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청소년특강 1. 풀무학교 엮음. p200
풀무학교의 전통적인 교육과정, ‘문화’.
‘교양국어’의 수난? 관청의 허가를 얻지 않고 ‘국어’라는 이름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 폐교 운운’하는 웃지 못할 일을 겪고, 그 후로는 문화시간을 통해 그 내용의 일부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의 소중함, 그 감성이 삶의 바탕이다_김종철
요즘 아이들은 쉴 틈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 삶에 있어서는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게 중요. 생명이 자라는 데는 햇빛이 있어야 하지만 달빛과 별빛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쉴 틈이 허락되어 있지 않지만,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의 쉴 틈을 뺏어버립니다. 컴퓨터 게임 등 찰나적인 흥분에 빠져 시간을 보냅니다. 혼자서 외롭게 영혼이 자랄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주지 않아요…사춘기는 감수성이 예민하게 발달할 때. 아까 그 스님은 자신이 출가하여 중이 된 게 사춘기 때 생긴 알 수 없는 의문 때문이었다고 하셨어요. 그런 의문이 들면서 자꾸만 마음속에서 그 의문을 풀어야 한다는 욕구가 생기고, 그래서 입시 공부하다가 출가하게 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여러분처럼 고등학생 때 품었던 의문이 평생의 화두가 되는 수가 많죠.
쉴 틈이 없는 도시 아이들은 참 불행합니다.
밤에 별을 볼 수 없는 건 불행입니다. 누구나 외로울 때 밤하늘을 보면 철학자가 됩니다.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인간성을 키우는 게 중요한 계기가 되는 일입니다.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종교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는 것, 거기에 인간의 존엄함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에서 인격이 나옵니다…과학자도 농부도 마찬가지. 우리가 농부가 되어도 철학자 농부, 시인 농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인생이 풍요로울까요.
매완 호 박사. 과학적 양심으로 세계를 보호하려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지금 현대과학은 대부분 기업이나 권력과 결탁되어 있거든요.
내가 제일 존경하는 권정생 선생님. 『강아지똥』, 골목길에 강아지가 싸두고 간 한줌의 똥을 보고도 생명의 순환이라는 깊은 원리를 생각.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크나큰 애정과 세계의 신비에 대한 감각 없이는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해도 너무합니다.
염치없이 자기만 잘 살려고 하잖아요. 사람 사이의 이기주의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생명이 있는 것들의 운명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기나 우유, 아이스크림들은 가혹한 방법으로 동물을 학대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오늘날 공장식 축산이란 것은 가축들에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곳입니다. 양계잘 닭의 경우 날개도 못 움직이며 삽니다. 소든 닭이든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 가두어 놓고, 수입사료로 키우니까 몸이 약해지죠. 그러니까 항생제, 신경안정제를 섞어 줍니다. 모양만 고기지 실은 독 덩어리입니다.
살아있는 것들의 귀한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 제 욕심만 채우자는 게 오늘날 문명입니다.
#누구나 단소를 불 수 있다_이현주
깨달음이란 눈 감은 이가 뜨는 것과 같은 거. 전에 밉던 이가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안보이던 것이 보이는 것. 캄캄한 밤에 불 켜는 것과 같은 겁니다…요즘은 캄캄한 곳이 없어요. 그러니 빛도 모르지요. 시대의 비극입니다.
“왜 안 부냐?” “창피해서” “뭐가 창피하냐?” “솔직히 잘 못 불잖아?”
“네가 왜 잘 불어야 되냐? 네가 잘 불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잘 부는 게 뭔가, 잘 분다는 건 있나, 잘 분다고 하는 건 잘 분다고 본 사람의 시점일 뿐. 잘 한다는 것 없다, 그렇게 볼 뿐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고 나는 없게 되었구나, 라고 깨닫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나는 단소를 못 분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포기한 거죠. 할 수 있었는데 못 한다고 스스로 구속하여 능력을 짓눌렀던 겁니다. 잘 불어야 한다는 까닭이 없다는 놀라운 비빌을 알고 나니까 자유로워졌습니다.
