉은 이제는 이미 잡혔습니다. 그러나 그 잔당은 아직 남았고 안정이 아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일본에만 있는 것 아닙니다. #친일청산
#내가겪은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역사청산 #국가주의 #도둑 #정치권력
살문이 육중한 소리로 내 뒤에 덜컥 하고 닫히고 김방에 주저앉으니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해방이 됐다기에 이제 밝은 날이 오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내게 잘못이 없으니 마음은 평안하고 몸도 감옥살이는 여러 번 해봤으니 별로 겁날 것이 없었다. 이것이 나의 다섯 번째의 감옥 길이다. #내가겪은신의주학생사건

함석헌 선생님의 삶과 시대에 대한 자전적 회고록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마주친 고난과 역경의 시대를 ‘뜻 하나로 한 평생을’ 살아가신 함석헌 선생님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 어떤 역사책보다도 생생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선생님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역사교과서이기도 합니다.
문명의 문법. 페르낭 브로델.
부조리한 교육 과정….우리의 젊은이들은 어떤 직업을 준비하든 그 시작을 앞둔 18세에 현 사회와 경제 문제, 세계의 거대한 문화적 갈등과 문명의 다원성에 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매일 진지한 기사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그들은 다양한 연령대에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가르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사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지적 야심만으로 교육 과정을 설계한 사람들이다. #교육정책 #역사교육 #페르낭브로델
‘문명이 문화를 파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혹은 기술이 인간의 존재를 파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인류에게 주어진 의무다.’ #문화와문명의차이 #문명의문법 #페르낭브로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