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장경덕.

다시 보는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상상력은 흔히 우리를 절대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데려다준다. 하지만 그것 없이 우리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다.-칼 세이건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비스킷에 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그는 의문을 품는다. “오후 한나절에 할 수 있는 일의 요소를 분리해 40년 동안 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으로 세분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주는지는 몰라도,…그 결과로 얻은 삶이 얼마나 의미 있게 느껴지는지 묻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알랭드보통#분업#전문화
모든 통치 구조는 오로지 그 아래서 살아가는 이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평가된다. 이것이 통치 구조의 유일한 용도이자 목적이다. #도덕감정론#정치경제학#정치의목적
애덤 스미스는 확실히 세속의 철학자였다.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 속에서 모두가 더 행복하게 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길로 안내하려 했다. #현실주의
무기가 된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의 지적 탐구는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이었다.그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으나 늘 평정을 잃지 않았다. 스미스는 혁명을 부르짖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의 부와 자유롭고 공정한 체제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조용한 혁명이었다.
애덤 스미스 문제. 애덤 스미스에 대한 해석은 특정 시간과 장소의 산물이다. 정치와 경제의 환경에 따라 지배적인 해석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사실 애덤 스미스는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의 아이디어와 권위가 무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었다. #마르크스#시카고학파
“…나는 그의 <국부론>이 <도덕감정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도와주는 손의 존재에 달려 있음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도덕감정론#국부론#보이지않는손#도와주는손
애덤 스미스는 어떻게 하면 국부를 가장 잘 창출할 수 있는지를 설파했다. 그런 스미스가 학생들에게 노예제가 풍요의 필요조건이라면 차라리 온 세상이 가난하기를 바라는 것이 낫겠다고 가르쳤다…스미스의 시대에는 대다수 사람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1750년대 후반에 이미 노예제를 비판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보다 한 세기 이상 앞섰다. #평등주의#노예제비판#자연적자유
인간의 본성과 도덕의 기초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철학은 오랫동안 국부의 본질에 관한 탐구에 가려져 있었다. 스미스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공감을 중시한다. 그리고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라는 개념으로 도덕적 판단의 원리를 밝힌다…스미스를 이기심과 탐욕의 변호인으로 보는 건 얼마나 큰 오해인가?
감정은 행동을 지시하고 지휘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덕성은 궁극적으로 그 감정에 달려 있다. #도덕감정론#공감#감정
공감은 상상을 통해 이뤄진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많이 느끼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적게 느끼며, 우리의 이기적인 성정을 억제하고 착한 성정을 베푸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완성하는 길이다. #공감#상상
가장 합리적으로 효용을 극대화하는 호모 에코노미크스는 사실 인간이 아니다…행동경제학자들이 실험으로 확인한 인간의 본성은 냉정하고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와는 거리가 멀다…손실을 보더라도 상대의 탐욕에 벌을 주려 한다. 공정성을 따지지 않는 이기적 유전자만 갖고 있다는 생각은 지난날의 편견이다…완벽하게 합리적인 경제 인간과는 거리가 먼 실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본 스미스는 오늘날 행동경제학자들의 아버지라고 할 만하다.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훗날의 주류 경제학자들의 패러다임과 어떻게 다를까? 첫째, 스미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상정하지 않았다…둘째, 스미스는 사람들을 독립적인 원자로 보지 않았다…셋째, 스미스는 추상적인 이론보다 현실적인 경험을 중시했으며, 완벽한 이상에 집착하기 보다는 실용적인 해법을 찾는 데 힘썼다. 완벽한 자유와 평등, 정의를 전제하지 않고도 번영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은 경제학이 정치적이고 규범적이며 도덕적 목적을 지닌다는 인간의 과학임을 분명히 일깨워준다. 그의 세계 어디에도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없다.
애덤 스미스의 이름으로 불평등을 합리화하려는 이가 많다. 하지만 스미스는 평등주의자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준다. 그는 보편적 풍요의 사회를 바란다. 누진세를 지지하고 상속세의 가치를 인정한다. 노동자의 편을 들고..부자와 지위 높은 이들을 추앙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멸시하는 풍조를 가장 보편적인 도덕적 타락으로 본다.
애덤 스미스는 “보편적 풍요”의 사회를 바랬다…스미스는 거대한 부를 쌓으라고 부추기지 않았다. 부를 독차지하려는 욕심은 비열하다고 보았다…우리가 모든 것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자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지주들의 비열한 좌우명인 것 같다.
우리의 중상주의 체제가 주로 정려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산업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산업은 너무 자주 무시되거나 억눌린다…소비는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적이며,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보살펴야 한다. 이 금언은 너무나 완벽하게 자명한 것이어서 그것을 증명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중상주의 체제에서는 소비자의 이익이 생산자의 이익에 거의 변합없이 희생되며,….영국에서 실제로 무역의 자유가 완전히 회복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터무니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중의 편견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있다. 개인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중상주의비판#소비#생산의목적
지난 3세기 동안 강대국의 부침을 연구한 하버드대학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랜즈는 이렇게 정리했다.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것은 자원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모험 정신과 경영 능력이다. #모험정신#벤처기업
행복은 판돈에 있지 않다…GDP가 모든 성취의 잣대가 될 수는 없다…케네디가 지적했듯이 이 지표는 “아수라장이 된 사고 현장의 구급차와 우리의 문을 잠그는 특수한 자물쇠와 그것들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감옥”은 포함하나 “우리 자녀들의 건강이나 교육의 질, 혹은 그들이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은 고려하지 않는다…GDP는 성장을 위해 희생한 가치들을 따지지 않는다. 미래 세대의 성장 잠재력을 얼마나 갉아먹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GDP#GHP#경제지표
국부는 환경이나 신성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국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라기보다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지고 살아간, 관념이 아닌 현실 속의 철학자 애덤스미스!
자본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 준 <국부론>만으로 애덤 스미스를 이기심과 탐욕의 변호인으로 보는 건 얼마나 큰 오해인가?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보편적 풍요’의 사회, 다함께 잘 사는 사회였다. 도덕감정! 얼핏 들으면 모순된 단어의 조합같지만 도덕의 실체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 있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위대한 고전을 남겨준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의 애덤 스미스를 온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