소로우의 『월든』에 보면 ‘왜 네 가슴 속 북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남 두드리는 북소리에 행진하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내 걸음으로, 내 스타일로 살아야 합니다. 잘 하려고 애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현재를 사는 게 중요합니다.
#야생초로 깨달은 생태주의 세계관_황대권
감옥, 냉전시대의 종결, 거기서 얻은 결론은 반대 세력이 정권을 잡아 새로운 제도를 내세우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도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그 와중에 극적인 전기가 있었습니다…풀이 자라는 모습을 그림으로…그림 그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대상을 자기식으로 표현하려고 씨름하다 보면 어느덧 그것과 하나가 되니까요…처음엔 순전히 건강 때문에 풀을 길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태주의 또는 생명의 세계관이라고 할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풀을 계기로 생태주의자가 된 셈이지요. 정치가 백번 바뀌어도 사회는 별로 안 바뀐다, 사람 하나하나가 꺠달음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야생초 깨달음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도 감옥에서. 저는 그것을 시대의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생태계의 신음소리가 냉전이라는 장막이 걷히니까 비로소 들린 것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온갖 세상사에 둘러싸여 제정신이 아니니까 독방에 홀로 갇혀있는 제게 들린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요?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입니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욕망에 기초한 상품 시장의 문화는 파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평화의 가치관과 철학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농업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사회입니다. 생명의 세계관이 가장 잘 구현된 산업이 농업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업문명의 한계 뒤엔 농적인 세계가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세계를 ‘생태적 공동체사회’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풀무의 여러분도 머잖아 올 농적 사회, 생명 시대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농촌을 사람이 살만하게,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도시도 잘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가치를 배우는 사람들이며 시쳇말로 경쟁력 있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덴마크 시골학교 교사 크리스텐 콜_홍순명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에 바탕을 둔 교육
신도들은 일상 속에서 자기들을 살리는 말씀에 목말라하고 있는데 목회자들은 빵 대신 돌을 주고 있다고 평신도 운동 사람들은 생각했다.
당시 학교의 종교교육의 잘못? 그는 종교를 암기하는 학습을 거부한 것이지, 종교를 거부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말씀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고, 높은 대안이 된다는 것을 교육 사상의 기둥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배움과 생활이 하나가 된 학교.
지식은 나쁜 주인일 수도 있다, 그는 많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싸고 쾌락을 추구하는 도시 문화의 모방을 이렇게 경계하였다.
‘당신이 농부라면 직업을 바꾸지 마시오. 그리고 당신 직업에 긍지를 가지세요.’ 그는 특권과 겉지식으로 똘똘 뭉친 도시 청년보다 미래의 학교는 농촌의 자녀들이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백성대학와 자유학교
콜은 작은 사람들의 사람이었다. 그의 정신은 영혼에서 나왔다. 세속의 지혜에서 나오지 않았다. 덴마크의 장래는 무력보다 각성된 국가의 정신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노동하는 사람, 검소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작은 것을 무엇 하러 주우세요” “…주님의 축복은 작은 데 있단 말이야. 그러니 낭비해서는 안 되지.”
“작은 일을 소홀히 마시오…어떤 사람은 너무 상상력이 많고 사랑이 작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그 자신을 고발하는 거지요.
God judges no one. man is his own accuser.”
#일하는 사람들이 글쓰는 아름다운 세상_서정홍
엄마냐 누나야 강변 살자….소박한 꿈, ‘아 정말 쉬우면서도 깊은 뜻과 감동이 숨어 있구나’
백기완 선생님이 뜨거운 가슴으로 쓴 시 ‘임을 위한 행진곡’. 지금도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면 힘이 저절로 솟아난답니다.
‘기다리는 시간’. “사람 기다리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내가 잘 하는 게 없잖아. 이렇게 기다려 주는 것 말고. 그리고 가난해서 누굴 위해 베풀 것도 없도.” 이런 동무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쓴 시
월간 『작은책』. http://sbook.co.kr 농촌으로 젊은이들이 돌아와야 한다고, 그 길만이 자연과 사람을 살리고 아이들을 살리고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여러분, 우리는 왜 날이 갈수록 행복하지 않을까요? 저는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태 일하지 않는 사람이 쓴 엉터리 글을 읽고, 그 글이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길인 줄 알고 살아 왔습니다.
