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 함세웅. 478쪽

해방에서 촛불까지 기억하고 기리고 소망하다
역사란 민족이 공유한 체험이자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태도는 모이고 쌓여서 얼이 됩니다. 역사는 개개인 삶의 공배수이며 동시에 공약수이기도 합니다. 물론 수학과는 달리 역사엔 늘 돌발변수가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입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하느님의 섭리라고 해석합니다.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기억의 열매이자 영혼을 앞당기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압축이 제게는 붓글씨입니다.
“신부님, 예쁜 글씨라뇨? 저는 살아 있는 글씨를 원합니다. 글씨에 뼈와 근육이 있고 신경이 통해 생명력이 넘쳐야 합니다.” 취미 삼아 붓글씨 한번 배워볼까 했던 저는 마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떨떨해하는 제게 이 박사는 “신부님, 글씨는 목숨 걸고 쓰는 겁니다”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소년의 영웅, 혹은 전쟁광 맥아더 장군.
어린 시절, 저의 영웅은 맥아더 장군입니다…“자네가 뭘 알아서? 그 전쟁만 아는 인간을… 세계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그 신부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분명하게 깨우쳤습니다. 가슴 속 영웅을 내치기 어려워서, 저는 그동안 미국과 맥아더를 따로따로 분리해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미국은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었고, 맥아더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맥아더는 패전국의 관리를 맡은 군인이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면 부인한 맥아더 포고령. 포고령 1조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정부의 모든 권한은 당분간 나의 관할하에 집행된다’입니다. 맞습니다. 미국이 아니라 ‘나의 관할하’입니다. 포고령을 여러 번 읽었지만, 그 어디에도 주둔군 혹은 해방할 약자 나라에 대한 존중은 없었습니다.
포고령 2조와 함께 친일파는 친미파로 신분 세탁. 이보다 더 뼈아픈 것은 포고령 2조입니다. ‘정부의 전 직원과 사용인 그리고 공공 사업 기관의 직원과 사용인 등은 추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기능과 의무 수행을 계속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해야 한다.’
언뜻 보면 그럴듯해서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 문장 속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습니다. 친일파가 성공적으로 친미 세력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입니다. 일제를 돕고 자국민을 수탈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쥔 친일 세력이 새로운 강자인 미국의 비호 아래 모든 것을 공고히 하였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득권층으로 군림하게 된 것입니다.
맥아더 포고령 이후, 한반도 상황을 누구는 미군정이라 하고 누구는 미식민지와 다를 바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주둔이냐 점령이냐’ 논쟁처럼,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 시절을 극복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우리는 분명히 큰 꿈을 꾸고 그 큰 꿈을 실현하도록 사고를 전환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라는 문익환 목사의 명언을 되새깁니다. 나눔이 바로 민주주의 실현이며, 일그러진 과거를 극복하는 것이 평화의 완결입니다.
4•3 제주항쟁. 비극은 덮는 것도 잊는 것도 아닌, 드러냄으로써 치유된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 종교의 계시이며 구원의 핵심입니다.
호찌민. 그의 검소하고 겸허한 삶이 오늘날 베트남의 부흥을 뒷받침했고 베트남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호찌민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정치 지도자는 이승만 대통령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미국에 피신해 있으면서, 자신을 왕족이라 사칭하고 그 소중한 독립 자금을 남용한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도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 익혔을 테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그의 행업을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오늘날도 존재하는 우의마의, 가짜 뉴스를 경계하라.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의마의 소동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얼굴을 하고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오히려 독재자일수록 민의를 강조합니다. 더군다나 최근의 변화된 미디어 지형은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어쩌면 진실과 거짓, 빛과 어둠을 가려내기가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거짓을 덮고, 빛이 어둠을 가리는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소의 뜻과 말의 뜻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늘 경계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유형의 ‘우의마의’인 온갖 가짜 뉴스를 잘 식별하고 타파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과 국가 공동체가 늘 진실과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좋은 구호는 시대 정신을 담고 있으며, 가슴을 뜨겁게 하고 동시에 행동을 촉구합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가 바로 자유당 이승만 독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고발이며 확실한 진단입니다.
우리는 ‘못살겠다‘보다는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불의로 판명 난 이승만 독재를 계승한 자들이 누구인지, 조봉암을 살해한 후예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무리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불법에 가담한 검찰과 법관들의 죄도 물어야 합니다.
경찰의 날은, 미 군정 잔재인 경무국 창설일이 아닌 박재표 순경이 부정선거 고발한 8월 27일이 되어야 한다.
박재표 순경은 자신의 직을 걸고 부정과 불의를 고발했습니다. 그는 직무유기죄로 구속되어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불의를 고발한 사람은 감옥에 가고, 불의의 장본인은 혜택을 누렸습니다…시대를 넘어서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대접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정에 항거해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분들을 외면한다면 이런 일은 늘 반복될 것입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업보는 우리에게 원죄나 다름없습니다. 불의한 과거를 끊어내지 못하고 부정을 청산하지 못한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뿌리 내린 땅에 선대의 피가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고, 후대를 위해 기꺼이 우리의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나무를 올곧게 가꾸는 방법입니다.