영화고 연속극이고 책이고 대부분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쓴 글로 만들었어요.
일하지 않는 사람들 곁에 빌붙어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이 우리 가까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로 선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도 먹지 말고 더구나 글을 써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교과서마다 일하는 사람들의 땀냄새와 사람냄새가 가득해야 하지 않겠어요.
버스 기사 안 건모씨의 글.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 버스 기사를 함부로 낮추어 보고 조금만 친절하지 않으면 마음 속으로 욕을. 그 글을 읽고 저는 버스 기사를 존중하게 되었으며,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버스 기사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 모두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뀝니다.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저절로 자유와 평화가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무너진 농업이 다시 살아나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고, 공장마다 기쁜 마음으로 일하게 되고, 오염된 환경이 저절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전쟁도 사라질 것이고, 온갖 부정부패도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마다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 두었다가 유산으로 남기면 좋겠다? 권력이나 재산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지만 시련과 어려움을 딛고 살아온 이야기는 훌륭한 유산이 되리라 믿기 때문.
제가 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까닭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잘 났거나 똑똑하거나 돈이 많아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른 눈이 있어야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똑같은 일을 겪고도 생각과 느낌이 다릅니다. 그래서 남의 흉내를 내면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글은 말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말로 하지 않는 것은 절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과 자연한테 죄를 적게 짓고 살기 위해서는 조금 불편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저는 이오덕 선생임을 만나면서 시는 ‘전문가’의 것이 아니고 ‘일하는 사람’의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게 일러 주셨습니다.
좋은 비유, 좋은 글의 모범은 ‘경제성장’이라는 괴물에 물들지 않은 시골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과 말입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_전희식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_정경식
무슨 일이든 출발은 한 발부터 시작. 서둘러서 될 일도, 하루아침에 될 일도 없습니다.
걷는다는 말은 거룩하다, 거름과도 상통. 또 걸으면 자연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차를 타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됩니다. 건물 같은 외형적인 것만 보게 되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게 됩니다. 자기 속을 볼 수 없기에 소중한 자연 속에 살면서도 느끼지를 못하는 겁니다.
간디의 수제자 비노바 바베, 14년 동안 걸으면서 토지헌납운동 전개, 걷지 않을 때는 똥 치우는 일을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육 풍토에서 ‘쌀’ 이야기는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엔 먹을거리들이 넘쳐납니다. 주로 가공식품인데,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겉으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속으로 심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쌀을 지켜야 합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종자(쌀)를 지켜내지 않으면 복잡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누어야 같이 삽니다_최성숙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_김종수
우리나라는 무엇이든 참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부모님은 자녀들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합니다. 늘 불안감에 시달려 자녀들만 보면 걱정을 합니다.
자기중심 없이 그저 걱정만 하다보니, 누가 이게 좋다고 하면 그렇게, 또 어떤 사람이 이게 지름길이야 하면 또 그렇게 휩쓸려 다닙니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 마을 사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변함으로써 맞게 되는 그 혼동을, 닮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그저 따라 하기에 바빠져 버린 순진한 라다크 마을 사람들이 겪는 혼란을, 우리는 매일 매일 일상의 삶에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힘나 학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제 법과 제 멋’이었습니다. 신께서 선물로 주신 그 제 법과 제 멋, 그래서 아이들이 ‘제 법으로 살았고, 제 멋대로 살아갔던’ 인생 선배들의 삶을 배우기를 바라며 그것을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나는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은데 세상이 나의 마음과 같지 않다; 면 두 가지 선택 중에서 골라야 하겠지요. 내 마음이 가는 길을 포기하고 돌리던지, 아니면 없는 길을 만들던지…톨스토이는 포기하지 않았고, 없는 길을 만들며 살았기에 결국 오늘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고 그의 학교는 전 세계 각 나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 법을 포기하고 그저 짜여진 구조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을 편하게 느끼는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주어진 그리 길지 않는 인생, ‘제 법대로 제 멋에 겨워’ 살아갈 수 있다면 저는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제 법, 제 멋도 좋지만 함꼐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법과 그들의 멋도 존중하여 모두가 함께 몸담고 살아가는…
아힘나(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아힘나) 학교 http://ahimna.net/school/
#내일의 위한 반성_박병상
산부인과? 아기는 낳자마자 환자 취급
전기가 모자란다? 미국사회가 전기 쓰는 것 보면 대단합니다. 그런 기준으로 우린 전기가 분명히 모자랍니다. 하지만 모자란다는 규정을 누가 해야 할까요. 공급자일까요. 그들은 모자라므로 발전소를 또 짓는다는 계획을 그들 멋대로 작성합니다. 그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 인물 취급을 받습니다.
지역주의는 나쁘다고 배웠는데 여러분은 그런 상식을 깨세요. 지역이기주의라고 상대에게 못 박으며 반사이익 챙기려는 세력이 내세우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지역이기주의는 내 지역에 대한 애정이 발판이 되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게 하고 지역의 개성과 자존심이 살아있게 됩니다. 개성, 즉 ‘나는 나’라고 생각하면 그들은 장사가 안 돼요. 문화가 다양하면 장사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연예인 만들고, 그들의 통해 유행 만들어 자신들의 상품이 획일적으로 팔려야 장사가 됩니다.
생명공학이 특히 그렇습니다. 황금쌀, 소한테 딸기 유전자를 넣어 딸기우유를 생산 판매하려는 마음,…과학자들이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봉사하는 생명공학이란 얘기지요. 털 없는 닭을 만들어 자동으로 처리하면 치킨 값이 싸야하는데 전혀 아니죠. 자본만 배불릴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난민 돕는 자금이 많이 생겼지만 아프리카가 이후 행복해졌을까요?
원래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으로 자급하는 일은 돈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서구 합리주의 사고방식으로 그들이 던져놓은 아프리카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미국에는 어마어마한 식량이 남아도는데도 굶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식량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누가 하는 말입니까? 농약과 화학비료 개발한 자본의 논리입니다. 녹색혁명이라며 돈벌이 궁리에 혈안이 된 사람들의 가증스런 논리라는 말입니다. 식량이 남아돌아도 그들이 부족하다고 규정하면 식량이 부족하게 되는 사회가 되었으니까요.
배아복제, 생명공학이 치료를 대신? 위험하고 무책임한 기술. 여성을 난자 생산 기계로 보는 거죠. 나를 치료하자고 후손의 생명을 해치는 일을 받아 들여야 할까요?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질병은 사실상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속의 질병입니다. 우리 질병이 마음 속에 있는 한 생명공학은 치료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시민운동만이 해결책. 시민운동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며 바꿔가야 합니다.
불치병과 난치병은 역설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나아요. 불안감을 조성해서 병원에 의존하면서 병이 생기게 되었다는 거, 이반 일리치라는 분은 일찌감치 눈치 챘습니다. 고통이 심한 암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술은커녕 진료조차 거부. 병원에 안 간 그는 암과 친구처럼 지냈대요. 생명연장이 치료는 아니지요.
집에 텔레비전을 없애면 식구들은 서로 얼굴을 보게 돼요, 자동차와 텔레비전 때문에 하루 하루 3시간 이상 일을 더 해야하는 생활보다….스스로 당당하게, 기쁘게, 가난해지면 부자가 행복하다는 공급자가 만든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의 선택-생명공학의 위험과 비윤리성』, 박병상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위하여_이필렬
한국 최초의 시민태양발전소
유럽은 유기농업과 대체에너지 사업의 경우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져, 농촌으로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추세. 시대를 앞서간다는 생각에, 유행처럼 매력을 느껴서인지 농촌으로 시집을 오려는 여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도 에너지 농사를 많이 합니다.
발전소. 아무리 많이 세워도 전기를 더 많이 쓰면 문제 해결은 되지 어렵습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줄이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야 문제의 해결이 보입니다.
『다시 태양의 시대로』, 이필렬
#살림집은 생명체와 같다_리신호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으로 이 셋은 따로 따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롭게 변화하면서 발전하여 왔다.