시간은 결코 망각의 과정이 아닙니다. 과거는 현존합니다. 미래는 선취해야 합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분칠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우리 옆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60년 전의 죄악을 끝까지 물어야 합니다. 60년 전의 행업을 칼같이 단죄해야 합니다. 또한 60년 전, 피의 희생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책무입니다.
한 줌 재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민주와 자유라는 토양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고 있습니다…영원히 살고자 하는 자, 기꺼이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룩한 불멸의 삶입니다.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저는 이거야말로 진정한 회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와 결별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사 그것이 썩어빠졌다 해도 그렇습니다. 이는 심장을 찢는 결단이며 내적 혁명입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개인과 공동체 모두 질적으로 확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입니다. 시대의 혁명은 이처럼 사람들의 내면적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시인 김수영은 무엇에 이토록 격분한 것일까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당시 신학생이던 저는 이 구호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지만, 감히 생각해 보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아니,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딴 세상 얘기처럼 들렸습니다. 시대의 엄청난 변혁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귀 막고 눈 감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념적으로는 불사조가 되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정작 행동은 아직도 스스로 불태우지도 못하고 하늘도 날지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5•16은 군사 반란이자 민족사의 치욕입니다.
4•19 불사조 정신을 총칼과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는 독재자 이승만의 후계자이고, 독재자 전두환의 선임자일 뿐입니다. 친일 잔재와 이승만 독재, 유신 독재의 청산이 우리 시대 성숙한 시민들이 해야 할 역사적 책무입니다. 지나간 과거사라고 해서 조금도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수식어 붙은 민주주의는 불순하다.
박정희는 자신에게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호가 ‘민족적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언제나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명분이나 목표 추구를 위해 민주주의를 제한하겠다는 공지입니다…저는 민주주의라는 단어 앞에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전제한 기득권자들의 속임수입니다.
우리는 ‘얼마를 줄 거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면 되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입니다.
역사는 잔인할 정도로 정확합니다. 존재했던 과거는 저절로 지워지지 않고, 모든 희망과 변화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제가 역사기도를 쓰면서 잘못된 과거의 청산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유신헌법이 알려주는 역사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친일 부역, 이승만 독재 정권의 잔재들이 박정힆유신체제의 모태가 되었고, 그것은 다시 전두환 군부 독재를 불러냈습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송건호 선생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면서 “모든 일의 시작은 청년이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청년, 학생이 살아나야 역사의 정통성이 바로 섭니다. 청년, 학생이 죄절하고 뒤로 물러앉은 세상에 희망은 없습니다. 청년, 학생들이 오늘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이 1948년 제정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국가보안법 역시 같은 해에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1948년 12월 1일, 이승만 정권은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합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1948년 10월 19일 발발한 이른바 여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주동자가 군인이라는 점에서 이승만 정권은 큰 위협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국가보안법의 뿌리가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이라는 데 있습니다. 주요 조항과 조문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이 자국민을 억압하는 데 쓰였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게다가 일제의 부역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부마항쟁은 인간다움의 회복. ‘부끄러움’이 시대정신.
역사학자들은 많은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부마항쟁을 ‘인간다움의 회복’이라 정리했습니다. 목숨을 위협받는 군부 정권 아래서 ‘어떻게 시민들이 유신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을까?’란 의문에 대해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정권에 부역하는 정치인, 지식인, 지도층을 보며 청년 학생 시민들은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부끄러움이 인간성을 깨우치게 한다고 말합니다…우리는 현재 사회, 교육, 경제, 문화, 정치, 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부끄러움’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부끄러움을 잊었다는 것은 양심의 상실, 도덕의 상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성의 상실이기도 합니다…국정감사장에서 우리는 뻔뻔한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봅니다. 이중 잣대의 여야국회의원들 그리고 왜곡 보도로 일관하는 수구 언론에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이러한 불의한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순국선열과 민주 희생자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정화되어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만약 10•26이 없었더라면…저는 부마항쟁, 광주항쟁 기념식에 가면 반드시 “우리는 김재규에 빚지고 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우리 사회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김재규’를 금기어쯤으로 취급합니다. 우리가 김재규란 이름을 드러내 놓고 논의하고, 역사적 평가를 하고, 기억하고 추모할 때 비로소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입니다. 10•26을 당당히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근로자의 날은 노동자 불명예의 날…자본주의는 인류에게 경제적 풍요를 선물했지만, 그만큼의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웠습니다. 기업가들은 권력을 등에 업고 노동자들을 착취했습니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함께 살아갈 이웃이고 동료가 아니라 이익 창출의 도구였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역사를 청산하지 못함 원죄 때문.