사람은 소우주, 집은 사람을 담고 있으니 우주의 섭리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그래서 집을 짓는 목수는 세상 이치를 잘 알았고 집주인과 함께 의논을 거듭하여 그 의도를 집에 반영하였다. 자연에 어울리며 살 사람에 맞는 그런 집을
기와집은 난방연료가 많이 드니 여유가 있는 사대부 집에 적합하고, 연료가 적게 드는 초가집은 민초들의 집으로 적합하였다.
뒷간은 똥을 퇴비로 사용하는 구조로 볕이 잘 드는 곳에 지었다.
똥은 땅의 밥인데 똥을 정화한다니 말이 되는가 말이다.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 김준봉, 리신호
#영화보기 영화읽기_예진수
왜 우리는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끊임없이 낯선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
총체적인 영화읽기. 영화보기가 아니라 영화읽기가 중요하다.
‘어떤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봐라’
#설악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_박그림
사람들의 흔적이 늘어가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우리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야생동물이 살지 않는 죽은 산으로 바뀌고 있다.
자연은 미래세대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제 모습대로 되돌릴 수 없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가. 남의 물건을 빌려다 쓰고 망가뜨려서 돌려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케이블카와 개발문제.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걸어서 올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산악형 국립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모르고 하는 주장일 뿐. 결국 등산로 위로 케이블카만 하나 더 늘어나는 꼴, 자연훼손을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설악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지자체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설악산을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기대고 살아갈 넉넉한 자연의 어머니로 바라볼 때 산은 상처가 아물고 아픔을 가실 것이다.
집단시설지구의 모텔과 여관을 해안가 쪽으로 옮기고 B,C지구는 설악산의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연생태적인 마을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단체관광이나 수학여행에 의존하기 보다는 조용한 곳을 찾는 가족단위의 관광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길이다…환경의 세기라고 떠들어 대면서도 70년대의 사고방식으로 국립공원을 관리하고 있어 설악산의 모습은 나날이 황폐해지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되고 어미가 건강할 때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듯이 병든 어미의 젖은 늘 배가 고픈 것이다.
#러시아의 아름다운 학교 운동과 풀무학교_송순재
톨스토이 학교. 톨스토이가 농노의 자식들을 모아 자유로운 영혼을 일깨워주고자 문을 연 학교. 스탈린 시대 폐교, 빼레이스트로이카 이후 재건 현재 100여 개가 있습니다.
#위대한 평민 ‘바보’ 이찬갑에게 들어보는 새날의 생각_백승종
190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74년 서울에서 돌아가신 이찬갑 선생님.
가장 소망하시던 말씀 ‘어찌하면 새나라가 올 것인가?’
해방 후 잇속을 챙기는 데만 급급했던 이 땅의 부패한 정치인을 ‘원숭이’ 같이 여겼습니다. 독재정권에 아부를 일삼는 종교인들. 그런 목사나 장로들을 ‘개 같은 눈치꾼’이라고 질타. 국민경제를 파탄내는 기업가들을 ‘돼지 같은 욕심꾼’, 여론에 동조해 헛된 명예를 구하는 언론인, 지식인들을 ‘펜으로 사는 각다귀’라고 비판. 아마 지금의 한국사회도 이 선생님의 엄한 잣대로 잰다면 개, 돼지, 원숭이 그리고 각다귀가 적지 않을 성 싶습니다.
한국사회의 병에 대한 한 가지 의미심장한 방안 제시? 정치개혁, 교육개혁, 문화개혁 등 일체의 개혁으로는 한국병을 고칠 수 없다. 결론은 민족 구성원 모두가 새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평민’을 위한 풀무학교
‘위대한 평민 바보’ 이찬갑.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실 자체이신 분’
스스로 호를 ‘밝맑’이라. 밝고 맑게 살자는 것. 주옥로 선생님은 선생님의 호는 선생님의 생활 자체였다고 경탄했습니다.
선생님은 세상 기준을 가지고 보면 한낱 ‘바보’였습니다. 되바라지 못하고 상당히 덜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도무지 눈치코치도 없고 외교적인 수완을 모르는 분. 생활방식은 이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았고 그래서 도리어 업신여김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말-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 백승종