박정희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후 우리 모두는 그렇게 바라던 민주주의가 곧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면 두 배 세 배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합니다…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장을 찢는 결단’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정치 사회적 표현으로는 과거 청산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제대로 된 과거 청산 작업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박종철 고문살인의 주범은 분명히 경찰입니다. 그러나 검찰도 그에 못지않은 방조범입니다…그런데 경찰의 방조범이었던 그 검찰이 이제는 온 나라를 쥐락펴락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입니다.
“끝까지 참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국가 권력은 물론 군사집단과 공공행정도 정의에 기초하지 않으면 결국 강도 집단에 불과하다는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 IV, 4> 말씀을 되새깁니다.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오른손을 들고 온 국민 앞에 선서한 대통령들아, 내 말을 들어라. 그리고 헌법을 제정한 국회의원들과 법대로 판결한다는 법관들, 법을 집행한다는 검찰들아. 내 말을 들어보아라! 너희는 법의 기초인 정의를 짓밟고 불의한 짓을 수없이 많이 저지른 역사의 배신자들이다…모두 가슴을 찢고 뉘우쳐야 한다. 부디 철들고 바르게 살기를 바란다. 이제 제발 말장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선조들이 꿈꾸었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그 대동 세상을 이루어다오. 항일 독립 선조들과 선인들이 만든 이 헌법을 부디 진심으로 잘 지켜 공동선을 실현해다도!“
금송아지를 하느님처럼 섬기는 시대. 자본주의가 바로 현대판 금송아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금송아지 얘기를 듣고서 비웃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본에 머리 숙이고 자본에 예속되어 있는 우리 자신,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군사반란에 성공한 박정희는 사회, 문화, 교육과 종교까지도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순신 장군의 영웅화입니다. 이순신 장군 다음으로 박정희가 눈독을 들인 인물이 안중근 의사입니다. 그는 이순신과 안중근을 민족의 영웅, 참군인의 표상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과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을 병치하려 했던 것입니다…박정희가 만든 안중근 의사 승모회의 초대 이사장은 골수 친일파로 알려진 윤치영, 2대 이사장은 친일 문학가 이은상입니다. 독립운동가의 승모 사업을 친일파가 주도한 셈입니다. 이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모독이자 우리 겨레를 향한 역겨운 도발입니다.
우리 시대의 정치인, 공직자, 특히 돈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늘과 역사 앞에 참으로 정직해야 합니다…“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춰진 것은 밝혀진다”…돈과 권력으로 은폐한 모든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도 복잡한 일도 아닙니다. 딱 하나만 지키면 됩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지금 하느님이 다 보고 계신다’는 확신과 양심을 견지하는 것입니다…인간은 약하고 어리석어 늘 악마에게 이끌립니다. 천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늘 묵상하고 기도하는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역사기도를 시작한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자는 의도였습니다.(역사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
공공과 공화. 사실 두 단어의 어원은 같은데 이렇게 헷갈리게 표현했습니다. 본래 공공 질서는 공익적 이익을 위한 법적 의미로 사용되고, 공화는 일치와 화합을 지향하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도 뿌연 관념만 남을 뿐 명확한 의미가 확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규정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민주’는 귀가 닳도록 들어왔지만, 공화란 말마디를 따로 떼어내면 생경하기조차 합니다. 그런데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된 임시정부의 헌법 초안을 설계한 조소앙 선생 등은 공화제를 강조했습니다. 이제 공동체의 일치, 화합을 위해 공화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민주공화국의 핵심입니다. 민주공화국이 확인되는 그때에만 자유의 참된 뜻이 확인됩니다.
요즘 ‘자유, 자유’를 외치는데 그 자유는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체가 전제되어야 하며, 민주공화국 안에서만 보장됩니다…공공이라 하면 공안 통치가 연상되고 공화라고 하면 관념뿐이니 본래의 뜻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분리시킨 것을 온전히 하나로 묶고 그 본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다소 반복이 되더라도 공공화국(公共和國)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어느 무신론자가 한평생 봉쇄수도원에서 헌신하고 있는 수도자에게 묻습니다. “만일 수사님이 믿는 그 하느님이 안 계시고 영원한 세계가 없다면 수사님의 삶을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이 도전적 질문에 수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이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시간, 영원과 만나는 시간이니까요”라고 답합니다.
매일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축복이며 새 생명, 햇순의 원천입니다.
불혹을 넘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도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겼습니다. 은퇴 후, 후배 사제들과 만나보면 생각과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뜻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세대의 몫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역사란 사실을 일깨워주는 함세웅 신부님의 역사기도! 우리의 현대사에서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청년 예수와 십자가의 부활의 모습들을, ‘예쁜 글씨’가 아닌 목숨을 걸고 쓴 살아 있는 글씨에 담아 쓴 훌륭한 역사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